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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전기념일이면 생각나는 사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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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2면

조화유
재미 칼럼니스트·소설가

7월 27일은 한국전쟁이 끝난 지 59년이 되는 날이다. 휴전기념일만 되면 생각나는 사람이 있다. “밥솥 씻은 물을 마심으로써 한국인들은 식사를 끝낸다”고 회고록에 쓴 사람이다. 숭늉을 ‘밥솥 씻은 물’이라고 묘사한 이 사람은 전쟁 중 북한의 포로가 되었던 미 육군 24사단 사단장 윌리엄 딘 소장이다.

 딘 소장은 전쟁 초기 파죽지세로 38선을 넘어 내려오는 북한 인민군을 대전에서 일단 저지, 미군 추가병력이 들어올 때까지 시간을 벌라는 명령을 받는다. 그는 권총을 빼 들고 선두에 서서 인민군 탱크와 맞서 싸웠으나 중과부적(衆寡不敵), 후퇴명령을 내린다. 그 자신도 대전 외곽에서 길을 잃고 36일을 산과 들을 헤매다가 1950년 8월 25일 전북 진안에서 포로가 된다. 미군이 있는 곳으로 안내하겠다고 속인 두 민간인이 그를 인민군에게 넘긴 것이다.

 그들은 당시 진안에 살던 한모(40세)와 최모(24세)씨. 두 사람은 휴전 후 AP통신 한국인 기자 신화봉과의 인터뷰에서 딘 장군을 여관으로 데리고 가다가 인민군과 마주쳤다고 거짓말을 했다. 그러나 그들은 인민군으로부터 각각 3만원씩 받은 사실은 인정했다. 60여 년이 지난 오늘 이들을 새삼스레 비난할 생각은 없다. 그들은 공산주의자도 아니었을 것이다. 그저 인민군이 전라도까지 쳐내려 오니까 ‘이제 공산당 세상이 되나 보다, 미군을 잡아주면 무슨 혜택이 돌아오겠지’라고 단순히 생각했을 것이다.

 포로가 된 딘 장군을 통역한 사람들 중에 이규현이란 분도 있었는데, 그는 일본 유학 중 해방을 맞아 귀국해 김일성대학에서 학위를 받고 강의하다 통역장교로 인민군에 징집되었다. 유엔군이 평양을 점령했을 때 미군에 자진 투항, 남한으로 내려와 나중에 중앙일보 편집국장과 문화공보부 장관까지 지냈다. 북한은 딘 장군을 선전·선동에 이용하려 했으나 그는 끝까지 협조를 거부하고 1953년 휴전 직후 석방되어 미국으로 돌아갔다.

 한국전쟁에 대해 요즘 한국 젊은 세대는 얼마나 알고 있을까. 많은 젊은이가 가지고 있는 전쟁에 대한 상식은 대충 이런 것 같다. 즉 일본이 미국과의 전쟁에서 패하고 한반도에서 철수하게 되자 미국은 북위 38도선을 경계로 한반도를 남북으로 갈라놓는다. 이 때문에 남북한에 각각 다른 정부가 세워졌고, 이 때문에 북한 김일성이 한반도 ‘통일전쟁’을 일으켰으나 미국의 참전으로 실패했다. 이런 인식에 따라 ‘그러므로 우리 민족 분단 책임은 미국한테 있다’는 생각을 하는 듯하다. 얼른 들으면 맞는 소리 같지만 진실과 거리가 먼 이야기다.

 휴전 이후 여러 자료와 연구를 통해 정설로 받아들여진 내용은 이렇다. 1945년 8월 15일 일본이 항복을 선언했을 때 미군 최전방부대는 한반도에서 1000㎞ 떨어진 오키나와에 있었고 한반도와 국경을 맞대고 있는 소련의 군대는 이미 함경북도에 들어와 계속 남하하고 있었다. 하루라도 빨리 일본 본토에 상륙하는 데에만 신경을 쓰고 있던 미군은 한반도까지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그렇다고 소련군만 한반도에 들어가게 내버려둘 수도 없었다. 나치독일 패망 후 동유럽을 점령한 소련군이 그곳 여러 나라를 차례로 공산화시키고 있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던 미국 국무부는 군부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한반도에도 미군을 보내기로 결정했다. 그래서 38도선을 경계로 북쪽은 소련군이, 남쪽은 미군이 각각 들어가 일본군의 공식 항복을 받자고 소련에 제의했고 소련이 이를 받아들인 것이다.

 만일 그때 미국이 38선을 긋지 않았더라면 소련군이 한반도 전역을 점령, 공산정권을 세웠을 것이다. 또 1950년 김일성이 전쟁을 일으켰을 때 미군이 즉각 참전하지 않았더라면 한반도 공산화 통일은 성공했을 것이다. 만약 그렇게 됐다면 현재 대한민국은 어떻게 됐을까.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일부가 되어 세계 최빈국 인민으로 힘겹게 살아가고 있을 것이다.

 전쟁을 겪은 세대로서 전쟁의 기억은 아직 생생한데 벌써 휴전 59년이 됐다. 한국전쟁을 아득한 역사 속 얘기로 생각하는 젊은 세대들 사이에서 전쟁이 잊혀져 가는 것도 문제이지만 잘못된 역사인식이 널리 퍼져 있다니 더욱 안타깝다.

조화유 재미 칼럼니스트·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