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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둑] 결혼식 날 대국한 최철한 이 장면이 특별한 이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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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최철한(오른쪽)이 결혼식 날 신혼여행도 안 가고 한국리그에 출전, 강동윤에게 졌으나 박수를 받았다. 결혼은 연기 사유인 데도 팀과 팬을 위해 포기한 것. 그러나 10일 이후엔 34년 만에 경기 룰이 개정돼 대국은 연기가 불가능하고 ‘불참=기권’으로 처리될 전망이다.

바둑이 대한체육회의 승인을 받아 정식으로 ‘스포츠’가 된 건 2009년 2월 19일이다. 이후 3년여 동안 바둑은 많이 변했다. 새로운 룰이 생겨나고 대국은 ‘경기’, 기사는 ‘선수’가 됐다. 2010년엔 ‘경기 규칙’이 만들어졌는데 그중엔 대국 중 휴대전화가 한 번 울리면 경고, 두 번 울리면 반칙패라는 조항이 있다. 부채·바둑알·호두알 등으로 소리를 내는 행위도 1차 경고, 2차 반칙패다. 선배들 중 일부는 대국 중 태연히 전화를 받곤 했다. 도장 중심이고 선후배가 엄격했던 시절의 풍경이었는데 여기에 제재가 가해진 것이다.

부채는 프로기사의 애호품이었다. 근사한 휘호를 쓴 부채를 들고 대국 중 딱딱 소리를 내는 모습은 멋으로 간주됐다. 하나 급박한 초읽기 바둑이 주류가 되면서 모든 소리는 승부를 해치는 소음이 됐다. 바둑 통에 손을 넣어 달그락거리는 행위도 마찬가지다(하나 예를 들어 조훈현 9단 같은 대가가 돌을 달그락거리는데 어느 후배기사가 감히 이의를 제기하며, 어느 심판이 이를 경고할 수 있을까. 이런 경우는 아직 치외법권의 영역에 남아 있다).

 한국기원은 오는 10일 열리는 이사회에서 구시대의 마지막 유물이라 할 ‘대국 연기’ 조항을 없앨 계획이다. 1978년 만들어진 이 조항엔 "국가 법령에 의한 예비군 소집, 민방위 소집과 본인의 혼인, 친상에 한하여” 대국을 연기할 수 있다는 내용이 있다. 유신시대와 프로기사 가족주의가 혼합된 이 조항은 ‘팬들과의 약속’이란 측면은 아예 외면하고 있다. 세계대회가 아닌 국내 대회에 적용됐는데 그나마 수많은 악용 사례를 만들어 냈다. 행사를 이유로 밥 먹듯 대국이 연기되고 힘센 선배가 휴가를 가거나 대국자끼리 합의해도 연기가 됐다. 근래 이런 풍경은 사라졌지만 ‘본인의 혼인과 친상’은 여전히 문제로 남았다.

 지난 6월 2일 최철한 9단은 결혼한 당일 밤 한국리그 선수로 출전했다. SK에너지의 주장인 최철한은 팀이 꼴찌로 몰리는 절박한 상황을 맞아 신혼여행을 미루고 대회 출전을 선택한 것인데 바둑계에선 실로 처음 보는 신선한 충격이었다.

6월 28일엔 한국리그 포스코LED의 주력인 홍성지 8단이 모친상을 당했다. 김성룡 감독은 한국리그 운영본부에 이를 알렸고 위의 연기 조항에 근거해 29일 치러질 예정이던 안조영 9단과의 대국은 사흘 뒤인 7월 3일로 연기됐다. 해설을 맡았던 유창혁 9단은 “개인전도 아닌 생중계되는 단체전에서 약속된 경기가 연기된다는 것이 매우 어색했다”고 말한다. 그러나 10일 안건이 이사회를 통과하면 앞으론 어떤 사유로도 대국이 연기될 수 없다. 34년 만의 개정이다. 앞으로 ‘불참=기권’으로 처리될 전망이다.

 예(藝)와 도(道)를 표방하던 바둑이 아주 느린 행마로 스포츠로의 정체성을 만들어 가고 있다. 그러나 한국기원 프로기사 중엔 아직 ‘바둑=스포츠’를 인정하지 않는 기사들이 꽤 있다.

박치문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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