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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권근영의 그림 속 얼굴

천재 미켈란젤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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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2면

권근영
문화스포츠부문 기자

선천적으로 타고난 재능, 혹은 그런 재능을 가진 사람. 오늘날 천재의 사전적 정의다. 천재의 시대, 르네상스 때는 좀 달랐다. 천재란 신이 부여한 영감, 극소수의 개인에게만 부여돼 그 사람을 통해 작용하는 초인간적인 힘을 뜻했다. 풀어 쓰면 이렇다. 누군가에게 특출한 재능이 있다. 그렇다면 다른 사람도 아니고 하필 그 사람에게 그 재능이 부여된 이유가 있을 터. 바로 신이 자신의 광휘를 드러내기 위해 그를 선택했다는 거다. 그렇다면 그 천재는 자신의 행운을 기뻐하며 방종할 게 아니라 부여된 능력만큼 신의 영광을 드러내는 데 노력할 일이다.

 미켈란젤로 부오나로티(1475~1564). 외로운 천재의 대명사다. 스물세 살 위 레오나르도 다빈치처럼 예술 외 여러 분야를 아우르지도, 여덟 살 연하의 라파엘로처럼 젊은 나이에 추기경 추대설까지 나올 정도로 정치력이 좋지도 못했다. 평생 독신으로 살 만큼 외골수였고 ‘외모 때문에 더욱 생명력 넘치는 인체 표현에 집착했다’는 말이 나올 만큼 볼품없었다. 재능으로 일어섰지만 그 재능 때문에 시대와 불화했고, 그리고 그 재능으로 수백 년 뒤의 사람들에게까지 영향을 미쳤다.

그 역시 자기의 천재를 축복이라기보다는 저주로 받아들인 듯하다. 자신에 대한 평가도 무섭도록 냉소적이었다. 현대의 미술사가들은 시스티나성당의 벽화 ‘최후의 심판’(1534~41)에서 미켈란젤로의 자화상이라고 할 만한 것을 발견한다. 격노한 신 바로 아래 구름에 걸터앉아 있는 사도 바르톨로메오의 손에 들려 있는 살가죽이 그것이다. 바르톨로메오는 산 채로 가죽이 벗겨지는 형벌을 받아 순교했다. 그런데 미켈란젤로는 바르톨로메오가 든 ‘껍질’에 자기 얼굴을 그려 넣었다.

 ‘최후의 심판’엔 인간이 취할 수 있는 모든 모습을 한 391명의 군상이 그려져 있다. 신과 천사 혹은 신에게 간청하거나, 지옥에 떨어졌거나, 승천했거나, 죽어서 부활한 인간들을 모조리 그린 예술가라면 그야말로 하나님 아닌가. 그런데 그는 자신의 모습을 기막힌 곳에 그렸다. 이렇게 존재의 허망함과 죄의식을 드러낸 자화상도 드물 것이다. 당대 최고의 권력자 집안 일원인 줄리아노 메디치의 조각상을 만들면서 “지금부터 1000년이 지난 뒤 그가 어떻게 생긴 사람인지 과연 누가 궁금해할까” 반문했다는 미켈란젤로다. 500년 뒤 사람들이 자기 자화상에 경악하게 될 줄 그는 알았을까.

 하여간, 천재가 아니라 참 다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