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이봉주선수의 인간승리

중앙일보

입력

한국 마라톤의 기둥 이봉주(李鳳柱)선수가 드디어 해냈다.

최고의 권위와 전통을 자랑하는 제105회 보스턴 마라톤 대회에서 우승, 세계를 제패한 것이다. 1947년 서윤복, 50년 함기용 선수에 이은 51년 만의 쾌거다.

31세의 나이에 세계의 건각들을 물리치고 대한민국의 명예를 드높인 李선수에게 진심으로 축하와 격려의 박수를 보낸다.

李선수의 우승은 우리 국민 모두에게 할 수 있다는 희망과 용기를 심어줬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

특히 국제통화기금(IMF)사태 이후 경제적 어려움과 함께 정치적.사회적 불안 요소가 잇따라 좌절과 시름에 빠져 있던 국민을 오랜만에 신명나게 만드는 쾌거였다.

새벽 잠에서 깨어나는 순간 TV를 통해 월계관을 쓴 채 우승컵에 입맞춤하고 있는 李선수의 늠름한 모습과 함께 우승 소식을 들은 한국 사람치고 어느 누가 자랑스럽고 가슴 뿌듯함을 느끼지 않았겠는가.

李선수의 개인 역정을 살펴봐도 이번 우승은 참으로 감격적이다.

세계적인 기량을 지녔으면서도 만년 2인자를 벗어나지 못한 데다 지난해 시드니 올림픽 때는 우승을 장담하다 레이스 도중 넘어지는 바람에 24위에 그쳐 모두에게 실망을 안겨줬었다.

이 때문에 일부에서는 '한물간 선수' 라며 재기에 회의적이기도 했다.

설상가상으로 지난 2월에는 부친상을 당해 자칫 운동을 포기할 위기를 맞았으나 이를 오히려 이를 악물고 재기하는 계기로 삼았으니 전화위복(轉禍爲福)의 표본이라 할 수 있다.

우리나라 마라톤이 그동안 숱한 스타를 배출했지만 현실적으로는 이봉주 이후를 이어갈 재목을 찾기 힘들 정도로 토양이 척박하다는 것은 정말 안타까운 점이다. 더욱이 프로 종목에 밀려 기초 종목이 외면당하는 현실을 보노라면 마라톤의 앞날은 더욱 걱정이 아닐 수 없다.

李선수의 우승은 선수 개인과 지도자, 지원 기업이 힘을 합쳐 이룩한 결정체다. 그러나 마라톤을 살리기 위해서는 꿈나무 육성책 마련 등 국가가 발벗고 나서야 한다.

李선수의 우승을 한국 마라톤 중흥을 위해 온 국민의 지혜를 모으는 계기로 삼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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