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두 빚으러 모인 동물들의 익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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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까지 그림책은 우리에게 그림의 떡처럼 보였다. 그러나 유아교육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사회경제적 토양이 그것을 뒷받침하면서 유아 또는 유년기 아이들을 위한 어린이책 출판은 아연 활기를 띠고 있다.

여기서 눈여겨 볼 대목은 국내 창작 그림책의 발걸음이다. 그림책 글 작가나 일러스트레이터라는 말은 아직 낯설기조차 한 형편이니, 그림책 분야는 이제 막 걸음마 단계라고 해야 맞을 것이다.

그림책에서 글과 그림의 비중은 어느 정도일까?

이에 대해 최근 한 그림책 글 작가는 "아기한테 엄마와 아빠의 비중은 어느 정도라고 생각하느냐" 며 명쾌한 답변을 시도했다. 나는 그 행복한 만남의 하나로, 발랄한 공상의 세계를 열어 한국 창작동화의 흐름을 한 차원 비약시킨 채인선의 글과, 민화풍의 선을 오늘의 색채 감각으로 되살려 한국 그림책의 가능성을 널리 인정받은 이억배의 그림이 한데 어우러진'손 큰 할머니의 만두 만들기' (채인선 글, 이억배 그림, 재미마주) 가 퍼뜩 떠올랐다.

"아주 아주 손이 큰 할머니가 있습니다. /무엇이든지 하기만 하면/엄청 많이/엄청 크게 하는/할머니입니다. //해마다 설날이 다가오면 할머니는 만두를 빚습니다. /아주 아주 맛난 만두/숲속 동물 모두 배불리 먹고도 남아/한 소쿠리씩 싸주고도 남아/일년 내내 냉장고에 꽉꽉 채워 두는 만두를…. "

뭐든 이웃과 나누기 좋아하는 따뜻한 민간 습속의 세계와 동화 특유의 과장이 '손 큰 할머니' 라는 캐릭터 안에서 자연스레 겹치고 있다. 만두 만들기에 싫증난 숲속 동물들이 엄청 큰 만두를 만들어서 나눠 먹고 모두 한 살씩 더 먹었다는 얘기는 얼마나 유쾌하며 흐뭇한가.

동물들이 할머니한테 이것저것 궁금해서 묻는 말이나, 얼른 만두를 빚고 싶어 안달인 심정이나, 신이 나서 생긴 대로 장난치며 만두를 만드는 모습이나, 나중에 지쳐서 혀를 빼고 늘어지거나 몸을 꼬는 모습, 또 엄청 큰 만두를 만들기로 하고 한꺼번에 함성을 내지르며 커다란 만두피를 말아대는 모습 등은 고스란히 아이들의 짓거리를 닮았다.

크고 작은 동물들의 미묘한 표정까지 붙들어냈어도 그저 푸근하기만 한 민화풍의 그림에는 아이들마냥 익살맞고 명랑한 기운이 넘쳐난다. 일본에 '구리와 구라의 빵 만들기'가 있다면, 우리에겐 '손 큰 할머니의 만두 만들기'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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