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이드피치] 어긋난 스포츠맨십 올시즌엔 꼭 고치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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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프로야구 한국시리즈 2차전이 끝난 뒤 현대와 두산이 신경전을 벌였다.

두산측은 현대 박재홍이 2루에서 두산 배터리의 사인을 훔쳐 타석의 박경완에게 전달했다. 이를 눈치챈 두산 투수 박명환이 빈볼을 던져 박경완이 마운드로 걸어올라가는 험악한 분위기가 연출됐다고 두산 관계자는 주장했다.

두산 김인식 감독은 "우리 애들이 아직 어려 감정적으로 대응했다" 며 현대 선수들의 '사인 훔쳐보기' 를 확신했다. 반면 현대 김재박 감독은 "말도 안되는 소리" 라고 일축했다. 그는 선수들에게 그런 비신사적인 행동을 지시한 적이 없으며 2패에 몰린 두산이 분위기를 바꿔 보려는 고도의 심리전이라고 해석했다.

사인 훔쳐보기의 사실 여부를 떠나 서로를 의심하고 승리를 위해서는 상대를 속이는 것도 합리화되는 어긋난 스포츠맨십이 프로야구를 검게 물들이고 있다. 승리가 굳어진 상황에서 악착같은 번트로 상대를 자극하는 것은 다반사며 상대팀 선수의 개인기록을 허용해 주지 않기 위해 고의로 승부를 피한 적도 있다. 특정 타자의 개인기록을 위해 안타 때 3루 주자가 홈에 들어오지 않은 적도 있다. 또 상대 포수의 사인을 엿보기 위해 1루쪽 코치박스를 규정에 어긋난 곳에 만들기도 했다.

이런 행위들은 프로야구의 불신을 조장하고 품위를 손상했으며 '상대는 어떻게 되더라도 나만 잘되면 그뿐' 이라는 치졸한 이기주의를 만연했다. 지난 6일은 미국의 '스포츠맨십 데이' 였다. 11년 전 로드아일랜드대 국제스포츠연구소가 스포츠에서 점점 사라져가는 페어플레이 정신을 일깨우고자 제정했다.

올해 스포츠맨십 데이 때 미국 내 각급 학교에서는 '중요한 것은 스포츠맨십(sportmanship matters)' 이라는 문구를 학교 체육관에 내걸었다.

우리에게는 '스포츠맨십 데이' 같은 날은 없지만 '체육인 헌장' 이 있다. 다섯가지 항목의 체육인 헌장은 ▶경기인은 순수한 마음으로 최선을 다하고▶심판 판정에 복종하며 상대를 존중하고▶심판은 규칙에 따라 엄정하게 다스리고▶지도자는 과학적인 기술과 창의적인 지도에 힘쓰며▶관중은 누구에게나 공정한 태도를 갖는다는 내용이다.

선수.심판.지도자.관중이 모두 스포츠맨십을 지키자는 내용이다. 한국야구위원회도 스포츠맨십 회복을 위해 올해부터 페어플레이상을 만들었다.

불신과 속임수, 만들어준 타이틀이 판을 치는 그라운드의 미래는 어둡다. "심판 때문에 졌다" 는 말도 도움이 안된다. 지난 11일 시범경기를 시작한 올해 프로야구가 희망의 불씨를 키우려면 서로를 존중하고 심판 판정에 복종하는 풍토를 정착시켜야 한다. 가슴 속에서 '불끈' 하고 뜨거운 것이 치밀 때마다 체육인 헌장을 되새겨 보자. 그래서 운동장 만큼은 깨끗하고 공정한 곳으로 만들어야 '민심' 을 모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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