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시중 6억 발언 번복 … 대선자금 뇌관 터지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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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2007년 12월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쓰인 대선 자금에 대한 의문이 증폭되고 있다. 최시중(75·구속 기소) 전 방송통신위원장, 정두언(55) 새누리당 의원 등 여권 실세들의 입에서 대선 자금 관련 진술이 잇따라 나오면서다. 검찰은 “대선 자금 수사에 본격 착수할 만한 단서가 아직 없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검찰로부터 19일 출두하라는 통보를 받은 박지원 원내대표가 소속된 민주통합당이 “대선 자금에 대해 전면 수사하라”고 강력히 요구하고 나서면서 대선 자금 수사 여부는 속단키 어려운 상황으로 흘러가고 있다.

 잠잠하던 대선 자금 논란에 불을 지핀 사람은 최 전 위원장이다. 파이시티 인허가 로비 대가로 이정배(55) 전 파이시티 대표로부터 8억원을 받은 혐의로 구속기소된 그는 17일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첫 재판에서 돈의 사용처에 대해 “대선 경선 자금 명목으로 받아 썼다”고 진술했다. 그동안 ‘대선 여론조사 자금→개인 용도’라고 말을 바꿨다가 다시 한번 대선 경선 자금이라고 주장한 것이다.

브로커 역할을 한 이동율씨도 "‘대선 후보 경선을 앞두고 언론포럼을 운영하고 있는데 자금이 필요하다’고 먼저 요청해 돈을 줬다”고 증언했다. 시기와 액수는 2006년 7월~2007년 6월 매달 5000만원씩 6억원과 당선 후 추가로 2억원을 더 줬다고 했다. 돈을 준 장소와 전달 방식은 여의도 대하빌딩·반포골프장 주차장 등에서 최 전 위원장 차 트렁크에 실어줬다는 것이었다.

 최 전 위원장이 돈을 받은 상황은 이상득(77·구속 수감) 전 새누리당 의원이 임석(50·구속 기소) 솔로몬저축은행 회장으로부터 돈을 받은 상황과 여러모로 비슷하다. 먼저 시기는 대선을 앞두고서다. “2007년 가을 여의도 국회 부의장실을 찾아 정두언 의원을 통해 ‘선거에 도움을 주고 싶다’며 3억원을 건넸다”는 게 임 회장 진술이다. 또 임 회장은 박스에 담은 3억원을 국회 주차장에 있던 정 의원의 차 트렁크에 옮겨 실었다고 했다. 검찰은 이 3억원이 권오을 전 새누리당 의원(당시 이명박 캠프 유세단장)에게 흘러갔다는 진술이 나오자 지난 17일 권 전 의원을 소환조사하기도 했다.

이 전 의원이 김찬경(56·구속 기소) 미래저축은행 회장에게서 3억원을 받는 과정에는 김덕룡(71·전 대통령실 국민통합특별보좌관) 전 새누리당 의원이 개입한 사실도 드러났다. 최근 불거진 신한은행 비자금 3억원의 이 전 의원 전달 과정도 마찬가지다. 이백순(60) 전 신한금융지주 부사장이 2008년 2월 직원들을 시켜 3억원이 든 가방을 남산 주차장에서 이 전 의원에게 전달했다는 것이다. 검찰은 당시 돈을 배달한 직원이 은행 법인카드로 007 가방 3개를 산 뒤 3억원을 나눠 담은 사실도 확인했다.

 검찰 수사 관계자는 “저축은행과 파이시티로부터 건네진 돈의 액수가 3억원대이고 전달 시기가 대선 직전이며 돈 받은 사람들이 하나같이 이명박 정부 창출의 1등 공신이라는 점 등으로 볼 때 대선 자금이라는 의심이 드는 것은 사실”이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이어 “현재로서는 사용처가 대선 자금일 가능성이 크다는 것 외에 수사 단서가 없긴 하지만 수사 과정에서 어떤 진술이 나오느냐에 따라 상황이 급변할 수도 있다”고 여운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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