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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클립] Special Knowledge <462> 밥상머리 교육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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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3면

윤석만 기자

최근 정부가 학교폭력 대책의 일환으로 밥상머리교육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가족 간 식사와 대화를 통해 인성교육을 강화하자는 취지입니다. 매주 수요일을 가정의 날로 정해 출퇴근 시간을 30분씩 앞당긴 것도 같은 맥락이지요. ‘밥상머리 교육이 중요하다’는 말은 우리네 어르신들이 예의범절을 강조할 때 늘 해왔던 얘기입니다만, 동서고금의 ‘교육 진리’이기도 합니다.

윤석만 기자

●밥상머리 교육의 효과

자녀와 함께 가족 식사를 하면서 대화를 하는 것보다 훌륭한 교육법은 없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밥상머리는 아이들에게 바른 인성을 길러주고 삶의 지혜를 가르쳐주는 살아 있는 교육의 장이다. [중앙 포토]

미국 하버드대 캐서린 스노 박사 연구팀은 3세 자녀를 둔 83개 가정을 대상으로 2년간 아이들의 언어습득 능력을 연구했다. 결론은 ‘밥상머리 교육의 힘은 크다’는 것이었다. 연구 기간 아이들이 평균적으로 습득한 어휘는 2000여 개. 이 중 책읽기를 통해 얻는 단어는 140여 개인 반면, 가족 식사 중 배운 단어는 1000개가 넘었다. 초등학교 진학 후에도 가족 식사 횟수가 많은 아이들일수록 학업 성적이 높았다. 1980년대 진행된 연구결과다.

 컬럼비아대 약물 오·남용 예방센터(CASA) 연구에 따르면 가족과 식사를 자주 하지 않는 청소년의 흡연 비율은 그렇지 않은 청소년보다 4배나 높다. 음주와 마리화나를 하는 경우도 2배가량 많았다. 부모와의 유대 역시 가족과 식사를 많이 하는 학생이 그렇지 않은 학생보다 좋았다. 엄마와의 유대 지수는 1.5배, 아빠와의 유대지수는 2배가량 더 높았다. 미네소타대 연구팀이 학생 4000명을 대상으로 연구한 결과에서도 가족 식사의 빈도는 우울증, 자살률과 반비례했다.

 동양권인 일본도 차이가 극명했다. 2009년 조사에서 전국 학력평가 점수가 최상위권인 아키타현의 초등학생들은 가족과 함께 식사를 하는 비율이 아침(67%), 저녁(91%) 모두 높았다. 중학생도 각각 53%, 85%에 달했다. 그중에서도 학교에서 일어난 일을 가족과 이야기하는 아이일수록 성적이 뛰어났다. 예상치 못한 상황에서의 문제 해결 능력도 가족과 식사하는 횟수가 많은 아이일수록 높게 나왔다.

 밥상머리 교육은 아이들의 건강에도 유익하다. 미네소타대 연구에 따르면 가족과 식사를 많이 하는 아이일수록 과일과 야채 등 칼슘과 섬유질이 풍부한 음식을 더 많이 먹었고, 탄산음료나 당분이 들어간 음식의 섭취율이 낮았다. 하버드대 의대가 1996년 1만6000명의 청소년을 대상으로 식습관을 연구한 결과 가족과 매일 저녁을 먹는 청소년은 그렇지 않은 청소년보다 매일 과일과 야채를 한 끼분 이상을 더 먹었다. 반면에 튀김류나 탄산음료의 섭취 비율은 절반밖에 안 돼 비만 방지에 큰 효과가 있었다.

●선조들의 밥상머리 교육

일찌감치 우리 선조들은 밥상머리 교육의 효과를 높이 샀다. 조선시대 선비들은 밥상머리에서 비롯된 습관이 아이의 인성 전반을 규정한다고 믿은 듯하다. 소학(小學), 사소절(士小節), 여사서(女四書), 내훈(內訓) 등에는 아이들의 식사 예절과 관련된 내용이 많이 담겼다. 여기에 가문마다 자녀들에게 전수하기 위해 직접 지은 가훈서까지 합치면 밥상머리 교육과 관련한 고서만 수백 종에 달한다.

 아이들의 유학(儒學) 입문서인 소학에서는 밥상머리 교육과 관련해 제일 먼저 오른손으로 식사하는 법을 가르쳤다. 대가족이 좁은 밥상에 함께 모여 식사를 했기 때문에 왼손으로 먹을 경우 옆사람에게 피해를 줄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자신의 자유가 타인에겐 피해가 될 수도 있음을 알려주는 일종의 윤리교육이었던 셈이다. 이 밖에도 ▶남과 함께 음식을 먹을 때는 배불리 먹지 않으며 ▶손으로 반찬을 집어먹지 않는다 ▶부모님이 병환 중일 때 고기를 실컷 먹지 않고 ▶얼굴빛이 변하도록 술을 마시지 않는다 ▶밥을 조금씩 자주 뜨고 많이 씹고 ▶식사 후엔 생강을 씹어 냄새를 없앤다 등 예의범절을 가르쳤다.

 이덕무의 청장관전서(靑莊館全書)에는 조선 후기 식사 규범으로 널리 쓰였던 ‘식시오관(食時五觀)’이 잘 정리돼 있다. ‘밥이 완성될 때까지 드는 노력과 밥이 어디서 나왔는가를 헤아려야 한다’ ‘자신의 덕행(德行)이 완성됐는지 결여됐는지 반성하고 음식을 받아야 한다’ ‘마음을 절제해 지나친 탐욕을 금한다’ ‘과식하거나 편식하지 않는 바른 식습관으로 건강을 유지해야 한다’ ‘도덕(道德)을 완성한 사람만이 밥을 먹을 자격이 있다’ 등이다.

 조선시대에는 이 같은 식사 예절을 통한 인성교육을 중요시했다. 법도 있는 집안에 아이들을 맡기는 밥상머리 ‘위탁교육’도 있었다. 서애(西厓) 류성룡(1542∼1607년) 가문이 양반가 자제의 위탁교육처로 인기였다고 한다. 조선시대 대표 명문가 류성룡가의 핵심 교육법은 독서와 밥상머리 교육이었다. ‘어른이 숟가락을 들기 전에 숟가락을 들어선 안 된다’는 가르침은 먹고 싶은 음식을 앞에 두고 참을성과 절제력을 키우려는 목적이었다. 식사 때만큼은 모든 가족이 함께 모여 나눠 먹는 것을 강조했다. 이는 타인에 대한 배려의식을 일깨우기 위함이었다. 식사시간을 통해 아이들이 바른 품성을 가진 성년으로 자랄 수 있도록 가르친 것이다.

●세계의 밥상머리 교육

가족의 또 다른 이름인 ‘식구(食口)’는 ‘함께 밥 먹는 사람’이란 뜻이다. 이는 서양도 다르지 않다. 친구(companion)와 회사(company)라는 말의 어원은 ‘빵을 함께하는 사람들’이란 뜻이다. 라틴어에서 ‘com’은 ‘함께’라는 뜻이고 ‘pan’은 ‘빵’을 말한다. 결국 함께 식사를 한다는 것은 단순히 허기를 달래는 것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이를 가장 잘 실천한 민족 중 하나가 유대인이다.

 유대인의 저력도 밥상머리 교육에서 비롯됐다. 유대인은 전 세계 인구의 0.2%에 불과하면서도 역대 노벨상 수상자의 22%를 배출했다. 이런 유대인들은 식사시간마다 가족들이 유대인들의 지혜를 총망라한 탈무드에 대해 얘기하고 토론한다. 설사 밥 먹는 도중 아이가 잘못했더라도 꾸중은 나중에 한다. 아이를 하나의 인격체로 대우하기 때문이다. 이스라엘은 토요일에 음식점과 유원지, 박물관 등이 거의 문을 닫는다. 버스 등도 운행하지 않고 택시를 타려면 30% 할증요금을 내야 한다. 자연스럽게 온 가족이 집에서 함께 시간을 보내는 가정의 날이 되는 것이다.

 케네디가(家)도 밥상머리 교육에서 유대인에 뒤지지 않았다. 케네디 전 대통령의 어머니 로즈 여사는 식사시간이 지나면 자녀들에게 밥을 주지 않았다. 약속과 시간의 소중함을 일깨우기 위해서였다. 식사시간 중에는 미리 읽은 신문 기사나 책에 대해 서로의 의견을 나눴다. 식사시간은 보통 2시간을 넘겼다. 이는 케네디 전 대통령이 토론과 연설에서 뛰어난 능력을 발휘하는 데 큰 힘이 됐다.

●밥상머리 교육 어떻게 해야 할까

밥상머리 교육의 효과가 크다는 걸 알아도 어디서부터 실천해야 할지 막막하다. 먼저 일주일에 두 번 이상을 ‘가족 식사의 날’로 정하는 방법이 있다. 주중과 주말 한 번씩은 꼭 가족 모두가 모여 식사하도록 약속하는 것이다. 가족 식사 장소는 가급적 집이 좋다. 대신 시간과 날짜는 미리 못박아 둔다. 식사 준비도 어머니에게만 맡기기보다 아버지와 아이들 모두 함께 참여할 수 있는 메뉴를 정한다. 식사 도중 TV 시청이나 전화 통화는 금한다. 충분히 대화가 오갈 수 있도록 음식을 천천히 먹는다. 상대방이 얘기할 때는 집중해서 듣고 가능한 한 부정적인 말을 피한다. 중요한 것은 작은 일에도 서로 칭찬하고 공감해 주는 점이다. 특히 아이들이 말할 때는 중간에 끊지 말고 끝까지 경청하는 습관을 들여야 한다. 자칫 밥상머리 교육이 아이들을 훈계하거나 잔소리하는 시간이 돼서는 안 된다.

 밥상머리 교육을 잘 하려면 어른들이 먼저 아이들과 대화하는 법부터 배워야 한다. 대화 소재로는 가벼운 일상 얘기부터 시작하되 단답형 질문보다는 ‘어떻게 하면 좋을까’ 식의 열린 질문이 좋다. 가령 아이에게 “오늘 학원은 잘 다녀왔니, 숙제는 다 했고?” 하는 식의 질문보다는 “오늘 학교 끝나고는 무엇을 했니, 요즘 숙제를 열심히 하던데 오늘은 어떤 숙제를 했어?” 식의 질문이 더욱 좋다.

 아이들을 칭찬할 때도 추상적으로 뭉뚱그려 말하는 대신 구체적으로 얘기해 줘야 한다. “요즘 많이 좋아졌어” “오늘 참 잘했어” 라고 말하기보다는 “요즘 네가 약속시간을 잘 지켜서 엄마는 참 좋아” “오늘 네가 친구를 잘 도와주는 모습을 보니 정말 멋있고 대견했어” 하고 말하는 게 칭찬의 효과가 더 크다.

 밥상머리 교육이 꼭 식사시간에만 국한된 것은 아니다. 일이 정말 바빠 가족과의 식사시간을 거르게 될 때는 편지로 대신할 수 있다. 다산 정약용은 18년의 긴 유배생활을 했다. 그러면서도 멀리 떨어진 자녀들에게 편지를 통해 가정교육을 한 것으로 유명하다. 다산은 편지로 자녀들과 교류하면서 아버지로서의 역할을 게을리하지 않았다. 그의 다산문집 18권과 21권에는 자녀들에 대한 편지가 26통 수록돼 있다. 아버지로서 세심한 배려가 배어 있는 내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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