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막이 경쟁력 … 이스라엘 농업의 역설 ‘허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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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6면

지난달 25일 이스라엘 텔아비브 인근에 있는 농업회사 네타핌의 시험 농장에서 다니 아리엘 매니저가 ‘물방울 물주기’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바닥에 설치된 검은 호스의 미세한 구멍을 통해 물방울이 나온다.

지난달 26일 이스라엘 북서쪽 골란 고원 부근의 엔 게브 농장. 농장 바닥에는 검은 호스가 거미줄처럼 깔려 있었다. 이곳에선 작물을 키울 때 물을 ‘뿌리지’ 않는다. 대신 호스에 난 미세한 구멍을 통해 한 방울씩 물을 떨어뜨린다. 딱 필요한 만큼만 물을 공급하는 것이다. 이런 물 관리는 수익으로 이어진다. 엔 게브의 오엘 벤 요셉(64)은 “연간 6000t의 바나나를 생산하는데 순이익이 70%”라고 말했다.

 이스라엘 농업은 역설의 농업이다. 농업의 걸림돌인 사막이 농업 경쟁력의 원천이 된 것이다. 척박한 땅에서 자라는 식물 ‘허브’가 악조건을 이겨내는 과정에서 기능성 물질을 만들어 내는 것과 같은 이치다. 이스라엘 농업 경쟁력의 원천도 ‘허브(HERB)’로 통한다.

 ◆습도(Humidity)까지 관리=엔 게브 농장에는 녹색 그물로 둘러싸인 거대한 모기장 같은 구조물이 곳곳에 설치돼 있었다. 이 특수 그물망은 바나나 농장(총 85ha)의 습도를 유지시키는 장치다. 요셉은 “특수 망을 설치해 물 사용량은 40%, 비용은 35% 줄였다”고 말했다. 이스라엘은 생활폐수의 60~70%를 재처리해 농업 용수로 쓴다.

 1960년 초 개발된 ‘물방울 물주기’도 진화 중이다. 이 기술을 만든 네타핌은 히브루대학과 공동 연구를 통해 ‘주문형 관개 시스템(IOD)’을 개발했다. 작물 뿌리 부근 흙에 감지기를 설치한 후 원격으로 딱 필요한 만큼의 물과 양분을 공급하는 시스템이다. 네타핌의 다니 아리엘 매니저는 “(척박한 환경의) 이스라엘은 인류를 위한 시험장”이라고 말했다.

 ◆수출(Export)이 살길=쌀은 이스라엘에서 재배하지 않는 작물이다. 그러나 북서부 갈릴리 호숫가에는 작은 논이 있다. 품종 개발 벤처회사 카이마가 만든 시험용 논이다. 조하르 벤 네르 부사장은 “이스라엘에서 키우지 않지만 쌀은 세계 3대 작물 중 하나이기 때문에 사업성이 있다”고 말했다. 이미 기존 품종보다 수확량이 두 배 많은 밀도 개발했다. 중국 정부와 보급 문제를 협의 중이다. 이스라엘 농업은 이렇게 단순한 농산물이 아닌 농업 기술을 수출한다. 이즈하크 키리아티 이스라엘수출공사 국장은 “최첨단을 주도하는 기업만이 시장을 차지할 수 있다”며 “농업도 예외는 아니다”고 말했다.

 ◆연구(Research) 경쟁과 소통=이스라엘 농업연구청(ARO)은 나랏돈으로 편하게 연구하지 않는다. ARO는 예산의 35%를 경쟁을 통해서 확보한다. 각종 국제기구나 기업 등에 연구제안을 해 연구비를 따온다. 예산의 5%는 이미 개발한 기술의 특허 등을 활용해 충당한다. 제이컵 무알렘 마룸 ARO 국장은 “연구개발의 원칙을 훼손하지 않으면 어떤 돈을 따오든 무방하다”고 말했다. 정부는 기업에, 기업은 정부 연구에 자극을 준다. 경쟁체제는 써먹을 수 있는 기술 개발로 이어졌다. ARO 내에서 상용화 기술을 별도 관리하는 키둠(KIDDUM)의 연구비 대비 로열티 비중은 10%에 달한다. 미국 스탠퍼드대(7.2%), 매사추세츠공과대학(MIT, 5.1%)보다 높다.

 이런 기술력의 바탕에는 농민과 기업·연구자 사이(Between)의 벽을 허문 정부기관의 노력이 숨어 있다. 이스라엘 농촌지도소의 오마르 지단 부소장은 “지도소 업무의 3분의 1은 농민·기업·연구자 간의 소통과 협력을 증진하기 위한 방법을 찾고 개발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런 협력이 바탕이 돼 농촌 공동체인 키부츠나 모샤브가 지분을 가지고 경영하는 농업 회사가 많다. 물방울 물주기를 개발한 네타핌도 키부츠가 경영하는 회사다.

키부츠·모샤브 이스라엘의 전통적인 농촌 공동체. 키부츠는 공동 생산·분배하는 공산주의적 공동체다. 모샤브는 사유재산을 인정했다. 농업의 자동화·규모화, 대형 유통업체의 등장으로 410여 개 모샤브 대부분의 공동 생산 체제가 허물어졌다. 키부츠(270여 개)의 70% 이상도 인센티브 도입, 무료 급식 폐기, 공동 육아 약화 등 변화를 겪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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