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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수극이 먹히는 사회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277호 31면

요새 월·화 저녁을 시쳇말로 꽉 잡고 있는 드라마가 있다. SBS ‘추적자’다. 시청률은 10% 초반이지만 다시 보기 서비스 이용자가 많고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서 화제가 되는 걸 보면 ‘체감 시청률’은 두세 배일 것 같다.

On Sunday

내용인즉 어느 형사(손현주)의 복수극이다. 딸이 뺑소니 사고로 죽는다. 그런데 가해자는 권력과 부를 다 가졌다. “정의가 강물처럼 흐르는 대한민국을 만들겠다”는 대통령 후보(김상중)의 아내이자 재벌 딸(김성령)이다. 정의가 강물처럼 흐르기는커녕 사건은 축소·은폐된다. 형사의 아내도 불행한 죽음을 맞는다. 비통에 빠진 남자는 응징에 나선다. 총기를 훔쳐 법정에 난입해 소동을 부리고 나중엔 대통령 후보의 아내를 납치한다. 그래도 정의는 좀처럼 구현되지 않는다.

‘추적자’는 왜 열광적인 반응을 낳을까. 감정이입이 제대로 이뤄지기 때문이다. 돈도 빽도 없는 평범한 저 남자는 마치 나처럼 느껴진다. 억울한 일을 당해도 제대로 해결할 수 없었던 불쾌한 기억이 떠오른다. 혹은 저런 기막힌 상황이 닥칠 경우 나도 속수무책일 것 같은 불길한 예감에 사로잡힌다. 사법제도가 해결해주지 못하는 상황에서 형사의 복수는 정당하게 받아들여진다.

매주 ‘추적자’를 빠짐없이 챙겨 보고 있으면서도 이 드라마의 인기가 그저 반갑지만은 않다. 주인공이 사태 해결을 위해 직접 행동에 나선다는 사적(私的) 복수가 영 찜찜해서다.

사실 이런 설정은 ‘추적자’만의 것은 아니다. 몇 년 새 한국 영화에서 두드러진 경향이 드라마로 이어졌을 뿐이다. 인신매매 조직에 납치된 이웃 집 소녀를 맨주먹 하나로 구하는 남자가 주인공인 ‘아저씨’를 비롯해 ‘세븐데이즈’ ‘악마를 보았다’ 등에서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는 식의 사형(私刑)이 주요 설정으로 쓰였다. 올 초 340만 관객이 든 실화 소재 영화 ‘부러진 화살’도 법원 판결에 불만을 품은 주인공이 석궁을 들고 사적 응징에 나서는 얘기였다.

법보다 주먹을 앞세우는 이런 설정은 아마 대중적 카타르시스를 선사할지 모른다. 하지만 실제로 ‘함무라비’식 응징이 행해지는 사회는 공권력이나 국가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사회 못지않게 불안하고 위험하다. 사적 보복이 꼭 이 형사처럼 억울한 사람에 의해서만 이뤄지란 법도 없다. 아들이 얻어맞았다며 아버지가 보복하고, 아버지의 원수를 아들 손으로 처단한다면 법 질서는 사라질 것이다. 그럴 경우 더 큰 피해자는 사회적 약자일 수 있다.

게다가 이런 현상은 사회건강지수로도 우울한 신호다. 우리 사회가 ‘공정사회’와는 거리가 멀다고 느끼는 사람이 많다는 뜻이다. 사회의 일그러진 얼굴이 드라마라는 거울에 비춰졌다고 해야 할까. 재벌 총수가 핫라인으로 검찰총장에게 지시를 내리는 ‘추적자’의 생뚱맞은 허구와 대통령 형님이 비리 혐의로 소환되는 현실이 머릿속에서 오버랩되는 걸 막을 길이 없다. 분명한 점은 사법제도가 문제를 해결하지 못해 개인이 복수의 칼을 뽑는 판타지에 빠져드는 사회는 건강하지 못하다는 것이다. 건강하지 못한 사회가 극한의 복수극을 낳는 악순환을 끊을 길은 없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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