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노 히데아키 〈신비한 바다의 나디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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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데이트

과거 올린 글에서 아틀란티스 대륙에 관한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그 당시 아틀란티스 대륙에 관한 애니메이션 중에서 가장 잘 만들어진 애니메이션을 〈신비한 바다의 나디아〉라고 말한 적이 있었다.

나디아에 대한 이야기를 하자면, 나의 고등학교 2학년 때가 먼저 떠오른다. 당시 필자는 밤이 되어 가족들이 잠든 뒤, 혼자서 열심히 애니메이션 비디오를 보곤 했었다. 그 중에서도 친구에게서 빌린 〈신비한 바다의 나디아〉는 3일에 걸쳐 밤새도록 보았다.

이에 앞서 필자가 이 애니메이션을 처음 접하게 된 것은 90년인가 91년으로 기억된다. 일본에서도 나디아가 첫 방영되었을 때다. 그 후 국내에서 MBC를 통해 공중파로 방송됐고 다시 NHK가 방영이 되었다.

〈신비한 바다의 나디아〉는 NHK내의 엔터테인먼트 회사인 'NHK 엔터프라이즈 21'이 출자하고, 가이낙스가 제작한 애니메이션이다. 물론 가이낙스 제작이기 때문에, 감독은 안노 히데아키이었다.

스토리

발명을 좋아하는 '쟝'은 프랑스의 한 지방에서 사는 평범한 소년이다. 그는 친척 아저씨와 함께 비행기를 만들었는데, 그 비행기를 들고 당시 만국 박람회가 열리고 있었던 파리로 향하고 그곳에서 이국적인 소녀 '나디아'를 만나게 된다.

첫눈에 나디아에 반해버린 '쟝'. 나디아가 의문의 3인조(그랑디스와 샌슨, 핸슨)에게 쫓기고 있고, 그녀가 서커스에서 나와서 자신이 태어났다고 생각되는 아프리카로 돌아가고 싶어하자, 쟝은 그녀를 돕기로 한다.

그 동안 우여곡절을 거치고 3인조로부터 비행기로 도망치던 쟝과 나디아는 바다에 빠져버린다. 그곳에서 또 다른 의문의 잠수한 '노틸러스'호와 조우하고 노틸러스호의 함장 네모 선장을 만나게 된다.

쟝과 나디아는 노틸러스호의 사람들의 도움으로 다시 비행을 시작한다. 그러다가 마리를 만나고 마리의 부모님이 네모 선장의 적, '네오 아틀란티스'군에 의해 살해된 것을 알고, 다시 네모 선장과 합류하게 된다. 그 때는 원래 나디아가 갖고 있던 '블루워터'가 갖고 싶어 쫓고 있었던 그랑디스, 샌슨, 핸슨의 3인조도 함께였다.
'신비한 바다의 나디아'의 스토리는 그들과 네오 아틀란티스와의 싸움을 그려낸 작품이라고 하겠다.

원작 '해저2만리'에 공상이 더한 작품

먼저 스토리에 대한 검증부터 해 볼까 한다.

이 작품의 원작은 '해저 2만리'이다. 해저 2만리는 유명한 공상 소설 작가인 줄 베르너의 작품이다. 줄 베르너가 이 소설을 쓸 당시까지도 '잠수함'이라는 것은 없었다. 그러니 선각자적인 입장에서 쓴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애니메이션 속에서 미국 함대가 '바다의 괴물'(네오 아틀란티스군의 가피쉬)을 물리치러 갈 때만해도 바다에서 사람이 조종하는 무언가가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았다는 것을 보면 당시의 상황을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 작품은 '단순한 해저 2만리의 패러디 작품'일 수 없다. 물론 기본 바탕에 해저 2만리의 스토리가 깔려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 외에도 이 애니메이션에는 많은 것이 새롭게 추가되었다.

이 작품의 스토리 곳곳에는 신화를 인용한 부분이 많이 나온다.

에반게리온에서 거의 절정으로 다다랐다고 할 수 있는 가이낙스의 특징이 '신화의 인용'이라고 할 수 있다. 가이낙스는 에반게리온에서는 '성경'에 적힌 인류의 탄생의 신화를 인용했다.

그와 마찬가지로 이 '나디아'에서도 가이낙스는 신화의 인용을 자주 사용하고 있다. 먼저 성경의 인용이다. '바빌로니아' 혹은 '바빌론'과 같은 성경에서 나오는 거대 도시, 혹은 탑이 그대로 인용되고 있는 것이다.

그 외에도 이집트 신화에 대한 인용도 나오고 있다.

애니메이션의 거의 종반이 되면 나오는 '네모 황제'. 이 사람의 풀 네임, '파라시스 라 아르위르'의 '라(la)'는 고대 이집트에서 숭배했던 태양신의 이름이다. 게다가 네모 황제의 모습은 우리가 흔히 볼 수 있는 이집트 황제의 모습과도 흡사하다.

또, 네오 아틀란티스 군을 이끄는 가고일은 프랑스 신화에서 나오는 세느 강변에 나오는 괴물의 이름이다.

그런가 하면, 그 신화를 적절하게 수정하기도 한다. 이 애니메이션의 부제인 'The secret of Bluewater'의 말처럼, 곳곳에 '블루워터'라고 불리는 신비의 보석을 끼워 넣고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바벨탑을 가동시키기 위해서는 블루워터가 필요하다는 식이다.
오타쿠 집단답게 이런 많은 신화 인용, 그리고 그 변형 사용이 특징이라고 할 수 있는 작품이다. 그리고 원작에는 없는 잠수함 설정도 볼만하다.

가이낙스는 건담 시리즈 중에서 가장 역작(力作)이라 평가되는 〈기동 전사 건담- 역습의 샤아〉에서 메카닉 디자인을 담당할 정도로 메카닉에 강한 회사이다. 그들이 만든 정교한 잠수함과 기타 메카닉.

더욱 볼만한 것은 그들이 벌이는 전투 장면이다.

애니메이션의 초반에는 노틸러스호와 가피쉬의 전투 장면이 가장 볼만하다. 엑티브한 전투 장면은 보는 사람들의 손에 땀을 쥐게 한다. 후반에는 뉴 노틸러스호의 전투 장면이 아주 멋지다. 뉴 노틸러스가 쏜 전자 포가 네오 아틀란티스군의 공중 전함을 꿰뚫는 장면은 압권이다.

또 이 작품을 통해 인물간의 갈등을 지켜보는 것도 재미가 있다.

네모 함장과 가고일은 둘도 없는 친구였다. 그러다가 가고일이 아틀란티스의 수상이 되고, 아틀란티스의 국왕을 시해하고 하는 사이 그들의 사이는 틀어져서 서로를 죽이려는 관계가 된다.

그리고 네모 함장과 엘렉트라는 부녀지간으로 무척 가까운 사이였다. 파괴되어 가는 아틀란티스에서 엘렉트라를 구해낸 네모 함장. 어린 엘렉트라를 키운 것은 사실상 네모 함장이었다. 그러니 부녀지간일 수밖에. 하지만 스토리의 후반부, 엘렉트라는 네모의 아이를 갖게 되고, 에필로그에서 엘렉트라는 건강한 아이를 낳는다. 그러니 나디아의 새 어머니가 된 셈이라고나 할까.

마리와 샌슨의 관계도 재미있다. 원래 샌슨은 그랑디스 가문의 운전사로 그랑디스를 사모했었다. 하지만 노틸러스호에서의 생활이 끝난 후 샌슨은 마리와 결혼한다. 나이가 차이를 극복하고서 말이다.

이 외에도 엘렉트라와 그랑디스의 관계. 나디아와 네모의 관계. 나디아와 네오 황제의 관계 등등, 이 애니메이션 속에서 나오는 등장 인물들의 관계를 보는 것도 재미가 있을 것이다.

끝으로 MBC에서는 방영되지 않았던 이 애니메이션의 에필로그를 소개하고자 한다. 에필로그는 어른이 된 마리의 독백으로 이야기된다.

죽은 쟝을 블루워터로 살려낸 나디아는 쟝과 결혼하여 아들을 낳는다. 쟝은 여전히 새로운 발명을 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고, 이때 어른스러운 나디아의 모습을 볼 수 있다.

또 나디아의 애완동물이었던 킹은 3명의 아이를 갖는다. 엘렉트라는 네모의 아이를 낳고 그 아이를 키우고, 마리와 샌슨은 결혼하는 것으로 끝이 난다. 이외에도 기타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도 나온다.

우리나라에서 히트 친 일본 애니메이션이 매우 많지만, 이 애니메이션은 특별히 애착이 간다. 특히 마지막 장면을 울면서 보았기 때문일 것이다. '나디아, 너는 살아야 한다!'는 네모 함장의 한마디는 '신비한 바다의 나디아'의 세계로 더욱 깊이 빠져들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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