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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만리장성은 왜 고무줄이 됐을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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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유상철
중국전문기자

“요하(遼河)와 송화강(松花江) 유역엔 조선민족의 발자취가 남아있다.” “두 나라 역사학자의 일부 기록은 진실에 그다지 부합하지 않는다. 중국 역사학자 등이 대국주의, 대국 쇼비니즘의 관점에서 역사를 서술한 게 주요 원인이다.”

 누구의 말일까. 언뜻 들으면 한국 인사의 발언 같다. 그러나 이는 중국인이 가장 존경한다는 ‘영원한 총리’ 저우언라이(周恩來)의 말이다. 1963년 6월 28일 북한의 조선과학원 대표단을 접견한 자리에서다. 그는 “우리가 당신들의 땅을 밀어붙여 작게 만들고 우리들의 땅이 커진 것에 대해 조상을 대신해서 당신들에게 사과해야 한다”고도 했다. 그의 역사 인식이 중국에 자리잡고 있을 당시 만리장성(萬里長城)의 길이가 도마에 오른 적은 없다.


[일러스트=박용석]

 
중국이 87년 장성을 유네스코의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할 때 동쪽은 허베이(河北)성 산하이관(山海關), 서쪽은 간쑤(甘肅)성 자위관이 기점이었다. 길이는 6300㎞. 그러던 게 2009년 고무줄처럼 늘어난다. 동쪽 끝이 산하이관에서 랴오닝(遼寧)성 단둥(丹東)에 있는 고구려 유적 박작성(泊灼城)으로 연장되며 8851.8㎞가 됐다.

 그것도 모자랐을까. 지난달 중국 국가문물국은 장성의 동쪽과 서쪽 기점에 대해 또다시 연장수술을 단행했다. 동쪽 끝은 헤이룽장(黑龍江)성, 서쪽 끝은 신장(新疆)까지 잡아당겼다. 이에 장성의 길이는 무려 2만1196.18㎞가 됐다.

 만리장성은 왜 고무줄이 됐을까. 중국의 고고학적 발굴 성과일까. 천만의 말씀이다. 역사를 보는 중국의 눈이 달라졌기 때문이다. 그 변화의 핵심에 중국은 ‘통일적 다민족 국가’라는 논리가 있다. 윤휘탁 한경대 교수의 말을 빌리면 중국은 한족(漢族)과 비(非)한족이 서로 경쟁하며 분열하기도 했지만, 기본적으론 대일통(大一統)의 전통에 의해 여러 민족이 융합해 통일된 국가, 즉 ‘통일적 다민족 국가’를 형성해 왔다고 주장한다.

 이 논리에 따르면 오늘날 중국 영토 안에 존재하는 모든 민족은 ‘중국’이라는 역사 공동체를 만드는 데 일정한 역할을 해왔다. 그래서 현재 중화인민공화국 영토 내 존재하는 모든 민족은 중국을 구성하는 ‘중화민족(中華民族)’이란 것이다. 또 각 민족이 세운 왕조는 모두 중국의 왕조가 된다. 그리고 각 왕조가 관할했던 강역(영토)의 총합이 역사상 중국의 강역이 된다는 것이다.

 바로 이런 논리의 동북공정(東北工程)에 따라 만주를 무대로 펼쳐진 고구려의 역사와 유적은 모두 중국의 역사와 유적으로 둔갑하게 된다.

 이 같은 주장은 처음 국경 지역에 거주하는 소수민족의 분리독립 움직임을 억제하려는 정치적 목적에서 나왔다. 그러나 바이서우이(白壽彛)→허쯔취안(何玆全)→페이샤오퉁(費孝通) 등과 같은 역사학자의 손길을 거치며 80년대 후반부터는 중국 내 역사를 보는 주류 시각이 됐다. 민족적 통합과 영토적 통합을 위한 국가적 목적에 봉사하기 위해서다.

 그러나 정치적 목적에 따라 역사관을 짜다 보니 무리가 따를 수밖에 없다. 대표적인 게 금(金)에 맞서 싸운 남송(南宋)의 명장 악비(岳飛)가 천년 가까이 누려온 ‘민족 영웅’이란 칭호를 박탈당한 케이스다. 금의 여진족과 남송의 한족을 모두 중화민족이라는 용광로 안에 넣다 보니 누구는 영웅이고 누구는 반역자라 구분 짓기 어렵게 된 것이다.

 만리장성이 엿가락처럼 늘어난 것 또한 같은 이치다. 과거 장성으로 일컬어진 건 진(秦)과 명(明) 등 대부분 한족의 왕조가 북방 민족의 침입을 막기 위해 쌓은 것이다. 그러나 통일적 다민족 국가론에 따라 북방 민족을 중화민족의 테두리 안으로 끌어안은 뒤엔 입장이 달라졌다. 한족과 비한족이 쌓은 성(城)을 제대로 구분하지 않고 자의적으로 장성에 포함시키고 있는 형국이다. 장성에 대한 재해석이 이뤄지고 있는 셈이다.

 문제는 중국의 만리장성 늘리기가 여기서 끝나지 않을 것이라는 데 있다. 이종수 단국대 역사학과 교수는 지난달 열린 한 토론회에서 “최근 중국은 장성의 동쪽 끝을 한반도의 청천강 유역까지 확대하려는 작업을 벌이고 있다”고 말했다. 중국의 장성 늘리기에 우리가 지속적으로 깊은 관심을 가져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고무줄은 무한정 늘일 수 있는 게 아니다. 지나치게 잡아당기면 끊어진다. 현재 중국 역사학계의 움직임이 그런 모양새다. 한족 외 55개 소수민족까지 끌어안아야 하는 중국의 고민을 이해 못할 바는 아니다. 새로운 역사관으로 과거를 새롭게 해석할 수는 있다. 그러나 역사를 왜곡하는 건 전혀 다른 문제다. 자신의 혼과 정체성을 조작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

 얻는 게 있다면 잃는 것 또한 있는 법이다. 역사 왜곡을 통해 잠시 동안은 중화민족이란 대가정(大家庭) 만들기가 힘을 얻을 수는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 대가로 잃는 것은 다른 어떤 것과도 바꾸기 어려운 ‘중국의 양심’이다. ‘역사학자 붓끝에서 나온 오류’를 시정해 ‘반드시 역사의 진실성을 회복해야 한다’던 저우언라이의 말을 중국 역사학계는 잊어선 안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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