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취재일기

보훈처, 유공자 악용한 불법 비호하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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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7면

고성표
탐사팀 기자

“1심 재판 결과가 나온 것도 아닌데 뭐가 문제냐.”(국가보훈처 관계자)

 국가유공자 자활촌인 S용사촌 명의를 빌려 불법 수의계약을 해 지난 10여 년 동안 845억원의 매출을 올린 인쇄업자 비리 사건과 관련해 감독관청인 보훈처는 여전히 ‘문제 없다’는 식의 행태를 보이고 있다. 경찰은 현재 이 업자와 거래한 30여 개 국가·공공기관 공무원 등을 상대로 50억원대의 뇌물·향응 접대 의혹에 대해 수사를 하고 있다. <본지>7월 19일자 1, 8면>

 이미 인쇄업자 심모(51)씨가 구속됐고, 심씨에게 ‘수의계약이 가능하다’는 내용의 허위공문서를 발급해 준 보훈처 관계자 5명이 허위공문서 발급 혐의로 입건된 상태다. 수사 과정에서 보훈처 관계자들 역시 심씨가 불법업자라는 사실을 확인했다. 상황이 이런데도 보훈처는 판결 운운하며 마치 불법 업자를 비호하는 듯한 인상이다.

 2007년부터 지난해까지 매년 11억~17억원 규모의 인쇄 물량을 S용사촌 측과 수의계약 해 온 한국마사회는 현재 ‘2012년 마권용지와 구매표’ 인쇄 계약을 앞두고 있다. 마사회 측은 지난달 심씨가 구속되고, 보훈처 담당자들이 입건되자 보훈처에 “S용사촌과의 계약에 문제가 없느냐”고 문의했다. 비슷한 시기에 국민건강보험공단, 국민연금공단, 우정사업본부 산하 우정사업조달사무소 등도 같은 내용의 문의를 했다. 보훈처 관계자는 “S용사촌 인쇄정보(주)는 아직은 문제가 없으니 계약이 가능하다”고 답변했다. ‘국가유공자 자활용사촌 복지공장 현황’이라는 제목의 공문(6월 20일자)까지 보내 S용사촌 인쇄정보(주) 본점과 복지공장 세 곳이 수의계약 대상이라는 사실을 재차 확인해 줬다.

 취재팀이 중소기업중앙회의 ‘공공구매 종합정보망’에 들어가 S용사촌 인쇄정보(주) 복지공장이란 곳을 살펴봤다. 그 결과 경기도 일산과 안양 복지공장 두 곳은 일반 업자가 운영하는 D사와 H사로 확인됐다. 국가유공자와는 무관한 일반 업자가 심씨로부터 물량을 하청받아 납품했다는 얘기다. 이처럼 불법 사실이 금방 드러나는데도 보훈처는 무슨 근거로 판결까지 들먹이며 수의계약이 가능하다는 것인지 이해할 수 없는 노릇이다.

 경찰 수사팀 관계자는 “탈세가 드러나면 국세청도 즉각 세금 추징과 고발에 나선다”며 “불법 수의계약 사실이 드러났는데도 보훈처가 즉각 계약권을 박탈하기는커녕 여전히 나 몰라라 하는 이유를 알 수가 없다”고 말했다. 이러니 허위공문서를 발급해 준 보훈처가 불법업자를 묵인하고 비호한다는 의심을 받는 것 아닌가. 31일 국회에서는 국가보훈처(처장 박승춘)를 상대로 상임위원회(정무위)가 열린다. 이날 보훈처장이 과연 무슨 해명을 내놓을지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