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빈스미스의 '점원들', 한국애니메이션의 현실을 이야기하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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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케빈 스미스의 열혈팬들이 국내에 생기기 시작한 시점은 아마도 〈도그마〉가 상영된 직후인 99년 봄이 아닌가 한다. 미국에서의 엄청난 찬반논쟁과는 달리 국내에선 그리 큰 반향없이 상영되었지만 대신, 〈도그마〉의 국내팬들은 이 감독의 전작들을 찾게 되었고 덕택에 97년작인 〈체이싱 아미(Chasing Amy)〉라던지 국내 비디오 대여점에선 〈새넌 도허티의 몰래츠〉란 이름으로 출시되어있는 감독의 95년작 〈몰래츠(Mallrats)〉까지 구해서 보게 된다. 이들 전작 두편과 함께 소위 "뉴저지 3부작" (작품배경이 모두 뉴저지여서 불리워진 별칭이다)을 완성시키는 첫번째 작품인 〈점원들{Clerks)〉은 감독의 존재를 실질적으로 알린 최초의 작품(국내 미출시)이며 또한 필자가 가장 좋아하는 감독의 작품이기도 하다. (개인적인 작품의 선호도는 〈점원들〉, 〈체이싱 아미〉, 〈몰래츠〉 그리고 〈도그마〉의 순서이다.)

그의 94년도 작품인 바로 이 〈점원들〉의 극중 캐릭터와 배경을 애니메이션화하여 TV시리즈로 발표한 것이 바로 〈점원들 애니메이션 시리즈〉이며 작년 미국서 ABC방송국에서 공중파를 타고 방송되었다. 하지만 ABC에선 초기에 수퍼볼 경기도중 선전을 보낼 정도로 이 작품에 기대를 걸고 있었으나 이후 지속적인 홍보를 하지 않았고 6편의 에피소드 전편이 아닌 에피소드4와 에피소드2만을 방송함으로써 〈점원들 애니메이션 시리즈〉를 끝내 버렸다. 사실 애니메이션 점원들의 에피소드들은 실사영화 〈점원들〉과 비교하면 실망스러울 정도로 새로움을 찾아볼 수 없으며 그리 우습지도 않다. (이와 비슷한 장르이며 선배격이라고 볼수있는 〈사우스 파크〉라던가 〈비비스와 벗헤드〉가 지속적인 충격(?)을 선사하며 매니아층을 형성했던 것과 비교해 보라)

하지만 30분분량의 총6편의 에피소드중 첫번째로 작년 5월말 공중파를 타고 방송되었었던 에피소드 4는 다소 우리나라와 관련있는 부분으로 말미암아 모든 에피소드중에서 그나마 가장 재미있는 스토리(우리나라 사람들에겐 다소 기괴한 느낌을 줄수도 있는)와 앤딩을 보여주고 있기에 소개코자 한다.

한가지 재미있는 것은 자신의 작품들 속에서 끊임없이 〈스타워즈〉를 인용하길 좋아했던 케빈 스미스가 (케빈 스미스가 〈점원들 애니메이션 시리즈〉의 감독을 맡진 않았다. 하지만 프로듀서, 작가 및 역시 사일런트 밥의 목소리로 작품에 참여하고 있다.) 에피소드 4에서 역시 〈스타워즈〉를 인용하며 심지어 조지 루카스까지 등장시키고 있는데, 영화 〈스타워즈〉의 에피소드 4가 극장판으로서는 1편이 되어버린 것과 마찬가지로 〈점원들 애니메이션 시리즈〉의 에피소드4도 최초의 방송편이 되어버렸단 점이다.)

영화 〈점원들〉이 그러했듯이, 에피소드4는 단테가 점원으로 일하는 퀵스탑과 렌달이 점원으로 일하는 RST비디오 대여점을 배경으로 이야기는 시작된다. 케빈 스미스의 영화들이 바뀌어도 끊임없이 등장하는 제이와 사일런트 밥이 여기서도 등장하는 것은 당연하다. 렌달은 자신이 문제없이 단테의 퀵스탑을 운영해 보일 수 있다고 주장하고선 다음날 단테대신 퀵스탑에서 일을 하게된다. 다음날, 엉망진창이 되어버린 퀵스탑에서의 전화를 받고 단테는 출근하게 된다. 렌달이 흘려버린 쥬스에 미끌어져 광분한 제이는 댓가로 담배한갑을 단테에게 요구하지만 이를 거부한 단테에게 천만달러짜리 고소를 하게된다. 영화 〈비벌리힐즈 캅〉에서 엑셀 폴리형사의 파트너인 형사 빌리로 등장했던 레인홀드는 그의 닉네임인 '저지' 덕택에 극중에서 판사(Judge)로 등장한다. 단테를 이지경이 되도록 방치한 렌달은 어이없게 단테의 변호사임을 선언하고 판사가 등장한 모든 영화를 다 보았다고 말함으로써 판사의 환심을 사는데에는 성공한다. 연이어 등장하는 배심원들 또한 화려하다. 인디아나 패이서스의 레지밀러 (밀러타임으로 유명한), 휴스턴 라켓의 찰스 바클리 (현재는 은퇴했지만), 당시 뉴욕 닉스의 패트릭 유잉, 필라델피아 76ers의 앨런 아이버슨 그리고 디트로이트 피스톤스의 그랜트 힐등 총 12명의 흑인 농구선수들이 등장한다. 배심원분석을 위하여 고물창고의 랜도에게 도움을 청하지만 그는 "단테도 흑인들과 같이 생각하고 행동함을 보여주는것이 중요하다"는 의미심장(?)한 충고를 남겨주지만 오히려 렌달은 배심원들의 화를 돋구고 만다.

렌달은 이어서 조지 루카스, 스티븐 스필버그, 조엘 슈마허, 스파이크 리, 우디 앨런등으로부터 이들의 영화들에 오점이 있다는 이유를 들며 모두들에게 8달러씩을 환불받는다. 판사는 이들 감독들의 영화속에 자신이 참여하지 못했었다는 이유를 들어 랜달의, 재판과는 전혀 상관없는 증인신청을 눈감아 준다. (이중에서 조지 루카스에게 "〈스타워즈 에피소드 4〉에서 오비완 케노비가 루크 스카이워크에게 "내가 너의 아버지를 만났을 때 그는 훌륭한 파일럿이었다"라고 말했지만 에피소드 1에서 실제로 애나킨은 어린아이에 불과했으며 또한 에피소드4에선 오비완이 루크에게 "요다가 자신을 가르친 제다이였다"라고 이야기 했으나 에피소드 1을 볼 것 같으면 콰이곤이 오비완의 스승이었지 않으냐"고 질책한 것은 상당히 설득력이 있다)

실제 배심원 최종판결이 이루어지는 당일, 배심원들은 점점 자신들이 얼마 받지도 못하는 법정지원금과 함께 호텔에 격리되어 있는 생활에 실증을 느끼며 어떤 식으로던지 재판을 결말 지을려고 한다. 이제 관객들도 이야기의 향방이 어떤식으로 흐르게 될지 모르게 되는 순간, 검은바탕에 흰색자막이 등장한다. "어쩔수없는 상황 때문에 에피소드 4의 나머지 스크립트가 해외로 배달되는 도중 분실되어 버렸습니다. 하지만 다행스럽게도 이 작품이 한국의 애니메이터들에 의하여 완성되었으며 여러분들이 우리의 새로운 앤딩을 즐기시길 바랍니다."

그리고는 전혀 새로운 분위기가 시작된다.

갑자기 시작된 댄스파티와 커다란 눈을 가지게 된 바뀐 캐릭터들, 트랜스포머를 연상시키는 변신하는 로보트와 피카츄, 그리고 세일러문, 열악한 환경에서 족쇄를 차고 노예처럼 채찍질당하며 일하고 있는 한국의 애니메이터들, 이들을 감독하는 괴수가 내뱉는 말은 뚜렷한 한국자막으로 "열심히 일해"라고 나온다. 이 괴수를 상대하는 판사인 빌리 형사는 엑셀 폴리와 함께 주특기인 그의 바나나 꼽기(?)로 그리고 연이어 등장하는 탐 크루즈는 그의 옆차기로 괴수를 처지한다. 실제로 〈점원들 애니메이션 시리즈〉의 동화는 한국의 애니메이션 제작업체인 새롬애니메이션에서 만들어 졌다.

이러한 앤딩을 선택한 케빈의 의도는 불명확하나, 피카츄나 세일러문등과 같은 저패니메이션을 유치하다고 주장함과 동시에 (실제 뉴저지에 만화가게를 가지고 있을정도로 만화광이기도한 그가 어떻게 이러한 편협된 시각의 앤딩을 만들었는지 혹은 동의했는지 이해가 가지않지만) 한국의 애니메이션산업실태를 간접적으로 보여준 것이라고 추정된다. 황당한 앤딩에 기분이 썩 좋진 않았지만 우리도 하루빨리 하청의 위치에서 벗어나 (산업적인 측면에선 역시 중요하긴 하지만) 우리만의 애니메이션 작품들로 세상에 자랑하게 되는 날이 오게되길 바래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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