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저현상 장기화 조짐에 업계 긴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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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화가치가 떨어지는 엔저(低)현상이 장기화할 조짐이 보이면서 업계가 긴장하고 있다.

엔저는 일본산 수출상품의 가격을 떨어뜨려 해외시장에서 경합품목이 많은 한국 수출기업들에는 전형적인 악재로 꼽힌다. 자본재 등의 일본제품 수입의존도가 높은 점을 감안하면 대일 무역적자 악화요인으로도 꼽힌다.

그러나 업계는 현재 엔화 약세에 맞춰 원화가치도 떨어지는 '엔저→원저(低)' 현상이 나타나고 있어 당장 가격경쟁력에 타격을 입는 것은 아니라는 입장이다.

◇ 단기적 피해는 적어〓일본과 경합 중인 현대중공업.삼성중공업 등 조선업체들은 올해 환율을 달러당 1천1백원대로 잡고 선박 수주 및 건조계획을 세워 현재로선 엔화가 더 떨어져도 일본보다 경쟁력이 있다는 주장이다.

반도체.IT 등 일부 품목은 해외시장에서 일본상품과의 경합 정도가 많이 약해졌다. 삼성전자 등 반도체 업계는 일본이 D램에서 거의 철수해 반도체부문에서 경합은 거의 없다고 주장했다.

단기적으로는 원화가치 하락에 따른 수입업체들의 채산성 악화가 예상된다. 정유.유화.항공.해운.전력 등 수입 의존도가 높은 업종들이다. 항공기 도입을 위해 빌려쓴 외화부채가 많은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은 원화가 1원 하락할 때마다 각각 28억원.14억원의 순손실이 발생할 것으로 분석된다. 정유업계도 환차손이 불가피하다.

◇ 장기화하면 문제〓업계는 하반기 이후 엔저는 지속되는데 원화는 강세로 돌 가능성을 가장 우려한다. 전문가들은 ▶무역수지 흑자기조 지속▶외국인 직.간접투자 확대 등이 원화가치를 끌어올리는 압력으로 작용할 것으로 분석한다.

무역협회 이인호 동향분석 팀장은 "일본 상품과의 경합도가 줄어들고는 있지만 2000년 말 현재 한국과 일본의 주요 50대 수출품목 중 겹치는 품목이 24개에 달하고 있다" 며 "원고(高).엔저 구조가 되면 수출이 어려워질 것" 이라고 말했다.

무협은 엔화가 10% 절하되면 한국의 수출은 연간 27억달러, 수입은 8억달러가 줄어드는 효과가 있다고 분석했다.

특히 기계분야는 엔저현상이 6개월 이상 장기화되면 해외시장에서 일본제품과의 경쟁이 힘겨워질 것을 우려한다. 또 브라운관.승용차.타이어 등이 해외시장에서 일본상품에 밀릴 가능성이 큰 것으로 분석된다.

환율보다 큰 걱정은 시장의 위축이다. 삼성물산 기획팀 임영학 상무는 "이번 엔저현상이 일본의 경기침체의 결과인 데다 미국 경기도 좋지 않아 한국의 주 수출시장 자체가 위축되고 있다는 점이 가장 큰 걱정" 이라고 말했다.

◇ 가격경쟁 지양해야〓산업자원부 윤상직 수출과장은 "해외시장에서 엔저에 따른 경쟁요소가 있지만 기업들에 가격보다는 운송.클레임 등 비가격 요인으로 경쟁하도록 당부하고 있다" 며 "또 틈새 상품과 시장을 찾는 다변화 노력이 필요하다" 고 말했다.

삼성경제연구원 김경원 해외실장은 "단기 수출전략보다는 구조조정 고삐를 더 죄고, 품질과 기술력을 높이기 위한 투자와 틈새시장 개척 등 근본적인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고 말했다.

양선희.최준호 기자sunny@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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