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약분업으로 망가진 건강보험 재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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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건강보험공단이 올해 진료비 증가요인을 분석한 결과를 보면 증가요인 가운데 4분의 3 정도가 의약분업과 직접적으로 연관돼 있음을 알 수 있다.

나머지 진료비 자연증가 부분에 관한한 물론 인구 자연증가, 평균소득 향상 등에서 기인한 전반적인 의료서비스 수요 확대를 주요 원인으로 볼 수 있다.

그럼에도 정부가 의약분업 시행에 앞서 다소 경솔하게 결정한 보험적용 대상 확대, 진료일수 제한 폐지 등의 선심성 정책들도 진료비 자연증가에 상당 부분 작용한것으로 분석된다.

결국 정부는 `준비 안된' 의약분업을 강행함으로써 그렇지 않아도 부실했던 보험재정을 완전히 망가뜨렸다는 비판을 면하기 어렵게 됐다.

보험공단 스스로 분석한 내용을 봐도 지난해 집단폐업이라는 초강수로 정부를압박했던 의료계를 달래기 위해 7월(9.2%)와 9월(6.5%) 잇따라 수가를 올린 데 이어올해 1월 상대가치제 도입을 통해 다시 수가를 7.08% 인상한 것이 결국 1조8천200억원의 진료비 증가를 가져온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공단이 산출한 올해 진료비 인상 규모(4조4천350억원)의 41%에 해당하는액수다.

또 의약분업 이후 약국에서 맘대로 약을 갖다 썼던 환자들이 의료기관을 찾아가게 됨에 따라 외래진료환자가 20%(6천만건) 늘어났고 이 부분에서 6천800억원의 증가요인이 발생했다.

의약분업이 1억7천만건(99년 기준) 정도로 추정되는 임의조제을 없앰으로써 고질적인 약화(藥禍)의 늪에서 국민들을 건져냈다는 평가도 있지만 보험재정 측면에서는 큰 부담요인으로 작용한 것으로 분석되는 대목이다.

의약분업 이후 의료기관의 약가마진이 없어짐에 따라 고가약 처방 비율이 작년5월 43%에서 11월 62%로 높아졌고, 처방건당 투약일수도 3.51일에서 5.26일로 늘어나 약제비 부분에서만 재정부담이 7천억원 증가됐다.

이에 비해 급여확대, 수진율 증가 등으로 인한 자연증가분은 9천억원으로 전체의 20%에 불과했다.

이처럼 의약분업이 보험재정 악화의 주범이기는 하나, 장기간 진료비 인상률 이하의 저수가 체계를 유지해온 건강보험의 불합리한 구조도 자체에 재점검해야 한다는 지적들이 많다.

공단에 따르면 건강보험 재정은 의약분업이 없었더라도 만성적인 적자를 피할수 없는 취약한 구조를 갖고 있다. 장기간에 걸쳐 서서히 악화돼온 재정이 의약분업을 기폭제로 보험급여가 폭발적으로 증가하는 바람에 한꺼번에 무너져내렸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건강보험 재정은 95년까지 비교적 안정적인 기조를 유지하다 96년 877억원의 당기적자가 발생한 이후 97년 3천820억원, 98년 8천601억원, 99년 8천691억원, 작년 1조90억원 등 눈덩이처럼 적자가 불어났다.

적자 원인은 한마디로 늘어난 급여비를 적정한 보험료 인상을 통해 메워주지 못했기 때문이다.

구체적으로 95년 이후 작년까지 공단의 보험료 수입은 연평균 15.7% 증가했으나급여비는 해마다 평균 17.6% 늘어났다. 재정수지면에서만 보면 매년 1.9%포인트에 해당하는 적자가 누적될 수밖에 없음을 의미한다.

(서울=연합뉴스) 한기천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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