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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스토리] 인터넷 구매〓납품비리 해결사

중앙일보

입력

현대자동차의 이규복(李圭馥.35) 전략구매팀 과장은 지난 10일 오전 볼트.너트 납품 업체들과 인터넷으로 가격 협상을 30여분 만에 끝냈다.

지난해 초만 해도 이런 일에는 구매부 직원 서너명이 나서 납품업체 사장 면담, 제품 규격 확인,가격조건 협상 등을 벌이느라 한달 넘게 씨름해야 했다. 그는 "지난해 2월부터 인터넷 구매관리 시스템이 도입되면서 구매과정이 투명해지고 업무 효율도 높아졌다" 고 말했다.

현대차처럼 인터넷을 통한 기업간 전자상거래(B2B)를 원자재 구매.납품.하도급 분야에 도입하는 기업들이 크게 늘고 있다. 이들은 새로운 시스템으로 원가를 줄이면서 구매나 납품을 둘러싼 고질적인 비리까지 줄어드는 '뜻밖의 효과' 까지 얻고 있다.

◇ 말썽 잦은 업종에서 적극 추진〓자동차나 건설.전력.유통.철강.섬유 등 그간 구매와 관련해 잡음이 많았던 업체들일수록 B2B 추진에 열성적이다. 특히 비리가 많았던 건설업체들은 인터넷 구매 시스템에 힘입어 올해를 투명성 확보의 원년으로 설정해 놓고 있다.

중견 건설업체인 고려개발은 올해 전자입찰 시스템을 가동, 1천2백 개 협력사와 하도급 질서를 확립할 방침이다. 입찰 절차.참여업체 낙찰가격이 인터넷에 공개돼 의혹의 소지를 없앤다는 것이다.

현대건설도 기존의 견적.발주.대금결제 기능과 더불어 올해부터는 입찰과 협력업체 관리까지 인터넷으로 처리할 계획이다. 현대건설 관계자는 "투명한 자재구매로 현대건설의 대외적 이미지까지 개선될 것을 기대한다" 고 말했다.

한국전력도 투명성 확보를 위해 원전 5호기 건설용 원자재의 절반 이상을 인터넷으로 납품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현대백화점의 경우 지난해 이 시스템 도입 이후 납품비리와 진정건수가 이전보다 30% 이상 줄었다는 분석이다.

가장 큰 효과는 역시 원가절감이다. 삼성전자는 지난해부터 글로넷 시스템을 가동, 전세계 9백여개 업체와 연간 93억달러 규모를 거래해 연간 1천5백억원의 원가를 절감했다.

올해는 국내 협력사까지 확대해 2천여개 국내외 협력사들과 13조원 규모를 거래해 연간 3천억원의 원가절감 효과를 얻을 계획이다.

두산그룹은 온라인 옥션(역경매)을 이용해 비용을 절감하고 있다. 두산 관계자는 "사람이 만나 흥정하면 값을 5~10% 깎는 게 관례지만 여러 공급자를 두고 온라인 옥션을 하면 15~25%는 더 싸게 살 수 있다" 고 말했다.

산업자원부 조사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으로 ▶섬유(22)▶소모성 자재(16)▶ 철강(9)▶중공업(8)▶건설(7)▶전력(6)▶자동차(5)등 1백70여개 업체가 인터넷 구매 등 B2B를 실시하고 있다. 이들 업체는 이미 구매물량 중 15% 정도를 인터넷으로 처리하는 것으로 업계는 추산하고 있다.

◇ 구매부는 비인기 부서〓인터넷 구매의 확산은 직장 내 인기부서의 판도도 바꾸고 있다.

화학업체인 A사 관계자는 "그동안 구매부가 납품업자들로부터 이런 저런 대접을 받는 것으로 알려져 인기부서였던 것이 사실" 이라며 "그러나 요즘은 '떡고물' 은 없이 제품 구매에 따른 책임 등 부담만 큰 부서로 인식돼 기존사원은 물론 신입사원도 기피하는 부서로 바뀌고 있다" 고 말했다.

구매부는 감원대상에도 오르고 있다. 삼성전기는 최근 본사 구매인력을 2백명에서 1백명으로 감축하고, 유휴 인력을 해외법인에 집중 배치하기로 했다. 현대.기아차도 인터넷 구매가 이뤄지기 전인 1997년만 해도 연간 1조원 규모의 일반 구매 업무를 담당하던 직원이 80여명이었으나, 현재는 연간 2조5천억원 이상을 사들이면서도 직원 수가 30% 이상 줄었다는 설명이다.

권평오 산자부 전자상거래지원과장은 "인터넷을 통한 구매 시스템 도입이 회사 내에서 기득권을 지키려는 조직들이 이런 저런 핑계를 대면서 지연되는 사례도 적지 않다" 며 "이런 반발을 딛고 시스템을 도입하려면 최고 경영자의 결단이 필요하다" 고 강조했다.

산업부 biznews@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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