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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성호 당시 중앙일보 기자가 밝힌 25년 전 그날 취재과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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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신성호 전 수석논설위원

1987년 민주화운동은 한 대학생의 억울한 죽음이 씨앗이 됐다. 당시 서울대 언어학과 3학년이었던 박종철. 스물셋 청년은 경찰의 물고문으로 숨졌다. 경찰은 이 사실을 은폐하려 했다. 그러나 박씨가 숨진 다음 날, 한 특종기사로 세상에 알려졌다.

 중앙일보 87년 1월 15일자 7면에 실린 기사의 제목은 이랬다. '경찰에서 조사받던 대학생 쇼크사'.

 이 기사를 작성한 신성호(56) 전 중앙일보 수석논설위원이 특종보도의 '딥 스로트'(제보자)를 공개했다. 최근 발표한 고려대 언론학과 박사학위 논문 '박종철 탐사보도와 한국의 민주화 정책변화'에서다. 지금까지 이진강 전 변호사협회 회장(당시 대검 중앙수사부1과장), 최환 전 부산고검장(당시 서울지검 공안2부 부장) 등이 딥 스로트로 지목됐었다. 논문에 따르면 신 전 위원에게 정보를 제공한 이는 당시 이홍규 대검 공안 4과장이었다. 그의 논문을 토대로 87년 1월 15일, 긴박했던 하루를 재구성했다.

 #검찰청사=87년 1월 15일 오전 7시30분. 중앙일보 법조 담당 신성호 기자(당시 31세)는 서울 서소문동 검찰청사에 들어섰다. 검찰청사 이곳저곳을 취재하던 신 기자는 9시50분, 엘리베이터 10층 버튼을 눌렀다. 평소 친하게 지내던 이홍규 공안4과장과 차나 한잔할 요량이었다.

 "경찰들 큰일 났어."

 소파에 앉자마자 이 과장이 말을 꺼냈다. 법조 출입 6년차였던 신 기자는 그의 목소리에서 뭔가 심상치 않은 일이 벌어졌음을 직감했다. 신 기자는 단도직입적으로 물어봤다가 일을 그르칠 수 있다는 생각에 마치 다 알고 있다는 듯 맞장구를 쳤다.

 "그러게 말입니다. 요즘 경찰들 너무 기세등등했어요."

 "그 친구 대학생이라지? 서울대생이라며."

 대화는 이어졌고, 이 과장의 말을 토대로 이런 문장이 만들어졌다. '남영동에서 경찰 조사를 받던 서울대생이 사망했다'. 남영동이라면 치안본부(경찰) 대공수사단이 있는 곳이다. 신 기자는 서둘러 사무실을 나와 전화기를 들었다. "부장, 경찰 조사를 받던 서울대생이 죽었습니다."

 #중앙일보 편집국=이두석 사회부장은 신 기자와 치안본부, 서울대 출입기자에게 추가 취재를 지시했다. 신 기자는 중앙수사부 1과장 이진강 부장검사에게 달려갔다.

 "조사받던 대학생이 왜 갑자기 죽었습니까. 고문 아닙니까." 이 부장은 당황했다. "가능성은 있지만 아직 단언할 수는 없어. 쇼크사라고 보고했으니 조사를 더 해봐야지"라며 말끝을 흐렸다.

신 기자는 공안사건 보고를 받는 서울지검 최명부 1차장 검사를 만났다.

"노인도 아닌 젊은 청년이 쇼크사했다는 게 말이 됩니까. 고문 여부에 대해 검찰이 수사에 나서야 되는게 아닙니까."

신 기자의 질문에 최 차장검사의 굳어진 얼굴로 확인을 해주지 않았다. 최 차장검사는 "기사를 조금이라도 잘못 쓴다면 책임을 면하기 어려울 것" 이라는 경고도 빼놓지 않았다.

신 기자는 오전 11시30분쯤, 숨진 학생의 인적사항을 확인하기 위해 서울지검 공안부의 김재기 검사실로 달려갔다.

"경찰 조사 받다 숨진 서울대생 이름이 뭐지요." (신 기자)

"박종 뭐더라?" (김 검사)

"학과는요?" (신 기자)

"언어학과 3학년."

 중앙일보 편집국은 급박하게 돌아갔다. 추가 취재를 통해 사망자의 이름과 학과를 확인했다. 오후 12시. 당시 석간이던 중앙일보 첫판 인쇄는 이미 시작됐다. 신 기자는 전화로 기사를 부르기 시작했다. 금창태 편집국장대리가 윤전기를 세우고, 기사를 사회면에 밀어넣었다. '박종철 고문 치사사건'이 특종보도되는 순간이었다.

 기사가 나간 뒤 곳곳에서 압력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문공부 홍보조정실 담당자가 금 국장대리에게 전화해 "기사를 당장 빼라"며 욕설을 퍼부었다. 강민창 치안본부장도 "오보" 라며 항의했다. 오후 6시 경찰은 기자회견을 열었다.

 "수사관이 책상을 '탁' 하고 치니 박종철군이 '억'하고 죽었습니다."

 말도 안 되는 해명에 여론은 분노에 휩싸였고, 결국 그해 전국적인 민주화운동으로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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