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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년만에 밝혀진 '박종철 고문치사' 제보자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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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일 서울 여의도 한 카페에서 박종철 고문 치사사건의 ‘딥 스로트’ 이홍규(75) 전 대검찰청 공안4과장이 1987년 당시 상황을 설명하고 있다. [김성룡 기자]

17일 서울 여의도의 한 카페에서 만난 ‘딥 스로트’ 이홍규(75·당시 대검찰청 공안4과장)씨는 온화한 인상이었다. 신성호 전 중앙일보 수석논설위원의 논문에 자신의 실명을 쓰는 것을 허락했지만, 인터뷰는 한사코 마다했다. 하지만 “역사적 사건이 어떻게 알려졌는지를 육성으로 전해 달라”는 기자의 끈질긴 설득 끝에 마침내 입을 열었다. 이씨는 사건의 내용을 제보한 이유를 묻자 “어린 학생이 죽었는데 이를 묻으려 해 너무 화가 나서 한 일”이라고 답했다. 그는 1966년 1월 검찰 공무원으로 공직생활을 시작해 87~89년 대검찰청 공안4과장을 맡았고 95년 은퇴했다.

 - 고문 치사사건에 대해 말을 꺼낸 이유는.

 “박종철군이 14일 사망한 뒤 바로 다음 날 아침, 공안부장 티타임에서 이 얘기가 나왔다. 대학생이 경찰 수사 도중 죽었다는 내용이었다. 공안부장인지 자세히 기억은 안 나지만 ‘절대 외부에 발설하지 말고 입 조심하라’고 했다. 그런데 곱씹어 볼수록 너무 화가 났다. 어린 학생이 죽었는데 이렇게 묻어야 하나 싶었다. 그래서 평소 신뢰관계에 있던 신성호 기자가 왔길래 내용을 알려주게 됐다.”

 - 보도 이후 압박은 없었나.

 “기사가 나간 뒤 검찰청이 쑥대밭이 됐다. 제보자 색출 작전도 벌어졌다. 하지만 아무도 단서를 잡지 못했다. 보도가 나간 것을 보며 복잡한 마음이 들었지만 진실은 반드시 알려져야 한다고 생각했다.”

 - 이후 어떻게 살아왔나.

 “95년 은퇴하고 법무사로 일했다. 지금은 이마저도 은퇴한 상태다. 지난해 담낭 제거수술을 받은 뒤로 건강이 안 좋아져 거동을 많이 하지 않는다. 아내도 폐암 수술을 받은 터라 간병을 하며 지내고 있다. 가끔 검찰 시절 함께 일했던 동료들도 만난다. 때로는 당시 얘기도 한다. 하지만 단 한 번도 그 사건을 제보했다는 얘기를 그 누구에게도 한 적이 없다. 검찰 중 아무도 제보자가 누군지 모를 것이다. 신 기자 외에 세상 그 누구도 모르고 있었다.”

송지영 기자

◆딥 스로트(deep throat)=내부 비리를 고발하는 익명의 제보자. 직역하면 ‘목구멍 깊숙이’를 뜻한다. 미국 워터게이트 사건을 특종보도한 워싱턴포스트의 밥 우드워드 기자가 이 사건의 제보자를 ‘딥 스로트’라고 부른 데서 유래했다. 워터게이트 사건 제보자는 마크 펠트 전 FBI 국장인 것으로 2005년 밝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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