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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무책임한 정부, 뻔뻔한 현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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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와 채권단의 무능과 무책임, 현대그룹의 손벌리기가 극에 달한 듯하다. 대체 정부와 채권단은 언제까지 '대마불사(大馬不死)론' 에 매달려 현대를 지원할 것이며 현대는 또 언제까지 "설마 우리를 죽이랴" 며 국민의 돈을 갖다 쓸 작정인가.

하이닉스반도체(옛 현대전자)가 또 채권단에 금융지원 요청을 했다. 1조원을 전환사채(CB)형태로 빌려주고, 은행 협조융자(신디케이트 론)와 신속인수제도에 의해 빌린 회사채.수출환어음 등의 만기를 연장해달라고 요구했다.

불과 한달여 전 금융지원을 받으면서 "이번이 마지막 금융권 지원이라는 심정으로 정상화에 전력을 다할 것" 이라고 말했던 현대전자였다. 또 당시 정부와 채권단은 "현대전자 지원은 이 정도로 충분하며 더 이상은 없다" 고 말하지 않았던가. 그런데도 이번 역시 현대의 지원요청을 받자마자 곧 회의를 열어 지원을 논의한다고 한다.

현대전자뿐 아니다. 현대건설도 지난달 채권단이 2조9천억원의 출자전환을 하지 않으면 안될 정도로 위태롭고, 현대상선도 지난 연말 부채비율이 1천%에 가깝다.

또 현대석유화학도 지난달 1천여억원의 돈을 새로 지원받는 등 지난 1년간 채권금융단이 현대그룹에 퍼부은 돈이 무려 11조원을 넘는다.

이처럼 현대그룹 전체가 붕괴 위기에 몰려 있고, 지난 1년간 내내 '폭탄 돌리기' 가 계속되고 있는데도 정부와 채권단은 현대에 관한 한 왜 유독 이렇게 약해져 위험한 게임을 계속하고 있는지, 대체 언제까지 계속할 것인지 속내를 도무지 알 수 없다.

우리는 더 이상 이런 위험한 게임이 계속돼선 안되며 이제는 정말 가부간에 종결을 지어야 할 때가 됐다고 본다.

그러려면 무엇보다 지원의 근거와 회생 가능성이 명확히 밝혀져야 한다. 이런 점에서 1년간 11조원을 투입하면서 기업 실사가 불과 한달여 전에야 시작된 것은 납득하기 어렵다.

이러한 '선 지원-후 실사' 등 이해하기 어려운 점을 정부가 못밝힌다면 국회가 나서 청문회나 국정조사를 할 수밖에 없다.

실사 결과 회생이 불가능하다면 청산해야 한다. 회생 가능하거나 국민경제상 살려야 한다고 확신한다면 정부는 이런 점을 국민에게 소상히 밝히고 정정당당하게 문제를 해결해야 할 것이다.

문제가 터진 지 언제인데 정부는 근원적 처방을 내리지 않은 채 밑빠진 독에 물붓기만 하고 있는가.

정부는 '채권단 자율' 운운하고, 채권단은 정부의 눈치나 보는 지금의 방식으로는 현대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없다.

또 회생시키려면 정밀한 시나리오를 갖고 해야 한다. 현대건설의 출자전환만 하더라도 투자신탁회사들의 반발은 대우자동차의 사례에서 보듯 충분히 예견됐던 것이다.

그런데도 정부와 채권단은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막다른 골목에 오자, 덜렁 발표부터 했고 그 후유증을 지금 겪고 있다. 왜 정부는 현대 앞에만 서면 작아지는가.

국민경제를 위한 고육책인가. 아니면 또 다른 무슨 이유가 있는가. 이를 이젠 자세히 밝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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