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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태환·펠프스 힘 합쳐도 못 깬다, 수영 50m 18초15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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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책으로 만나는 올림픽 2012 런던 올림픽이 바짝 다가왔다. 현대 올림픽은 스포츠·방송·문화·기업 등이 결합된 초대형 이벤트지만 아무래도 백미는 땀방울을 쏟아내는 선수들이다. 고대 그리스 올림픽 이래 ‘더 빠르게, 더 높이, 더 강하게’를 외쳐온 올림픽의 속살을 뜯어본다.

신기록에 도전하려는 인간의 욕망에는 끝이 없다, 지난달 30일 미국 네브래스카주 오마하에서 열린 런던 올림픽 미국 수영 대표 선발전 남자 접영 100m 예선 모습. 오른쪽이 ‘수영 황제’ 마이클 펠프스다. 펠프스는 역대 올림픽 최다 금메달리스트(14개)다. [AP=연합뉴스]

퍼펙션 포인트
존 브랜커스 지음
박지니 옮김
예지, 336쪽, 1만5300원

평소 스포츠 중계를 즐겨 본다. 사람의 몸에서 터져 나오는 힘과 아름다움, 상대의 수를 미리 읽으려는 머리싸움, 평소 좋아하는 선수에 대한 응원까지. TV에 빠져있다 보면 한두 시간이 훌쩍 지나간다.

 그런데 몰랐다. 스포츠 책도 이토록 박진감 넘칠 줄을…. ‘아는 만큼 보인다’는 문화유산 전도사 유홍준 교수의 말은 이 책에 꼭 들어맞는 표현이다. 마지막 장을 덮고 나면 주변에 나름 해박한 지식마저 뽐낼 수 있을 것 같다. 물리학·열역학·생리학·통계학·생체역학 등, 가희 스포츠 과학의 향연이라 할 만하다. 베이브 루스·우사인 볼트·마이클 조던·마이클 펠프스·타이거 우즈 등 우뚝한 스타들도 줄줄이 등장하니 얘기가 쏙쏙 들어온다.

 책 제목 ‘퍼펙션 포인트(Perfection Point)’는 인간의 육체가 다가설 수 있는 최고의 기록을 뜻한다. 아직은 요원하지만 끝내는 도달 가능한 임계점, 혹은 한계점이다. 스포츠 중계 해설자가 툭 하면 꺼내 드는 단골메뉴다.

 주목되는 건 이 평범한 메뉴를 조리하는 솜씨다. 스포츠 과학의 최신 연구성과를 알맞게 버무려 일반 독자들이 소화하기 쉽게 내놓았다. 조금 과장하면, 세상의 모든 지식을 탐해 생명까지 내건 파우스트 박사처럼 인간이 경기 도중 숨을 거두기 일보 직전까지 어떤 극한치에 도달할 수 있는지를 탐구한다. ‘인체 사용 설명서’의 최종판이라고나 할까.

 우선 마라톤. 약 2500년 전 그리스 청년 페이디피데스가 고국에 승전보를 알리기 위해 달렸다는 40여㎞는 사실 확인되지 않는 신화와 비슷하다. 1896년 근대 올림픽 부활 당시의 기록은 3시간 18분. 그것도 오늘날 같은 42.195㎞가 아니라 40㎞에 불과했다. 1920년 제7회 안트베르펜(네덜란드) 올림픽까지는 그 거리마저 들쭉날쭉했다.

 현재 최고기록은 에티오피아의 게브르셀라시에가 2008년 세운 2시간 3분 59초. 온갖 과학적·정신력 훈련을 거쳐 인간이 찍을 수 있는 완벽한 기록은 1시간 57분 58초라고 한다. 가장 중요한 변수는 최적의 산소대사력(탄수화물·지방 등이 피로물질 젖산이 아닌 에너지원 ATP로 바꾸는 것), 근육에 탄수화물을 오랫동안 보존하는 능력 등. 우리가 상식적으로 알고 있는 폐활량의 비중은 상대적으로 작다. 폐에 저장된 산소 가운데 실제 흡수되는 양은 날숨으로 뿜어내는 양보다 적기 때문이다. 참고로 100m 달리기 한계기록은 8.99초로 예측됐다. <본지 13일자 28면>

 올 런던 올림픽에서 박태환의 낭보가 기대되는 수영 종목에선 자유형 50m를 집중 분석했다. 야생의 힘과 속력을 다투는 최고의 거리라는 판단에서다. 즉 두 팔과 두 다리를 이용해 가장 빨리 물살을 헤치는 경기라는 것이다. 현재 이 종목 최고 기록은 2009년 프랑스의 프레데릭 부스케가 세운 20.94초. 그런데 인간이란 종(種)이 변하지 않는 한 도달할 있는 기록은 18.15초로 제시됐다. 체중 91㎏, 신장보다 10㎝ 가량 긴 양팔 길이, 섭씨 25.5~26.5도의 수영장 수온 등 모든 조건이 완벽히 갖춰졌을 때 나올 수 있는 수치다.

 야구의 꽃인 홈런은 또 어떤가. 야구 초창기에는 홈런이란 개념이 없었다. 외야에 묶어놓은 줄을 넘어가면 예외 없이 2루타로 처리됐다. 홈런을 히트상품으로 격상시킨 이는 ‘장타의 술탄’으로 불렸던 베이브 루스. 보스턴 레드 삭스 신인 시절 그는 143.25m의 장타를 운동장 밖으로 넘겼다. 현재 최장 홈런 공식기록은 1953년 미키 맨틀이 세운 172m다.

 그렇다면 최적의 타격은 어떤 것일까. 투구 속도와 회전수, 배트의 타이밍과 타격 각도, 경기장 안의 기온과 풍속, 타자의 엉덩이 회전력 등 변수는 다양하다. 시속 160㎞(더 빠르게 던지면 투수가 부상할 수 있다)의 투구를 배트 시속 204㎞로 때려 공중을 향해 35도 각도로 날릴 때 최장의 비거리(228m)가 나온다고 한다. 저자는 이런 엄밀한 잣대로 농구·골프·벤치프레스 종목별 ‘퍼펙트 포인트’를 추산한다. <그래픽 참조>

 골프 애호가라면 귀가 솔깃해질 대목 하나. ‘서투른 목수가 연장 탓한다’는 속담처럼 기능이 향상된 클럽을 사용해도 “지구 탄생 이래 미국인의 평균 핸디캡에는 일말의 변화가 없었다”고 한다. 멀쩡한 장비를 버리고 신상품을 사게 하는 건 골프용품사의 마케팅 전략일 뿐이라는 것. 신제품으로 드라이버샷을 잠시 늘릴 수 있지만 핵심은 근력 키우기, 유연성 키우기, 클럽 스윙의 속도 조절 등 과학적 훈련이다.

 저자는 2009년 착용이 금지된 첨단 전신수영복, 테스토스테론·스테로이드 등 금지약물 논란 등 스포츠 산업의 명암도 훑는다. 기량 차이가 ‘도토리 키 재기’인 최정상급 선수들의 우열을 가르는 결정적 항목은 정신력이라는 지적이 설득력 있다. 챔피언들은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사실 책에 명기된 ‘퍼펙션 포인트’는 극단적으로 믿거나, 말거나다. 온갖 과학적 증거로 무장했어도 언제 실현될지는 불투명하다. 수백 년도 모자랄 수 있다. 그럼에도 다음 같은 저자의 항변에는 주억거릴 수밖에 없다.

 “그런 지점(한계점)이 존재한다 해도 도달하는 게 불가능하다면, 왜 굳이 밝혀내려는 수고를 할까. 우리는 그것으로부터 무언가 지향할 대상을 찾게 되기 때문이다.” 스포츠맨십의 당당한 선언이자, 인간이란 생명체의 존재 이유처럼 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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