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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값 20년째 추락하는 일본, 한국은 다른 길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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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일본의 한 신혼부부가 지난 17일 집을 마련하기 위해 도쿄 외곽의 아파트 단지를 둘러보고 있다. 일본의 주택가격은 1990년 버블 붕괴 이후 20년 넘게 떨어지고 있다. [사진 블룸버그]

집값 하락 공포가 확산되고 있다. ‘좀 기다리면 나아지겠지’ 하던 사람들이 자포자기의 공황 상태로 빠져들고 있다. 수도권을 중심으로 주택 담보대출을 갚거나 전세금을 빼주면 한 푼도 남지 않는 이른바 ‘깡통 아파트’까지 나오고 있다. 수도권의 아파트 값은 올 들어 평균 10% 이상 떨어졌다. 대형 아파트 가격은 2007년 고점과 비교해 30~40% 하락한 곳도 있다.

 가격도 그렇지만 거래 실종이 더 큰 문제다. “아무리 값을 내려도 보러 오는 사람조차 없다”고 발을 동동 구르는 이들이 많다. 거래가 안 된다는 것은 아직 바닥이 멀었다는 얘기도 된다. 그러다 보니 “한국의 부동산시장도 결국 일본처럼 되는 것 아니냐”는 낙담의 소리도 날로 커진다.

 “많이 올랐다가 떨어지는 것인데 뭐가 그리 대수인가. 집값은 쌀수록 좋은 것 아닌가” 하는 반론도 제기된다. 틀린 얘기가 아니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게 간단치 않다. 한번 부풀었다 꺼지는 버블은 많은 사람에게 엄청난 상처를 안긴다. 한국은 주택시장의 특수성 때문에 후유증이 더 심각할 수밖에 없다.

 한국에서 주택은 ‘사는 곳’ 이상의 큰 의미를 갖는다. 재산 형성의 수단이자 노후 대비 곳간의 역할을 해왔다. 가계 자산의 80%가 부동산이다. 이런 경향은 특히 중산층에 뚜렷하다. 주택시장의 붕괴가 곧 중산층의 붕괴로 이어질 수도 있는 이유다.

 한국의 중산층은 전·월세로 시작해 작은 집을 장만하면서 미래의 꿈을 키우기 시작한다. 목돈을 마련하면 여기에 은행대출을 보태 소형 아파트를 사고, 대출을 다 갚으면 다시 빚을 내 중형 아파트로 이사하는 식이다. 그렇게 은퇴 시점을 맞으면 대형 아파트 한 채와 퇴직금이 남고, 이를 기반으로 노후를 설계한다. 자녀가 출가하면 아파트를 중형으로 줄이고, 여윳돈이 소진되면 다시 소형으로 이사해 삶을 꾸린다. 주택은 곧 노후에 돈을 빼 쓰는 연금인 셈이다. 이제껏 이런 노후 설계는 금융회사의 연금상품에 가입하는 것보다 훨씬 나은 선택이었다. 주택 가격의 상승폭이 금융상품의 수익률을 크게 웃돌았기 때문이다. 이는 인플레이션이 가져다 준 축복이기도 했다.

 하지만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모든 게 흐트러지고 말았다. 노후가 막막해진 중산층 가구가 급증하고 있다. 2005년 이후 평수를 넓히거나 새 아파트를 분양받으려고 무리하게 대출을 받은 가구가 특히 그렇다. 만약 한국의 주택시장이 일본의 1990년 버블 붕괴 이후처럼 20년 넘도록 끝 모를 추락을 한다면 어떻게 될까. 개인 차원을 떠나 국가적·사회적 재앙이 아닐 수 없다.

 냉정하게 한번 짚어 보자. 한국의 부동산시장도 일본처럼 되는 것은 아닌지. 먼저 고령화와 저출산, 베이비부머의 은퇴, 거품이 낀 주택가격, 가계의 과도한 부채부담 등 비슷한 점이 많은 것은 맞다. 한국 주택값의 일본화를 얘기하는 전문가들이 근거로 대는 단골 메뉴다. 이미 많이 거론된 얘기이니 여기서 반복하진 않겠다.

 거꾸로 일본과 다를 수 있는 점을 짚어보고 싶다. 어찌 보면 위에서 언급한 불안 요인들을 잠재울 중대 변수들이다.

 먼저 물가 상승, 즉 인플레이션 여부다. 일본의 집값을 끊임없이 추락시킨 주범을 찾는다면 바로 디플레이션(물가 하락)이었다. 90년 버블붕괴 이후 일본의 누적 물가 상승률은 마이너스였다. 상품과 자산의 가격이 떨어지는 디플레 시대에는 현금을 쥐고 있는 사람이 최고다. 부동산에 투자하면 백전백패일 공산이 크다. 보유한 부동산이 있다면 개발 호재가 있는 블루칩을 제외하고는 하루라도 빨리 파는 게 상책이다.

 부동산값 하락과 디플레가 동전의 양면으로 같은 것 아니냐는 사람도 있지만, 그렇지 않다. 부동산값이 떨어져도 전체 물가는 얼마든지 오를 수 있다. 그리고 물가가 계속 오르는 인플레 시대에는 부동산시장도 언젠가 바닥을 확인하고 반등을 모색하기 마련이다. 일본처럼 끝없이 추락하진 않는다는 얘기다.

 한국은 어떨까? 우리나라의 소비자 물가는 연 3% 안팎씩 꾸준히 상승해 왔다. 앞으로도 그런 흐름을 유지한다면 일본과 분명 다른 길을 갈 수 있다. 물가가 3%씩 10년 오르면 복리로 34.4%가 된다. 만약 5%씩 10년이면 62.9%나 상승한다. 이처럼 물가가 오른다는 것은 돈의 가치가 그만큼 떨어진다는 얘기가 된다. 돈의 가치가 계속 떨어지면 화폐 단위로 표시되는 집값은 저절로 싸지는 셈이 되고, 결국 언젠가는 오른다는 게 상식이다.

 둘째, 경제의 지속 성장 여부다. 일본의 버블붕괴 이후 경제 성장이 사실상 멈췄다. 기업 투자와 가계 소비가 줄어드는 가운데 정부 지출로 겨우 마이너스 성장을 면하는 국면이 지속됐다. 사람들의 소득과 구매력도 당연히 정체됐다. 이런 상황에선 사람들은 집을 사고 싶어도 살 수 없다.

 한국은 앞으로도 10년은 3%대의 경제 성장을 이어갈 잠재력을 갖고 있는 나라로 평가받는다. 실질 경제규모가 10년 뒤에는 30% 이상 커져 있을 것이란 얘기다. 경제가 이렇게 성장하면서 명목 임금이 오르고 국가의 총체적인 부가 늘어나면 부동산값도 밀려 올라간다고 봐야 한다. 한국의 1인당 국민소득은 아직 2만 달러대로 신흥 성장국가군에 포함된다.

 셋째, 인구구조 이슈다. 한국도 일본처럼 될 것이란 근거로 가장 활발히 제시되는 게 바로 인구 문제다. 한국 역시 고령화 시대를 맞고 인구도 줄어들게 돼 있다. 그러나 일본과 분명 다른 점이 있다. 한국의 향후 인구 감소는 일본보다 완만하다. 한국의 베이비붐 세대는 55~74년생으로 비교적 광범하게 포진해 있다. 매년 90만 명 이상이 태어났다. 베이비붐 세대의 막내가 현재 38세로 정년(평균 55세)까지 17년 남았고, 경제활동 연령(64세)까지는 26년이나 남아 있다.

 일본은 50년대 초반부터 대대적인 산아제한 정책을 펼쳐 베이비붐 시기가 47~49년으로 짧다. 산아제한 이후 출생은 40%나 뚝 떨어졌다. 2차 베이비붐도 71~74년으로 4년에 불과하다.

 한국의 생산가능인구(15~64세)는 2020년까지 증가한 뒤 감소세로 돌아선다. 아직 8년 남았다. 총인구는 이보다 10년 긴 2030년(5216만 명 추산)까지 늘어날 것으로 예측되고 있다. 2030년 이후에도 한국은 일본처럼 되지 않을 카드를 갖고 있다. 무엇보다 적극적인 이민허용 정책이다. 벌써부터 한국은 다문화사회의 특성을 보이기 시작했다. 국내 거주 외국인은 2006년 53만 명이었던 것이 2009년 110만 명, 2011년 126만 명으로 급증 추세다. 현재 국내 인구의 2.5%가 외국인이다. 5%, 10%를 넘지 말라는 법이 없다. 폐쇄적인 일본 문화로는 불가능하지만, 우리는 해낼 수 있는 시나리오다.

 여기에 또 하나의 긍정적 변수가 있다. 바로 북한의 인구다. 올 연말 대선에서 누가 차기 대통령이 되든 간에 남북 관계는 개선되고, 인적·물적 교류가 활발해질 가능성이 크다. 그리고 앞으로 10년 이상 흐른 후에는 굳이 통일은 아니더라도 비교적 자유로운 인적 왕래가 이뤄질 것으로 기대할 수 있다. 남북한 7200만 명의 단일 경제공동체가 형성되면 부동산시장의 판도 또한 달라질 게 분명하다.

 물론 위의 세 가지 변수가 기대하는 방향으로 순탄하게 흘러갈 것이라 장담할 순 없다. 어디까지나 정부와 국민이 하기 나름이다. 정책 실기와 사회 갈등 등으로 성장 잠재력이 급속히 훼손되고, 통화정책의 엇박자로 물가가 떨어지는 상황이 오면 얘기는 달라진다. 외국인 유입과 남북 교류를 가로막는 암초를 만날 수도 있다.

 일본과 다른 길을 가더라도 앞으로 3~5년은 혹독한 시련을 더 겪어야 할 것으로 보인다. 보금자리주택의 환상과 김포·파주·동탄·별내·양주 등 수도권 신도시들의 공급 폭탄, 행정수도 이전 등에 따른 수급 쇼크 때문이다. 그 이후로도 몇 년은 바닥을 다지는 시간이 필요할 수 있다.

한국 경제의 미래를 믿는다면 10년은 각오하고 버티는 전략으로 가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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