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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식 → 같기식, 정수 → 옹근수 … 용어도 다른 북한 수학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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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1면

북한 중1 수학 교과서

‘남조선의 애국적 소년들이 미제 침략자를 반대하는 삐라를 붙이려는데 한 소년이 3매씩 붙이면 18매가 남고, 6매씩 붙이면 한 소년만은 6매보다 적게 붙이게 된다. 삐라의 매수와 소년의 인원수를 구하라’.

 북한의 중등학교 3학년(우리의 중3에 해당) 수학 교과서에 실린 문제다. 다분히 정치적인 용어가 사용된 점만 뺀다면 그 자체는 단순한 연립방정식 문제다. 정답은 소년 7명, 삐라는 39장이다. 하지만 북한은 이처럼 수학문제에도 주체사상을 주입하고 한국과 미국을 적대시하는 내용을 많이 포함하고 있다.

 미국 나약(Nyack)대 이정행(수학과) 교수는 11일 북한의 수학교육 실태에 대해 발표했다. 9일부터 이어지고 있는 제12차 국제수학교육대회(ICME-12)에서다. 이 교수는 수학교사 출신 탈북자 5명과 학생 10명을 심층 면담했다. 이에 따르면 북한의 수학수업은 되살리기(복습)→숙제 검열→당 정책화→새 지식 주기→다지기 순서로 진행된다. 매 수업 중간 진행되는 7분간의 당 정책화 시간에는 교사가 노동신문이나 김일성의 업적을 기린 책 등을 읽어주며 주체사상을 주입한다. 수학용어는 많이 달랐다. ‘좌표’를 ‘자리표’로, ‘등식’을 ‘같기식’으로 쓰는 등 한글 표현을 주로 사용한다. 사인·코사인 등 영어식 표현은 러시아어인 ‘시누스’ ‘코시누스’ 등으로 쓴다.

 반면 교과과정은 대체로 우리와 유사했다. 이 교수는 “북한 역시 한국과 마찬가지로 미적분·함수·방정식 등을 배운다”며 “하지만 정규교육을 마치는 학생이 많지 않아 전체적인 수준은 한국보다 떨어진다”고 말했다. 특이한 점은 북한이 초·중등 과정에서 2001년까지 확률과 통계를 가르치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 교수는 “확률·통계는 증권시장이나 카지노, 복권 등의 영역에 많이 쓰이는데 북한에선 이런 것들이 없기 때문인 것 같다”고 추정했다. 북한은 2002년부터는 확률과 통계를 교육과정에 포함시켰다.

 북한도 학교별로 영재반인 ‘소조반’을 두고 있다. 과학과 수학에 재능 있는 학생들을 따로 가르치기 위해서다. 소조반에서도 두각을 드러낸 학생들은 시·도 차원에서 특별관리하고 평성 이과대·김책공대 등 명문대 교수들이 직접 뽑아간다고 한다.

이유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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