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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스토리] 열대야 때 올림픽 잠 설치다 몸 해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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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 마니아인 이명훈(37·서울 종로구)씨. 6월 9일부터 한 달간 이어진 유로2012 축구경기를 시청한 뒤 잠을 설치는 날이 늘었다. 개최국인 폴란드·우크라이나와의 시차 때문에 모든 경기가 오전 1시와 3시에 중계됐다. 이씨는 대부분의 경기를 봤다. 맥주와 간식을 먹기도 했다. 경기가 끝난 후 바로 잠자리에 들었지만 잠이 오지 않았다.

올림픽처럼 시차가 큰 경기의 심야응원이 몇 주간 지속되면 불면증으로 이어질 수 있다. 사진은 2006년 독일 월드컵 때 청계천 거리응원 모습. [중앙포토]

수면시간이 줄자 낮에 업무효율이 뚝 떨어졌다. 최근에는 밤이 되도 잠이 잘 오지 않는다. 일찍 잠자리에 들어도 자주 깨고, 아침에 일찍 눈이 떠져 숙면을 취하지 못한다. 이씨는 “어차피 이렇게 된 거 곧 열리는 런던 올림픽까지 보고 수면습관을 고칠 생각”이라고 말했다.

잠 못 드는 날이 지속되면 불면증이 생길 수 있다. 올림픽처럼 몇 주 동안 시차를 두고 열리는 경기를 계속 시청하면 가능성이 더 커진다. 삼성서울병원 신경과 홍승봉 교수는 “숙면을 취하지 못하는 기간이 몇 주만 지속돼도 수면리듬이 깨져 건강 문제로 이어진다”고 말했다.

잠은 뇌와 신체가 쉬는 시간이다. 대한수면학회 최수전 회장(인제대 상계백병원 내과)은 “피로를 풀고, 에너지를 축적하며, 보고 들은 것을 기억하는 생명유지 활동”이라며 “하루 7시간은 자야 건강하다”고 설명했다.

야간 경기 응원은 숙면을 막는 요소를 모두 갖췄다. 우선 수면시간이 많이 줄어들고 체온을 올려 잠을 방해한다. 홍승봉 교수는 “잠들 때 체온이 깨어 있을 때보다 약 1도 낮아야 숙면을 유지한다”고 말했다. 가톨릭대 성빈센트병원 정신건강의학과 홍승철 교수는 “응원으로 교감신경이 흥분하면 심장박동이 빨라지고 혈관이 수축해 혈압과 체온이 상승한다”며 “잠에 들 수 있게 진정될 때까지 1시간 이상 걸린다”고 설명했다.

밤늦게 먹는 간식도 독이다. 분당서울대병원 신경과 윤창호 교수는 “응원하며 섭취한 고칼로리 음식·알코올·카페인은 수면 호르몬의 활동을 막는다”며 “응원 후 몇 시간이라도 자야 한다는 강박감은 오히려 잠을 쫓는다”고 덧붙였다.

특히 런던 올림픽은 장마가 끝나고 열대야(熱帶夜)가 시작되는 시기에 열린다. 수면의 양과 질이 모두 떨어질 수 있다.

열대야는 오후 6시부터 다음날 오전 9시까지 최저기온이 25도 이상인 현상이다. 기상청에 따르면 2011년 6월부터 9월까지 전국 45개 관측지점에서 288건의 열대야가 있었다. 2010년엔 571건에 달한다. 대부분 7·8월에 집중됐다.

열대야 때문에 올라간 체온과 스트레스가 수면의 발목을 잡는다. 열대야 시 불쾌지수는 80 이상이다. 윤창호 교수는 “스트레스를 받으면 분비되는 코르티솔 호르몬은 잠을 깨우는 각성 효과가 있다”고 말했다.

여름철 수면부족이 길어지면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건강에 빨간불이 들어온다. 소아청소년은 성장과 정서에 부정적이다. 서울수면센터 한진규 원장은 “성장호르몬은 깊은 숙면을 취할 때 분비된다. 아이들도 약 1개월 이상 수면의 질이 떨어지면 불면증에 빠져 영향을 받는다”고 말했다. 윤창호 교수는 “수면은 감정을 조절한다. 잠자는 시간이 짧은 아이는 반항적이고 공격적으로 변한다”고 말했다.

건강한 20, 30대도 안심할 순 없다. 무기력해지고 집중력과 판단력이 떨어진다. 한진규 원장은 “평소 수면시간보다 1시간을 덜자면 뇌 기능이 30% 낮아진다”고 설명했다. 윤 교수는 “일주일 동안 하루 4시간만 잔 사람은 8시간 잔 사람보다 실수하는 비율이 3배 이상 높다는 연구가 있다. 운전을 피하는 게 좋다”고 말했다.

여름철 갑작스러운 수면부족은 여성환자가 많은 우울증에 영향을 준다. 윤 교수는 “불면증이 있으면 우울증이 3배 악화되고, 우울증은 불면증을 불러 악순환이 이어진다”며 “2~3주 잠을 제대로 못 자면 산후 우울증의 위험이 있다”고 덧붙였다.

수면부족은 면역력을 떨어뜨려 감염질환에 걸릴 가능성을 높인다. 한진규 원장은 “수면 시간이 적으면 A형 간염이나 인플루엔자 백신의 항체가 잘 형성되지 않는다”며 “쥐를 일주일간 재우지 않으면 면역력이 사라져 죽는다”고 말했다.

만성질환자가 많은 중년 이상 세대에겐 건강을 악화시키는 방아쇠다. 홍승봉 교수는 “잠자는 시간이 적으면 혈당과 혈압을 높여 당뇨병과 고혈압 증상을 악화시킨다. 장기적으로는 심장혈관질환 위험이 커진다”고 말했다. 브라질 상파울루 의대 데토니 교수가 올해 발표한 연구결과 5시간 수면한 사람은 7시간 수면한 사람보다 맥박·혈압·혈당 수치가 모두 높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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