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려워진 ‘소형 갈아타기’ 로 진퇴양난 베이머 부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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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일한기자]

요즘 은행 프라이빗뱅커(PB)와 부동산 컨설턴트들의 가장 많은 상담 내용은 기존 중대형 아파트를 팔아 작은 집으로 옮기고 싶다는 것이라고 합니다.

은퇴를 앞둔 베이비부머 세대 등이 기존 집을 팔아 수도권 외곽의 작은 집으로 옮기고 남는 돈으로 수익형 부동산에 투자하고 싶다는 겁니다. 이른바 ‘소형 갈아타기’죠.

그런데 이게 참 쉽지 않은가 봅니다. 중대형 값은 반토막이 날 정도로 폭락했는데 작은 집은 떨어지지 않거나 오히려 더 오른 곳이 많기 때문입니다.

중대형은 수요가 없어 급매물로 내놔 어떻게든 처분하고 대신 소형을 찾으면 비싼 값을 내야 하고 양도세 등도 내고 나면 결국 손에 쥐게 되는 차익이 별로 없다는 겁니다.

국내 모 대형은행 PB팀장은 이런 사례를 들려주더군요.

용인시 신봉동 L아파트 133.8㎡(이하 전용면적)에 살고 있는 김모씨(65) 사연입니다. 이 분은 2006년 5월 8억원을 주고 이 집을 샀습니다. 퇴직금을 모두 이 아파트를 사는데 썼다고 합니다.

초기엔 괜찮았습니다. 2007년엔 8억5000만원까지 올랐다고 하네요. 그는 적당한 때 팔아서 작은 집으로 옮기고 남는 돈으로 사업자금을 마련하거나 상가 등 수익형부동산에 투자할 계획이었다네요.

그런데 2008년부터 집값은 내리막길을 걷기 시작합니다. 곧 좋아지겠지 싶었다네요. 어느새 7억원대로 떨어지더니 낙폭이 커져 6억원대로 빠지더라는 겁니다. 거래가 거의 없어 곧 회복되길 기대했는데 올 들어서는 5억원대까지 하락했답니다. 지난해 매물로 내놓긴 했는데 수요가 전혀 없고 최근 4억5000만원짜리 급매물까지 나와 당혹스럽다는 겁니다.

김씨가 평소 봐뒀던 주변 84㎡형은 변함없이 3억5000만원 정도입니다. 만약 자신의 아파트를 최근 나오는 급매물 수준으로 팔아 작은 아파트로 옮겨봤자 손에 쥘 수 있는 현금은 몇천만원밖에 안된다는 이야깁니다. 소형 갈아타기를 통해 차액으로 생활비와 은퇴후 사업자금을 마련하려던 계획은 실현 불가능한 꿈이 된 것입니다.

3.3㎡당 시세, 소형이 중대형 앞선 곳 늘어

이런 현상은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습니다. 3.3㎡당 시세를 기준으로 소형이 중대형보다 비싸지는 곳이 많아지고 있습니다. 서울 동대문구는 60㎡이하의 소형 아파트값이 85㎡ 초과의 중대형 아파트보다 더 비싸졌다고 하네요. 소형 아파트의 선호도가 더 높은 금천이나 강북 등지도 마찬가지고요.

예를 들어 동대문구 용두동 롯데캐슬피렌체의 경우 78㎡의 3.3㎡당 가격은 1804만원인데 136㎡형의 3.3㎡당 시세는 1610만원 정도라고 하네요. 이런 곳일수록 큰 아파트를 팔아서 작은 아파트를 사기가 점점 어려워지는 겁니다.

전문가들은 주택시장 침체가 장기화하면 이런 현상은 계속 심화할 가능성이 크다고 합니다. 1~2인 가구가 늘어나고 1자녀 가구가 많아지면서 소형주택 선호도는 높아지는 반면 중대형 인기는 더 떨어질 것으로 전망되기 때문입니다.

서민들에게 꼭 필요한 소형주택은 오르고, 처분해야할 중대형은 계속 싸지게 될 가능성이 크다는 겁니다.

수도권 미분양의 90%가 중대형이라는 점은 많은 것을 시사합니다. 중대형 아파트를 보유하고 있는 분들은 주변 중대형 주택 공급 현황을 냉정하게 살피고 향후 희소성이 생길 곳이 아니라면 처분을 서두르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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