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주리 기자의 캐릭터 속으로] ‘개그콘서트’ 박지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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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선

KBS ‘개그콘서트’(이하 ‘개콘’)의 코너 ‘이 죽일 놈의 사랑’은 한 남자를 20년 동안 스토킹해 온 한 못생긴 여자, 개그우먼 박지선(28)의 이야기다. 공부도 도와주고, 먹을 것도 사다 주며 뒷바라지를 다했는데 남자는 제발 그만 좀 하라고 애원한다. 그에겐 당연히, 예쁜 여자친구가 있다.

 남자를 용서할 수 없는 여자, 한껏 얼굴을 찌푸리며 소리를 지른다. “(너) 못~쉥겼다.” 한 번 더 깔끔한 마무리. “너한테 나 같은 여자? 과분해!”

 이 코너는 못생긴 여자가 ‘감히’ 잘생기고 귀여운 남자에게 큰소리치며 시청자에 카타르시스를 준다. ‘못생긴 여자는 착하기라도 해야지’라는 통념을 깨는 거다. 그러나 어쩐지 불편하다. 우리가 웃는 게 통쾌함 때문만은 아니라서다. 솔직히, 최대한 못생겨 보이도록 노력하는 박지선의 표정과 행동이 재미있다. ‘너 못생겼다’고 타박 놓는 ‘못생긴’ 여자 앞에 웃음보가 터진다.

 예쁜 여성을 방송에 출연시켜 찬사를 늘어놓는 장면만 외모지상주의를 부추기는 게 아니다. 스스로 못생겼다고 자청하는 이들이 자신의 못생김을 활용하여 웃음을 유발하는 것도 외모지상주의를 확대 재생산한다. 그렇게 못생김에 대한 혐오와 반감은 소리 없이 퍼진다. 개그는 개그일 뿐이라고 하기엔 ‘개콘’의 영향력은 막강하다.

 박지선을 보자. 순발력이 넘치는 데다 연기력도 된다. ‘하이킥’에서 깐깐한 교사 역을 맡았을 때도, ‘개콘’의 또 다른 코너 ‘불편한 진실’에서 50대 아주머니로 나올 때도 얼마나 능청스러운지. 박지선 덕분에 많이 웃게 된다. 넘치는 자신감도 예쁘다. 그가 6년 전 ‘성형 전 얼굴’로 데뷔해 지금껏 못생긴 캐릭터를 맡아온 것도 그런 자신감 덕일 거다. 그런 그에게 외모를 벗어난 이야기, 다른 담론의 개그를 기대하는 건 욕심이 아니라 믿고싶다.

 마침 박지선, 새 코너 ‘희극 여배우들’에서 이렇게 선언했다. “저는 이제부터 얼굴로 웃기지 않겠습니다.” 얼굴로 웃기지 않는 희극 여배우 박지선, 대환영이다. 비주얼만 가지고 승부하기에 당신의 재능이 아까우니까. 안타까운 건 ‘희극 여배우들’조차 못생김을 활용한 코너라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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