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횟집 수조 탈출하려는 고등어 … 갑갑하던 내 젊은 날의 초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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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이대희 감독

국내 극장가에서 애니메이션은 힘겹다. 자본·기술·흥행 면에서 아직 갈 길이 멀다. 지난해 200만 관객을 넘어선 ‘마당을 나온 암탉’은 깊은 잠에 빠진 애니메이션계에 적잖은 희망이 됐다.

또 한 편의 화제작이 찾아왔다. 3D 애니메이션 ‘파닥파닥’(25일 개봉·이대희 감독)이다. 어촌의 횟집 수조에 갇힌 고등어의 탈출기다. 고등어가 몸부림치는 소리인 ‘파닥파닥’은 자유를 갈구하는 처절한 몸짓이다. 영화는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던 횟감 직전의 물고기라는 파격적인 소재를 다뤘다.

‘파닥파닥’의 고등어는 횟집 수조에 갇히지만 바다로 돌아가기 위해 안간힘을 쓴다. 계속 탈출을 시도하면서 체념에 빠져있는 수조 안 물고기들에게 희망을 불어넣는다. [사진 인디스토리]

게다가 양어장·바다 등 출신성분을 따지고, 살아남기 위해 동료를 배신하고, 권력에 빌붙는 수조 물고기들의 모습을 통해 인간 사회를 풍자했다. 그런 점에서 ‘니모를 찾아서(2003)’ 등 할리우드 가족 애니메이션과 차별화된다. 물고기의 동작이 세밀히 묘사됐고, 캐릭터도 탄탄하다. 전반적으로 어둡지만, 결말은 희망의 여운을 남겨놓는다. 이대희(35) 감독은 이 작품으로 23일 서울 국제만화애니메이션 페스티벌에서 심사위원특별상을 받았다.

 -물고기 세상을 소재로 한 이유는.

 “10년 전 다니던 회사와 집 사이에 횟집이 있었다. 고등어만 수조 벽에 계속 헤딩하고 있더라. 잠시도 가만히 있지 못하는 특성 때문이었다. 하도 부딪혀 코가 깨져있는 고등어를 보고 얼마나 나가고 싶으면 저럴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거기서 영감을 얻었다.”

 - 감정이입이 됐다는 건가.

 “당시 애니메이션 회사의 신입사원이었다. 의욕은 기세등등 했는데 현실의 벽은 높았다. 이런 저런 아이디어를 내도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수조 벽에 헤딩하는 고등어가 나 같았다.”

 -2년간 사전취재를 했다고 들었다.

 “횟집 아르바이트를 하고, 고기잡이 배도 탔다. 회 뜨는 일식 조리사와 인터뷰도 하고 활어유통 트럭을 타고 돌아다니기도 했다.”

 -물고기 캐릭터는 어떻게 잡았나.

 “행동 특성을 보니 고등어는 직선적인 반면 넙치는 정적이다. 그래서 넙치는 도무지 속을 알 수 없는 캐릭터로 만들었다. 멍청한 놀래미는 순진한 캐릭터로 그렸다. 줄돔은 이리 붙었다 저리 붙었다 처세에 능하다. 수조를 우리 사회의 축소판으로 삼았다.”

 -고등어를 여성 캐릭터로 한 이유는.

 “탈출욕구를 부각시키는 데 여성 캐릭터가 더 적합하다고 생각했다. 사회에는 아직도 여성을 둘러싼 보이지 않는 벽들이 많지 않나. 반면 수조 지배자인 ‘올드 넙치’는 수컷으로 했다. 고등어의 꿈과 환상을 표현한 뮤지컬 대목에서도 여성의 목소리가 더 적합하다고 봤다.”

 -잔혹한 장면이 적지 않다. 아이들이 보기에 부담스럽다.

 “불합리하고 답답한 현실에 불만이 많았던 젊은 시절에 기획한 작품이다 보니 어린 관객층에 대한 배려가 부족했다. 젊은 시절의 나처럼 현실에 갑갑해하는 10대 후반, 20대 청년들이 영화의 타깃 관객층이다.”

 -메시지를 앞세운 게 아닌가.

 “답답한 현실을 깨뜨리려는 노력 자체가 의미 있다는 거다. 작은 몸짓이 큰 변화를 불러오진 않아도 그로 인해 누군가는 새로운 변화를 맞이한다. 고등어의 몸부림이 겁 많고 비관적인 올드 넙치를 행동하는 캐릭터로 바꿔놓았듯이 말이다. ‘애니메이션은 밝은 톤이어야 한다’는 선입견에 대한 도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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