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대로 사는 길, 해답은 예술입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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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남 사람들은 자신이 잘 살고 있다고 생각해요. 자녀를 어디로 유학 보내고, 어느 대학에 보내는 것만 생각하면서요. 그러나 지성인이라면 내가 제대로 사는지 고민해야죠. 그 해답은 예술에 있습니다.” 박종호(52) 대표가 클래식 음반 매장을 운영하며 예술을 이야기하는 이유다.

글=송정 기자 , 사진=황정옥 기자

박 대표를 만나기 위해 찾은 풍월당(강남구 신사동). 벽 하나를 두고 바깥과는 전혀 다른 세상에 있는 것 같다. 몸을 들썩이게 하는 신나는 음악과 화려한 간판, 젊은 사람들의 열기가 뿜어져 나오는 바깥과 달리 풍월당 안은 마치 1900년대 오스트리아 빈의 살롱으로 시계를 되돌린 것 같다. 박 대표는 2003년 클래식 음반 전문 매장 ‘풍월당’의 문을 열었다. “외국에 좋은 음반이 많은데 국내에서는 이를 구하기 어렵잖아요. 그게 늘 아쉬웠어요.” 국내에 좋은 음반을 소개하는 역할을 자신이 맡기로 결심한 것이다. “외국에는 주요 도시마다 클래식 전문 매장이 있지만 국내에서는 찾아볼 수 없죠. 사람들에게 하라고 하면 안 하죠. 망할 장사가 뻔하잖아요.”

수익성 떨어지는 음반 매장에 아카데미까지 설립

풍월당은 처음부터 수익성 사업과는 거리가 먼 곳이었다. 그럼에도 박 대표는 2007년 ‘풍월당 아카데미’도 설립했다. 클래식 음악을 올바르게 알고 즐기기 위해서 그에 맞는 교양과 지식이 수반되어야 한다는 자신의 신념을 실천하기 위해서였다.

9년 동안 풍월당과 풍월당 아카데미는 클래식 음악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사랑방이자 메카로 자리했다. 유행에 민감한 만큼 하루가 다르게 변하는 강남, 그 중심에서 클래식을 내세운 풍월당이 꿋꿋하게 자리를 지키고 있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박 대표도 여러 차례 “버티고 있다”고 표현했다. 사실 대기업 중역의 월급과 맞먹는 매장 임대료만 생각하면 풍월당을 계속 이어가는 것은 무모하다고 느껴질 정도. “사업하는 사람이 보면 운영하면 안 되는 거죠.” 이러한 어려움 속에서도 그는 풍월당의 문을 닫을 수 없다. 자신만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풍월당을 찾는 사람이 많아졌어요. 이제는 내가 없애고 싶어도 없앨 수 없는 지경이 돼버린 거죠.”

정신과 진료 그만두고 강의로 정신 치유 나서

클래식을 제대로 알리는 것을 소명으로 생각하는 박 대표의 직업은 정신과 전문의다. 그러나 올해부터 환자를 진료하지 않는다. 내년엔 진료할지 묻자 “아마 돌아가지 않을 것 같다”고 답했다. 대신 강의를 통한 치료를 계속하고 있다. “음악으로 사람을 치유할 수 있어요. 진료는 한 시간 동안 한 사람만을 만나지만 강의는 한 시간 동안 몇 백 명을 치료할 수 있죠.” 그의 강의에서 클래식과 오페라는 소재다. 주제는 ‘인간’이다. 교양, 추방, 권력, 버려진 아이, 마이너리티, 여성, 이룰 수 없는 사랑 등에 대해 이야기한다. 존엄한 인간이 어떻게 살아가는지,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를 말한다. 클래식을 잘 모르는 사람들에게는 어떠한 공연을 봐야 하는지 구별하는 방법을 알려주기도 한다. 클래식에 대해 조예가 깊지 않은 사람이 박 대표의 강의를 듣고 감동하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유럽 음악축제 순례기』 『내가 사랑하는 클래식』 같은 저서 역시 그가 대중에게 클래식을 전하는 방법이다.

클래식에 대한 애정이 깊은 만큼 국내 문화적 토양에 대해 아쉬움도 크다. 제일 먼저 고가의 티켓으로 문턱을 높인 오페라와 클래식 공연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외국에서도 오페라 공연 티켓은 비싸지만 이와 함께 가격이 저렴한 자리가 있어요. 이탈리아 스칼라 극장에는 ‘당일표’가 있어서 공연을 보고 싶지만 돈이 부족한 사람들이 공연 당일 줄을 서서 기다리기를 서너 번 반복하면 저렴한 가격에 공연을 볼 수 있도록 하죠.” 여유로운 사람들이 구입하는 티켓 가격에 경제적으로 여유가 없는 사람들의 티켓 가격이 포함된 것이다. 클래식이 일부 계층의 전유물로 느껴지는 데 대한 아쉬움도 전했다. “부만 세습되는 게 아니라 예술도 세습되고 있어요. 그러나 예술이 상류층, 그들만의 것이라는 생각은 잘못입니다. 같이 누리기 때문에 예술의 가치가 있는 거예요.”

 경제적 가치로는 이야기할 수 없지만 박 대표와 풍월당 사람들의 노력은 조금씩 결실을 맺고 있다. ‘예술이 무엇인지’ 아는 사람들이 생겼다는 것. “몇 백 명 정도 될까요. 이들이 풍월당과 제 강의를 통해 막연하게 알고 있던 예술을 제대로 이해하고 그 가치를 깨닫게 됐다고 믿습니다.”

풍월당

풍월당(www.pungwoldang.kr)은 단순히 음반 매장이 아니다. 클래식과 관련된 음반과 책이 나오면 저자와의 만남이나 감상회를 열기도 한다. 풍월당 아카데미에서는 클래식과 오페라 관련 강의를 진행한다. 박종호 대표를 비롯해 유정우·황장원·김문경씨 등이 강사로 참여하며, 정규 수업은 봄·가을학기로 나뉜다. 예술과 관련된 모임이 있을 때는 장소를 빌려준다. 음반 매장 옆에 자리한 카페 ‘로젠 카발리에’서는 클래식 음악을 들으며 커피 한 잔의 여유를 즐길 수 있다. 문의 02-512-2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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