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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택은 고통이다 고통 주는 교육제도의 함정은 당사자가 되어야 보인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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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일러스트=김회룡 기자]

A와 B라는 두 길이 있다고 하자. A는 안전하지만 멀고 B는 위험하지만 가깝다. 구약성서 민수기를 보면 3000여 년 전 이스라엘 민족이 두 길의 선택을 놓고 극도로 동요하는 장면이 나온다. B를 미리 정탐한 사람들의 평을 듣고 나서였다. 일부가 “그 길엔 견고한 성읍이 있으며, 그 백성들의 신장이 장대해 우리는 메뚜기 같더라”고 보고했다. 결국 두려움은 역선택을 하게 했다. 직선 코스로 일주일이면 도달할 수 있는 길이 아닌 광야에서 30년간 뱅뱅 도는 길이었다. 어리석은 인간들이라 비웃지 마시길.

 현재 고2 이하 학생 앞에도 두 개의 길이 놓여 있다. A형(쉬운 수능)·B형(다소 까다로운, 그렇지만 현재 수준의 수능)이다. 쉬운 게 좋다고 A를 선택하겠다면 고려할 게 있다. 학생들이 가고 싶어 하는 대학 대부분은 B(문과는 국어·영어, 이과는 수학·영어)를 요구하고 있다.

 지난 주말인 14일 고2 아들을 데리고 온라인 입시업체 메가스터디가 개최한 대입 설명회에 찾아간 것은 그런 선택이 코앞에 닥쳤기 때문이다. 이곳을 찾은 수천 명의 학부모와 학생들은 큰 행사장 좌석을 다 채웠고, 강단 앞과 통로 바닥에도 종이를 깔고 앉았다.

 선택은 고통이기도 하다. 현재 수험생과 학부모들이 대학들이 쏟아낸 대입 전형 3298개 가운데 하나를 골라야 한다면 내년 수험생들은 수능의 어떤 유형에 응시할지부터 고민해야 한다.

 “선택을 통해 학생들의 부담을 줄여준다고? 머리가 안 좋으면 가만히 있지.”

 대표 강사가 격하게 현 정부를 성토하자 학부모들도 같이 씩씩댔다. 이명박(MB) 교육정책의 근간은 학생과 학부모에게 선택권을 준다는 데 있다. 선택권의 확대는 교육 소비자에게 만족을 준다는 합리적 선택이론에 기초한다. 그래서 미국 물을 먹은 교육학자들은 “굳이 이과학생들이 어려운 언어(국어)시험을, 문과학생들이 어려운 수학시험을 봐야 하나. 수준에 맞게 시험을 선택해야 학업 부담이 준다”고 정부에 장단을 맞춰줬다.

 그런데 정책 입안자나 학자들이나 못 보는 게 있다. 수능은 표준점수로 계산되기에 응시집단의 구성에 따라 점수가 달라진다는 함정 말이다. 현재 수능 같으면 국어가 약한 이과생이나 수학이 약한 문과생이라도 모두 같은 시험(언어, 수리 나형)을 보기에 이들이 성적을 깔아준다. 하지만 선택형이 되면 국어 B의 응시집단은 공부 좀 하는 문과생, 수학 B는 성적 되는 이과생만 남는다. 이렇게 되면 표준점수 잘 받기가 쉽지 않다. 그러니 선택권을 주면 부담도 줄어든다는 말은 성립될 수 없는 허구다. 만일 정책 결정자와 관변 학자들이 이런 함정을 간과했다면 사교육업체로부터 머리 나쁘다는 막말을 들어도 싸다.

 “새로운 수능, 실험 대상이 될 것인가.” 입시업체 행사장의 문구였다. 누가 사고 치고, 누가 우리를 걱정해주는 건지.

글=강홍준 기자
사진=김회룡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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