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기운을 만끽하는 기쁨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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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9호 27면

긴 가뭄 끝에 장대비가 세차게 내린다. 바닥을 드러낸 전국 수원지의 물 걱정도 한 시름 덜게 됐다. 어제 삼경엔 빗소리와 함께 잠을 청했고 오늘 새벽은 추녀의 낙숫물 소리에 잠을 깼다. 대낮까지 그칠 줄 모르고 내리는 비를 한참 동안 물끄러미 바라보다, 이내 스스로 너무 처져버린 느낌이 싫어서 찻상을 당기고는 물을 끓였다. 끓는 물은 올라가면서 소리를 내고 비는 내려오면서 소리를 낸다. 두 소리가 방문을 경계로 묘하게 어우러진다.

삶과 믿음

고개를 돌려 건너편 수정봉(水晶峰)을 쳐다보니 안개구름이 느슨하게 가로로 비스듬히 걸려 있다. 수정봉은 그 이름만으로 이미 물기운을 가득 담았다. 거기에 더하여 산봉우리 정상에는 돌거북 형상을 한 바위가 한 자리를 차지했다. 산이지만 물기둥이라고 여긴 까닭이다. 주로 목조건물로 이루어진 절집은 늘 화재 방지를 위한 비책까지 염두에 둬야 했다. 그래서 불기운을 누르기 위한 비보(裨補)를 항상 주변에 만들었다. 수정봉을 떠받치면서 절 마당 끝에 절벽처럼 서 있는 산호대(珊瑚臺)는 아예 바닷물을 빌려오는 역할까지 맡았다. 불그스름한 산호 빛깔만으로는 정체성과 능력이 의심스럽다고 여겼는지 ‘산호대’라는 글씨를 손 타지 않을 정도의 높이에 눈에 거슬리지 않을 만큼 정성껏 새겨 그 영험을 더했다.

산호는 산(山)은 말할 것도 없고 더 높은 곳인 하늘까지 올라가는 수고로움도 마다하지 않는다. 산호나무(prijta)는 도리천(<5FC9>利天)에 있다. 물론 그 모양이 산호처럼 생겼던 까닭에 붙여진 이름이다. 붓다가 하늘세상에 살고 있는 이들을 위한 가르침을 펼 때 산호나무의 그늘자리를 주로 이용했다. 인간세계의 보리수 역할을 천상세계에서 산호수(珊瑚樹)가 대신했던 것이다. 그런 까닭에 아함경에서 ‘산호수는 모두에게 기쁨을 주는 나무’라는 칭찬을 들었다.

비로 인해 온 도량에 물이 그득하다. 산에서도 잠시나마 바다의 잔영을 본다. 티베트 사람들은 사막과 고산으로 둘러싸인 해발 3000 m 고원지대에 있는 그 호수를 ‘청해(淸海·칭하이)’라고 불렀다. 달라이 라마 성하의 함자인 ‘달라이(Dalai)’도 대해(大海)라는 의미라고 하지 않았던가. 한반도 영남내륙 깊숙한 곳에 자리 잡은 해인사(海印寺)는 아예 이름 첫 자에 ‘바다 해(海)’자를 붙여 놓았다. 이처럼 해수가 먼 지역도 바다 운운했던 것이다. 하지만 큰 바다 역시 언제나 아득히 높은 산을 그리워하고 있을 게다. 어쨌거나 그 옛날 한때 속리산도 바다였을 것이다. 산호대는 그때를 추억하며 묵묵히 자기 자리를 지키고 있는 것이리라. 예전에 지독한 감기몸살을 한동안 앓던 제주도 출신 스님이 흰 마스크로 입을 가린 채 퀭한 눈빛으로 “아! 갯것 냄새 맡으면 금방 일어날 것 같은데”라고 혼잣말로 중얼거리던 그 심경을 알 것도 같다.

내릴 만큼 내렸는지 비가 잦아들기 시작한다. 하지(夏至)가 지나긴 했지만 여전히 낮이 길어 일몰시간임에도 숲 주위까지 훤하다. 산책 삼아 동구 밖까지 물 구경을 갔다. 해자(垓字)처럼 절을 감싸고 흐르는 계곡 한 켠에 놓여 있는 징검다리는 물속에 잠겨 이미 자기 역할을 접었다. 큰 물이 지나간 뒤 개울 안의 큰 키 풀들은 그대로 드러누운 채 아예 일어날 생각조차 하지 않고 있다. 씩씩해진 물길을 만끽하는 호사를 누린 덕분에 넉넉해진 마음으로 다시 본래 자리로 돌아오니, 젖은 산호대 위로 별빛이 하나 둘 내려오고 있었다.



원철 한문 경전 연구 및 번역 작업 그리고 강의를 통해 고전의 현대화에 일조하고 있다. 글쓰기를 통해 세상과 소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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