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프 지수, 열사병 지수…맞춤정보로 날씨 장사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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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1호 10면

8월 하순 초대형 태풍이 올까. 민간 예보 업체가 많아지면서 날씨전망도 자주 엇갈린다. 사진은 2005년 태풍 나비 영향권에 놓인 부산 시내. [중앙포토]

서울의 낮 최고 기온이 35도까지 치솟은 27일. 하루 종일 더위에 시달린 직장인 A씨(48)는 한 날씨 정보 사이트에 접속해 골프를 치기로 한 주말(28일) 경기도 가평의 골프장 날씨를 알아봤다. 예보는 오전 6시~낮 12시까진 구름 조금에 최저 온도 25도, 최고 35도로 나와 있었다. 풍속은 초당 2m로 바람이 적고 습했다. ‘골프지수 4’로 골프 치기에 그리 좋은 날씨는 아니라는 게 이 사이트의 안내였다. 땀이 많고 더위에 약한 A씨는 이날 골프가 그리 내키지는 않았지만 동반자들과의 약속이라 지키기로 마음먹었다. 시원한 골프복을 챙겨 라운드에 나서기로 했다.

태풍 예보 놓고 기상청과 충돌하는 민간 기상 업체

날씨 정보가 다채로워지고 있다. A씨처럼 자신에게 필요한 날씨 정보를 골라 볼 수 있는 통로가 다양해진 것이다. 골프장·해수욕장 날씨 서비스에 동별 날씨 제공까지-. 날씨 정보가 다원화되고 있다. 날씨 관련 데이터를 해석하는 민간예보 업체의 활동이 활발해지면서 생긴 현상이다. ‘날씨 정보=기상청’의 등식이 깨지고 부가가치를 더한 날씨 정보로 승부하는 사업자들이 속속 등장하고 있다. 소비자에게 특화된 정보를 제공하기 위해 ‘골프지수’ ‘패션지수’와 같은 날씨 관련 지수를 개발하고 정확도를 높이기 위한 분석 경쟁도 뜨겁다. 날씨 정보의 절대 강자인 기상청과 민간 업자가 경쟁하는 ‘날씨 마이너리티 리포트’ 시대가 온 것이다.

그러다 보니 민간 예보업체와 기상청 간의 알력도 감지된다. 날씨 정보는 어디까지나 예보이기 때문에 누구도 100% 맞히는 것은 불가능하다. 하지만 누가 더 정확한지를 두고 자존심 싸움이 벌어지고 있다.

얼마 전 초대형 태풍이 8월 하순께 한반도에 상륙할 거라는 민간 업체의 날씨 자료가 공개되면서 기상청에 비상이 걸렸다. 지난 10일 공개된 삼성화재 방재연구소 기상전망 보고서의 “7월 말부터 기록적인 집중 호우가 내리고 다음 달 하순~ 9월 초엔 태풍 매미나 루사급과 맞먹는 (초대형) 태풍이 온다”는 문구가 문제가 됐다. 보고서는 민간 업체에 소속된 한 예보관의 분석을 근거로 하고 있다. 기상청은 “태풍이 오는 것을 몇 달 전 예보하는 것은 정확하지 않다”며 혼란을 우려했다. 그러나 민간업체는 “상식적인 분석을 근거로 자료를 낸 것”이라며 물러서지 않고 있다.

기상청은 정부기관이란 특성상 예보가 보수적인 편이다. 단정적인 예보가 자칫 국민 혼란을 초래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래서 “때때로 비”와 같이 알쏭달쏭한 예보가 많이 나온다.

하지만 민간업체들은 다르다. 맞춤 정보를 제공하고 소비자 판단에 도움이 되는 정보를 제공해야 존립할 수 있다. 이 때문에 한 시간 단위 예보, 특정 지역에 한정된 날씨 정보 등 소비자의 가려운 곳을 찾아내느라 심혈을 기울인다.

기본적인 기상데이터를 분석하는 한편 필요할 경우 자체 장비를 설치해 데이터를 수집하기도 한다. 이렇게 취합한 정보를 분석, 부가가치를 높인 정보로 만들어내는 게 민간 기상 사업의 핵심이다.

경북 영주의 낮 기온이 38.7도까지 오르면서 최악의 폭염을 기록한 26일. 언론에서 많이 인용한 ‘열사병 예방지수’도 민간업체에서 개발한 지수 중 하나다. 이 지수를 예보하고 있는 케이웨더의 홍국제 경영지원팀장은 “기온·습도·풍속·복사 등 인체가 노출될 수 있는 열환경 지수를 반영해 만들어진 지수로 미국과 일본 등지에서 많이 사용한다”고 설명했다. ‘매우 위험’ ‘위험’ ‘경계’ ‘주의’ ‘안전’ 단계로 나뉘어 있는 이 지수를 참고하면 기상청에서 폭염특보가 발효되지 않은 경우에도 외부 활동을 할지 말지를 결정할 수 있다. 이 지수는 민간방송의 날씨 정보 프로그램 등에서 기상청의 ‘불쾌지수’와 함께 인용되고 있다.

민간예보사업제도가 도입된 1997년 4억7000만원이었던 기상기후 산업의 매출은 지난해 1069억원을 기록하며 처음으로 1000억원을 돌파했다. 올해 상반기에만 836억원을 기록하며 빠른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여기에 기상정보유통과 보험사·금융사의 기상파생상품 등을 더하면 기상기후산업의 시장 규모는 2219억원(2011년 기준)으로 커진다. 기상기후산업의 성장 가능성은 정부에서도 주목하고 있다. 기상청 기상산업정책과 김규일 사무관은 “2015년엔 연간 1조원에 달하는 시장으로 성장할 것으로 보고 있다”며 “그동안 시장 가능성에도 특별한 지원책이 없었다는 지적에 따라 시장 구조와 현황을 파악하고 있다”고 말했다.

1940년대 민간 기상 서비스를 도입한 미국이나 50년대에 서비스를 시작한 일본에 비해 한국의 기상산업은 아직 걸음마 단계다. 미국의 경우 기상기후 관련 기업 수가 1000개에 달하고 기상 전문 인력도 3만5000여 명에 이른다. 이들 기업의 연간 매출액은 9조원에 달한다. 일본에서도 전문 인력이 8200명에 달하는 등 이미 탄탄한 산업으로 자리잡고 있다.

현재 기상청에 등록된 국내 기상 관련 업체는 147개로, 이 중 민간 기상예보를 실시하는 업체는 8곳이다. 이들은 각기 틈새 시장을 찾아 특화된 예보를 하고 있다. 가령 민간예보 업자인 첨성대는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으로 날씨 정보를 제공하면서 히트를 쳤다. 일본 기상 기업으로 서울에 사무소를 두고 있는 웨더뉴스는 해상 날씨를 전문적으로 다룬다. 기후변화로 날씨 예측이 점점 어려워지는 것도 기상 기업들이 증가하는 이유다. 최용상 이화여대 환경공학과 교수는 미국 등 선진국에선 업체마다 각각의 모델을 이용해 예보하기 때문에 국민들은 더 정확하고 특화된 기상정보를 얻는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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