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 만난 춤동아리 대학가는 '舞風지대'

중앙일보

입력

■1 춤에 목숨 걸다

지난 16일 오후 5시30분. 이화여대 신 체육관 105호에 신입생들이 하나 둘씩 모이기 시작했다. 지긋이 다문 입술에 긴장된 표정이 넘쳐났다.

이날은 바로 이 대학 춤 동아리 '액션' 의 2차 오디션 날. 강의실 바로 옆 3번 홀에는 면접을 위한 테이블과 반주용 오디오가 설치돼 있었다.

"안녕하십니까. 저는 이화여자대학교 인문과학대학 공일학번 ***입니다. "

애써 힘껏 목소리를 높였는데도 선배들의 성에 차지 않았다.

"목소리가 그것밖에 안돼?"

이러기를 몇 차례. 춤에 대한 열정을 말해 보라는 주문부터 좋아하는 스타일까지 몇 가지 질문과 답변이 오갔다. 그리곤 춤실력을 선보이는 차례. 몇몇은 쑥쓰러워했다. 하지만 대개는 CD나 테잎을 직접 준비해와 "7번 트랙을 틀어주세요" 하며 재즈댄스나 힙합을 췄다.

"예전부터 춤이 좋았고 내 안에 불타고 있는 열정을 알고 있었어요. 대학에 왔으니 그걸 터뜨리고 분출하고 싶었죠. 음악을 타고 저절로 춤을 추다보면 한없이 자유롭고 즐거워져요. " 오디션을 마친 이 대학 사회대 신입생 임민영(20) 씨의 얘기.

하루 전날인 15일 열린 연세대 춤동아리 '하리' 의 오디션에도 80여명의 학생들이 몰렸다. 방송사에서도 촬영을 나왔다. 최종 합격자는 40여명.

"폼 한 번 잡아보고 싶다" 는 신입생은 여지없이 떨어졌다. 춤동아리에 춤보다 면접 비중이 더 컸기 때문이다.

"나이트에 가서 자랑하고 싶어서 들어왔다면 우리는 필요없다. 춤을 통해 사고를 자유롭게 하고 창작 안무를 할 정도의 정신력이 신입생에게 제일 중요하다. "

인터넷에 익숙한 신입생들이 대학의 오프라인 동아리에 잘 가입하지 않는 분위기 속에 춤동아리만큼은 예외였다.

■2 사이버 동아리도 북적

대학가의 대표적 춤동아리는 서울대의 '히스' , 고대 'KUDT' , 연대 '하리' , 이대 '액션' , 숙대 '맥스' , 국민대 '버스터' 등등. 각 대학마다 춤동아리가 하나 이상은 결성됐다.

최근엔 단과대학별 춤동아리도 생기고 있다. 인터넷 커뮤니티 '다음' 이나 '프리챌' 등에는 지역.연령별로 결성된 힙합.재즈댄스 동아리가 수백개에 달한다.

이들이 주로 추는 춤은 힙합과 재즈댄스가 압도적이다. 여기에 브레이킨, 라틴댄스, 디스코 등이 추가된다.

대학가에 춤동아리가 생겨난 것은 1996년을 전후해서다. 저항의 시대 80년대를 지나 상실의 시대라던 90년대 중반부에 들어서야 춤은 양지로 나왔다.

당시까지도 춤은 고작해야 "나이트에 다니는 애들이 즐기거나 술을 마셔야 할 수 있는 것" 으로 치부됐었다. 그런데 술도 안 마시고, 그것도 대낮에 캠퍼스 한복판에서 춤연습을 하는 모습은 충격이었다.

대학사회에 논란이 되기도 했고 대학 동아리의 주류는 그들을 인정하려 하지 않았다

그런데 상황은 역전됐다. 최근 대학생 오리엔테이션의 최대 인기 공연은 춤동아리가 독차지한다. 지상파 방송사, 기업체 행사, 각종 문화공연에도 섭외를 받을 정도다. 매년 한 차례씩 여는 정기 공연도 최소 1천여명 이상의 관객 동원력을 가지고 있다.

여기에는 이들의 피나는 노력이 있었다. 이대 액션의 경우 일주일에 세 번, 네 시간씩 연습을 한다. 공연을 앞두고는 거의 매일 연습이다. 그래서 대학내에 이 동아리의 팬클럽까지 생겨났고 회원도 1백명을 넘는다.

그리고 TV에 나오는 댄스그룹의 춤을 카피하는 것은 금기다. 대개의 춤동아리가 자체 교육프로그램을 가지고 기본기 연마에 힘쓴다. 그리곤 새로운 춤을 개발하기 위해 외국의 춤 비디오, 자료 등을 구해 연구한다.

■3 몸의 문화

60년대 트위스트, 70년대 고고, 80년대 디스코 식으로 춤은 언제나 유행했었고 한 세대를 가르는 코드였다. 그러나 주로 밤의 문화였고 술과 함께 존재했으며 대놓고 할 수 있는 양지의 문화가 아니었다.

하지만 요즘은 다르다.

"시를 쓰고, 그림을 그리고, 악기를 연주하는 것처럼 우리도 몸 속에 갇혀진 열정이나 분노, 느낌을 몸으로 표현하는 거거든요. " (연대 사회계열 2학년 김지성)

"같이 춤추며 땀 흘리고 나면 가슴이 다 후련해요. 살아있다는 느낌 그 자체죠. 춤은 처음부터 끝까지 멈춰선 동작이 없거든요. " (연대 정보산업공학과 2학년 김동언)

특히 저항와 자유을 상징하는 힙합과 재즈댄스는 가속도를 붙였다. DDR, 펌프 등 최근 인기를 끈 댄스 게임도 큰 몫을 했다.

춤을 대하는 코드가 달라졌다. 기성세대의 춤문화는 인간 감정 표현의 원초적 형태인 춤이 그 육체성과 술기운으로 인해 성적 욕망을 부추기기 때문에 음지에 머물 수 밖에 없었다.

반면 최근 대학가의 '춤바람' 은 생활의 일부며 생각의 표현이다. 기성세대가 읽고 해석하며 서로의 커뮤니케이션을 했다면 이들은 느끼고 함께 춤을 추면서 공감한다.

문화평론가 김종휘씨는 "기성세대에게 춤이 하나의 통과의례였다면 지금 대학가의 춤은 곧 생활의 일부다.

몸의 문화가 삶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이 된 것이며 이는 인터넷으로도 해결할 수 없는 욕망의 표현이다" 라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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