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공자 명의 거래 보훈처·국세청 등 50억대 뇌물·향응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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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보훈처·국세청·건강보험심사평가원 등 30여 개 국가·공공기관의 일부 공무원과 직원들이 지난 10여 년 동안 국가유공자 단체 명의를 빌려 불법 수의계약 사업을 해온 인쇄업자로부터 지속적으로 뇌물과 향응 접대를 받아온 것으로 드러났다. 이들이 받은 뇌물과 향응 접대 규모는 최소 50억원대 로 추정된다.

 인쇄업자 심모(51)씨는 서울 S용사촌(국가유공자들이 집단으로 모여 사는 자활촌으로 전국 28개 용사촌 중 하나) 인쇄조합이 국가·공공기관과 수의계약을 할 수 있다는 점을 악용해 2000년부터 조합 명의를 빌려 불법사업을 해 왔다. 이를 위해 국가보훈처로부터 ‘정부기관과 수의계약이 가능하다’는 내용의 허위 공문서도 발급받았다. 심씨 일당은 국가·공공기관의 각종 인쇄물을 수의계약으로 따내 지금까지 총 845억원의 매출을 올렸다. 용사촌 회원 17명에게는 명의를 빌려준 대가로 매달 1인당 60만~90만원 정도 제공했다.

 서울 서초경찰서는 최근 심씨를 사기 혐의로 구속하고 인쇄업체 직원 20여 명을 형사 입건해 조사 중이다. 또 허위공문서 발급에 관여한 국가보훈처 관계자 5명을 입건하고, 인쇄물 발주 기관 담당 공무원 등의 뇌물 수수 혐의로 수사를 확대하고 있다. 서초서 안상길 강력계장은 “인쇄조합 내부 직원 진술, 각종 회계장부와 카드 전표 등을 분석한 결과 최소 수십억원대의 뇌물이 수십 개 기관 관계자들에게 제공된 단서가 포착됐다”고 말했다. 뇌물 수수와 향응 접대에 연루된 기관은 국민건강보험공단·조달청·통계청 등 30개가 넘는다.

 이런 수의계약 비리는 국가예산 낭비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국가·공공기관 인쇄물이 경쟁입찰로는 예정가의 60~70%대에 납품되지만, 수의계약으로는 90% 수준에 가격이 결정되기 때문이다. 국회 정무위원회 간사인 민주통합당 김영주 의원은 “국회와 관계기관이 함께 문제점을 파악한 뒤 제도 개선에 나설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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