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취재일기

재래시장 가보고 화폐 위조 방지 대책 다시 세워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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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김민상
사회부문 기자

솔직히 지폐가 앞뒤로 갈라질지 긴가민가했다. 인터넷에서 1만원권 위조지폐 제조법을 찾아 그대로 따라 하면서도 실제로 가능한지 의심스러웠다. 하지만 지폐는 물에 불린 지 30분 만에 거짓말같이 앞뒷면이 갈라졌다. 물과 긴 손톱만 있으면 초등학생도 1만원권 지폐를 2만원으로 만들 수 있었다.

 경찰에 협조를 구해 위조지폐를 손에 쥐고 시장으로 향했다. 허리가 굽은 할머니가 야채를 팔고 있었다. 물건을 사고 한 장을 둘로 만든 1만원권을 건넸더니 할머니는 위조지폐를 의심 없이 앞치마 주머니로 가져갔다.

 본지가 1만원권 지폐를 직접 위조해 봤더니 사용이 가능했다는 기사(본지 7월 5일자 18면)가 보도되자 인터넷에는 댓글 100여 개가 달렸다. ‘손쉽게 위조가 되는 줄 몰랐다. 강력한 처벌이 필요하다’는 반응도 있었고, ‘모방범죄가 더욱 늘어날 것’이라고 우려하는 시각도 많았다.

 경찰과 검찰은 위조지폐 범죄 건수가 해마다 증가하는 현상을 심각하게 바라보고 있다. 한국형사정책연구원에 따르면 통화 위조 범죄는 1964년 42건에서 2009년 4392건으로 45년 새 100배 가까이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그런데 정작 화폐 관리 책임기관인 한국은행은 상반된 자료를 내놓고 있다. 매년 초 내놓는 ‘위조지폐 발견 현황’ 자료에 따르면 발견된 위조지폐 수는 2006년 2만1939장, 2008년 1만5448장, 2011년 1만7장 등으로 감소 추세를 보이고 있다. 한국은행 직원에게 위폐 범죄 건수가 매년 늘어난 한국형사정책연구원 자료를 들이대자 “어떻게 구할 수 있느냐”는 반응을 보였다. 위폐 발견 숫자가 감소하고 있다는 자료를 강조하다 보니 위폐 범죄의 심각성에 대해선 둔감했던 셈이다.

 본지 보도가 나가자 한국은행은 홍보물 30만 부를 전국 재래시장과 편의점에 배포했다. 홍보물에는 숨은 그림과 홀로그램 등 위조 방지 장치를 알아볼 수 있는 방법이 적혀 있다. 하지만 눈이 어두운 재래시장 할머니들에게 위조방지 장치는 말 그대로 ‘숨은 그림’일 뿐이다. 특히 컬러복합기와 스캐너 등 첨단 기기가 대중화되면서 지폐 위조가 더욱 쉬워졌다. 위폐 확산을 막으려면 컬러복사기 등에 화폐를 복사하지 못하는 기능을 넣도록 의무화시켜야 한다. 현재 일부 국산 제품에는 화폐를 복사·인쇄하지 못하도록 하는 기능이 있다. 하지만 그마저도 강제 사항은 아니다. 상당수 수입 기계는 화폐 복사 방지 기능을 갖추고 있지 않다.

 화폐는 경제의 근간이다. 위폐가 늘어나면 나라가 흔들리게 된다. 한국은행 등 관련 부처의 적극적인 대책이 필요한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