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사람] 호텔사업가로 성공한 테니스 스타 이덕희씨

중앙일보

입력

"오늘의 저를 있게 해준 한국 테니스에 보답하는 작은 시작일 뿐입니다. "

한국인으로는 첫 프로 테니스 선수였던 이덕희(47.LA거주)씨가 침체된 한국 테니스를 살리기 위해 국제주니어대회를 만들었다.

그는 1979년 미국으로 건너가 프로 테니스계에 입문한 뒤 81년 US오픈 16강에 진출, 세계랭킹 34위까지 올랐으며 은퇴 후 호텔사업가로 성공했다.

李씨는 다음달 14~20일 서울 올림픽 테니스코트에서 열리는 '제1회 이덕희배 국제 주니어 테니스 대회' 의 준비상황을 챙기기 위해 일시 귀국했다.

그는 "이제 우리 어린 선수들이 세계무대에서 뛰어야 하는데, 국내엔 이들을 위한 국제대회가 하나도 없어 국제주니어대회를 창설키로 했다" 고 밝혔다.

73년부터 민관식(83)전 국회의장의 아호를 딴 소강(小崗)배와 테니스계의 원로였던 고(故)홍종문 선생의 아호를 딴 장호(長湖)배 등이 주니어 선수의 등용문 역할을 해왔으나 국제대회는 전혀 없다.

스포츠 용품업체인 나이키가 주최하던 국제 주니어대회도 IMF체제 이후 폐지됐다. 따라서 많은 돈을 들여 해외경기에 직접 참가하지 않고서는 국내 선수들이 국제무대에서 뛸 수 있는 기회를 잡기 어려운 실정이다.

유망주들이 국제무대에 설 수 있는 랭킹 포인트를 얻기 위해 외국대회에 자주 출전하는 바람에 국내대회가 김빠진 측면도 없지 않았다.

인터뷰 요청을 수차례 사양했던 李씨는 "미국에서 성공한 사람들이 사회에 환원하는 아름다운 모습을 보면서 나도 뜻깊은 일을 하고 싶었다. 앞으로 계속 힘을 쏟아 이 대회를 권위있게 키우고 싶다" 고 말했다.

그는 이번 대회를 여는데 드는 6천여만원을 혼자 낸다. 외부 스폰서를 받지 않느냐는 질문에 "후배를 키우려는 선배의 순수함이 손상되지 않게 앞으로도 계속 외부의 금전적 도움을 받지 않고 대회를 진행하겠다" 고 말했다.

단, 테니스 선후배들은 대회의 운영과 조직.홍보에 직접 나서 큰 도움을 주고 있다. 전 여자 테니스 국가대표 출신들의 모임인 마당회(회장 양정순)회원들이 적극 참여하고 있다는 것이다.

김종문 기자 jmo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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