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한 학교 만들기 4년 … 기초학력 미달 학생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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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일 서울 강동구 상일초 영어체험교실에서 학생들이 수업을 하고 있다. 이 학교는 지은 지 45년 됐지만 꾸준한 시설 개선 덕에 새 학교 같은 느낌을 준다. [신인섭 기자]
이문호 교장

3일 오전 서울 강동구의 상일초등학교. 정문을 들어서자 꽃 향기와 풀 냄새가 났다. 학교 본관으로 가는 길엔 회양목과 사철나무가 빽빽했고 화단에는 노란 국화꽃이 피어 있었다. 건물 안으로 들어가자 노란색과 살구색으로 칠한 환한 복도가 눈에 띄었다.

 이 학교 건물은 1967년에 지어져 45년이나 됐다. 보통 30년이 넘으면 안전진단을 거쳐 신축하는 걸 감안하면 이 학교는 상당한 고령(高齡)에 속한다. 그런데도 학교가 낡았다는 느낌이 안 드는 이유는 2008년부터 지속적으로 시설투자와 관리를 해온 덕분이다.

 이 학교도 2008년 이전엔 다른 오래된 학교처럼 어둡고 칙칙한 분위기였다. 흰색 복도는 때가 타서 잿빛이었다. 1, 2층 교실은 키 큰 나무가 햇빛을 가려 대낮에도 어두웠다. 세면대에선 한겨울에도 찬물만 나왔다. 방음이 잘 안 돼 학교 밖 자동차 소음이 수업을 방해했다.

탁 트인 도서관 한쪽에 온돌을 깔아 학생들이 편히 앉아 책을 볼 수 있게 했다.

 변화는 2008년 가을 이문호(62) 교장이 오면서 시작됐다.

 “부임 와서 보니 학교 건물이 너무 칙칙해 이런 데서 학생들이 뭘 배우겠나 싶었어요. 학교 건물이 공장처럼 칙칙하다는 학생들 말에는 충격까지 받았어요.”

 이 교장은 학교를 뜯어고치고 싶었다. 하지만 예산이 빠듯해 창문 한 장 갈기도 힘들었다. 궁리 끝에 이해식(49) 강동구청장에게 면담을 신청했다. 면담은 한 달 만에 성사됐다.

 “어려운 집은 라면 한 그릇만 줘도 감격합니다. 하지만 잘사는 집은 불고기를 사줘도 감격하지 않아요. 우리처럼 어려운 학교를 구청에서 도와줬으면 합니다.”

밝아진 과학실 벽면을 화사한 연두색으로 칠했다. 최신 실험기구도 도입했다.

 그의 말은 이 구청장의 마음을 흔들었다. 이 구청장은 “교장 선생님이 면담 요청을 한 것도 매우 이례적인 데다 말에서 간절함이 묻어나 ‘예산이 허락하는 한 최대한 지원하겠다’고 약속했다”고 당시를 기억했다. 이 교장은 교육청에도 지속적으로 지원을 요청했다. 그 결과 상일초는 최근 4년간 구청에서 3억원, 교육청에서 3억3000여만원 등 모두 6억3000여만원을 지원받았다.

 이 교장은 이 돈으로 우선 30년 넘은 칠판부터 바꿨다. 또 교실마다 학급문고를 만들고 벽과 천장은 연두색 파스텔톤으로 칠했다. 학생 수가 줄어서 남아돌게 된 교실은 미술실·음악실 같은 특별실로 활용했다.

 통상 한 학교에 하나뿐인 영어교실도 두 개를 만들었다. 사교육을 받기 어려운 학생들을 위해서였다. 교실 두 개를 터서 아이들이 동아리 활동과 학예회를 할 수 있는 소강당을 꾸몄다. 도서실엔 온돌을 깔아 저학년 아이들이 편하게 책을 볼 수 있게 했다.

 햇빛을 가리던 키 큰 나무는 운동장 바깥쪽으로 옮겼다. 대신 그 자리엔 키 작은 관목과 꽃을 심었다. 이 교장의 부임 첫해 학교 조리실은 교육청 위생검사에서 낙제점을 받았었다. 이 교장은 조리실 조명과 바닥을 바꾸고 2400만원을 들여 조리시설도 새로 들여놓았다. 이애경(48) 영양교사는 “급식실이 환해지니까 음식을 만들면서 위생에 더욱 신경을 쓰게 됐다”고 말했다.

아이들이 웃었다 햇빛을 가리던 나무를 옮기고 대신 화단에는 다양한 꽃을 심었다.

 학교가 화사해지자 학생과 교사도 달라졌다. 이재천(54) 2학년 담임교사는 “다른 학교 아이들은 수업이 끝나면 집에 가기 바쁜데 우리 아이들은 학교에 남아 책도 읽고 합창연습도 한다”고 말했다. 6학년 유혜림양은 “1학년 때는 학교가 싫어서 엄마에게 이사 가자고 조른 적도 있는데 지금은 학교가 아늑하고 참 좋다”며 웃었다.

 학교시설이 개선되고 특별교실이 많아지면서 독서나 동아리 활동이 활발해졌다. 교사들은 학교에 늦게까지 남아 성적이 낮은 학생들을 지도했다. 효과가 나타났다. 2010년 국가수준 학업성취도 평가에서 이 학교는 6학년 110명 중 15명이 기초학력 미달이었다. 하지만 지난해에는 한 명도 나오지 않았다. 이 교장은 “아무리 좋은 교사와 교육과정을 갖춰도 시설이 받쳐주지 않으면 소용이 없다”며 “학교는 아이들에게 제2의 집이라 그만큼 가꾸고 고쳐야 한다”고 말했다.

◆특별취재팀=성시윤·천인성·윤석·이한길·김경희·이유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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