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촌 영어교재 시장 '후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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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뱃속에서부터 시작한다' 는 한국 강남 학부모들의 영어교육열은 지구촌 현상인가. 이탈리아 중북부의 고도(古都) 볼로냐에서 열린 세계 최대의 어린이책 견본시장인 '2001 볼로냐 국제 어린이 도서전' (4~7일) 의 가장 큰 특징은 영어교육교재 성격의 책들이 부쩍 늘어났다는 점이다.

예년에도 기발한 그림이나 이미지를 통해 알파벳.숫자 등을 익힐 수 있게 만든 교육서들이 적지 않았지만 올해로 38회를 맞는 볼로냐 도서전의 지금까지의 주류는 '아이들의 상상력과 미적 감각을 키워주는 아름다운 그림책' 쪽이었다.

그러나 이번 도서전은 한국.일본.중국 등 동아시아쪽의 영어 교육열기를 반영하듯 영어 언어권 국가들은 물론 유럽과 아시아의 출판사들도 제각기 특징있는 영어교재류를 들고 나왔다.

'순수 동화' 에 주로 수여되는 전통의 '볼로냐 라가치상(賞) ' 픽션부문의 경우도 아동용(6~9세) 수상작은 알파벳 문자들의 운율이 풍부하게 느껴지는 벨기에 그림책이 선정됐고, 대개 역사.과학서들이 수상하던 논픽션부문의 유아용(0~5세) 수상작도 알파벳을 통해 신비한 자연의 세계를 보여주는 프랑스책이다.

올해 처음으로 볼로냐 도서전 멀티미디어관에 참가한 한국의 영어교육 소프트웨어 전문업체 '리틀픽스' 도 귀여운 아기여우 캐릭터와 창작 동요를 이용한 영어동화 소프트웨어를 전시, 참관자들로부터 좋은 반응을 얻었다. 이 회사의 양명선 대표이사는 "타임워너의 자회사인 '아이픽쳐북스 닷컴' 에서도 계약 조건을 타진해오는 등 미국으로 영어 학습교재를 역수출할 가능성도 있다" 고 말했다.

유아도서 시장이 커지면서 지난 3~4년간 주춤했던 각종 입체적.촉각책들이 대거 재등장한 것도 이번 도서전의 특징.

책을 펼치면 그림이 튀어나오는 전통적인 팝업북부터 피아노음을 내는 기계를 내장한 음악그림동화 등 유아때부터 자극적인 TV화면과 소음에 익숙한 아이들에게 다양한 감각적 재미도 느낄 수 있도록 고안된 책들이 특히 영미권 전시장의 경우 약 30%를 차지할 만큼 많이 전시됐다. 역시 이번에 처음 참가한 한국의 능인미디어도 동물.나무 등 소품들을 배경에 배치하는 방법에 따라 여러가지 이야기를 끌어낼 수 있도록 만든 펠트천 동화책을 소개해 눈길을 끌었다.

전통적인 그림동화 분야의 두드러진 흐름은 디즈니 애니메이션류의 그림보다 정적이고 회화적인 느낌이 강한 북유럽 작가들의 그림이 많은 관심을 끌고 있는 것이다. 『해리포터』시리즈 이후 나타난 팬터지 모험 동화의 인기도 여전했다.

어쨌든 갈수록 짙어지는 상업적인 색채에도 불구하고 '인류의 미래를 짊어질 어린이들의 오늘' 을 고민하는 어른들의 모습을 볼 수 있는 자리가 바로 볼로냐 도서전임을 새삼 확인할 수 있었다.

"특히 도서관 사서들과 일러스트레이션 작가들이 많은 유럽 참관자들은 계약과 직접 상관없는 책들에 대해서도 구경하면서 이런저런 성실한 조언을 해주기 때문에 크게 도움이 된다" 고 한국 '재미아주' 의 이호백 사장은 7년째 꾸준히 참가하고 있는 이유를 밝힌다.

도중에 잠깐 커피를 마시면서도 방금 본 그림책의 디자인에 대해 진지한 토론을 벌이는 유럽과 미국의 참관자들을 보면서 순수한 창작동화를 가지고 참가한 출판사는 재미아주와 웅진닷컴 두 곳뿐인 한국 출판계, 그리고 영어교육 열풍을 타고 번역조차 필요없는 영어 그림동화의 직수입권을 따기 위해 동분서주하는 일부 한국 출판관계자들의 모습이 씁쓸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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