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린스펀 “유럽은 지금 구멍 난 보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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앨런 그린스펀 전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의장이 재정위기를 겪고 있는 유럽을 ‘구멍 난 보트(a leaking boat)’에 비유하며 “정치적 통합만이 유일한 해법”이라고 주장했다. 그린스펀 전 의장은 지난달 29일(현지시간) 미 경제전문방송 CNBC와의 인터뷰에서 “유럽의 문제는 모든 국가가 재정적자를 안고 있다는 점”이라며 “유럽은 흡사 구멍 난 배와 같고 우리는 괸 물을 지속적으로 퍼내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물을 퍼낼 수 있다는 점에 만족하고 있지만, 문제는 구멍이 아직 메워지지 않았다는 점”이라며 “구멍을 메우지 못하면 결국 배는 가라앉을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앞서 이날 막을 내린 유럽연합(EU) 정상회의에서 유럽 각국은 유로존(유로화 사용 17개국)의 은행을 공동으로 관리하는 단일 감독기구를 만들고, 구제금융기금을 활용해 부실 은행을 직접 지원하기로 합의했다. 이 같은 대책에 시장은 일제히 환호했다. 독일·프랑스 증시는 4% 넘게 올랐고, 미국 시장도 2% 넘게 상승했다. 경기 회복 기대감에 미 서부텍사스유는 10% 가까이 급등했다. 반면, 안전자산으로 평가받는 금값은 2% 가까이 하락했다.

 이에 대해 그린스펀 전 의장은 이번 합의 내용이 결코 유럽의 재정·금융위기에 대한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수 없다고 지적한 것이다. 그는 “재정이나 은행동맹으로는 부족하다고 본다”며 “유럽이 살아남기 위해서는 결국 정치 통합만이 유일한 해결책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재정동맹이나 금융동맹은 정치 통합에 비해 안정적이고 지속적이지 않다고 보기 때문이다. 그린스펀 전 의장은 이어 “만약 유럽이 재정·금융위기를 벗어나지 못할 경우 미국마저 타격을 받을 수밖에 없다”고 경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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