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정상급 20대 CEO 6명 뭉쳤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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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대를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이요. 뭐, 20대 사장들의 모임이라고 해도 괜찮습니다. 더 좋은 이름 있으면 하나 지어주셔도 좋구요.”

‘20사모’의 뜻을 묻는 질문에 전혀 합의되지 않은 듯한 답이 쏟아져나온다. ‘무정형(無定形)’. 이것저것 격식을 갖추거나 어떤 형식에 틀 지워지는 것은 생래적으로 맞지 않는다는 듯 자유롭고 편안한 모습이다.

20사모는 벤처기업에 몸담고 있는 20대 CEO들의 모임으로, 회장인 드림인테크 정경석 대표이사(29)를 비롯 CCR㈜의 윤석호 기술고문(28), (주)엔토크커뮤니케이션즈의 박승용 대표이사(27), ㈜두레소프트의 박홍원 대표이사(27), ㈜인터넷컨설팅그룹(ICG)의 김상우 대표이사(25), 노머니커뮤니케이션의 김병진 대표이사(24), 이렇게 여섯 명이 회원으로 있다. 젊지만 각 분야에서 나름대로 일정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재기와 능력을 인정받은 CEO들이다.

“20대 CEO요? 강한 체력과 넘치는 의욕, 그리고 어깨에 힘주지 않고 조직에 접근하는 점이 강점입니다. 하지만 경륜을 익힐 기회가 적다는 것이 아쉬움이지요.”

ㅍ 현재 벤처기업 CEO들의 모임은 그 성격과 종류에 따라 셀 수 없을 만큼 많다. 그런 가운데 이미 유명무실해진 모임도 있고 나름의 영향력을 행사하는 모임도 있지만, 대부분 30∼40대가 주도하는 비즈니스를 위한 모임이라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때문에 막상 모임에 나가서도 많은 사람들과 ‘상견례’하는 수준에 머무르기 십상이다. 그런 면에서 20사모는 확실히 다르다. 단순히 20대가 모였다는 것 뿐만 아니라 서로 ‘형, 동생’ 하고 지낼 만큼 격의 없이 친한 사이라는 점에서 그렇다.

“20대 CEO는 인적 네트워크가 좁을 수밖에 없습니다. 거의 발로 뛰어다니며 홀로서기를 해야 하는 상황이지요. 그런 비슷한 상황에 있다 보니 서로 고민도 나누게 되고, 해서 지금은 형제처럼 친해졌습니다.” 정경석 대표의 설명이다.

20사모는 모임의 처음부터가 좀 색달랐다. 한창 벤처 붐이 일던 지난 해 초, 한 남성 패션잡지에서 주선한 화보촬영을 계기로 처음 만난 것. 이후로 한두 번 더 만남을 가지면서 아예 한 달에 한 번씩 모임을 갖기로 한 것이 지금에 이르렀다.

회사경영·병역 문제 등 터놓고 나눠

이들은 젊은 만큼 개성도 뚜렷하고 각양각색이다. 그 자신들 스스로 이런 특별한 관계가 아니었으면 도저히 함께 어울릴 수 없었을 것이라고 평할 정도.

“경석이 형은 리더십이 있고 의협심과 책임감도 강하지요. 늘 연락하고, 밥값도 잘 내고. 경석이 형이 아니었으면 모임이 지속되기도 어려웠을 거예요.”

정경석 대표가 모임의 ‘아버지’ 역할이라면, CCR의 윤석호 고문은 ‘어머니’ 역할을 담당한다는 평을 듣는다. 항상 활기가 넘치고 재미있는 데다 모임을 위한 아이디어나 주도적 제안을 많이 내놓기 때문. 온라인 서비스에 관한 한 언제든지 물어볼 수 있는 전문가이기도 하다.

두레소프트의 박홍원 대표 역시 유머 감각이 넘치고 쾌활해 모임의 활력소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또 장난기 어린 유쾌함 이면에 진지함이 있어, 막상 기술개발에 들어가면 덤벙거리는 일 없이 몰입하는 마니아 기질도 있다고 회원들은 덧붙인다. 반면 엔토크의 박승룡 대표는 나이에 비해 침착하다는 평을 듣는다. 회원들 대부분이 엔지니어 출신인 것과 달리 박대표는 경영을 전공했기 때문에 회원들이 회사경영이나 e-비즈니스에 대한 자문을 구하기도 한다. ICG의 김상우 대표 역시 조용한 가운데 회원들에게 웹 컨설팅과 관련된 정보나 도움을 주는 경우다.

“김병진 대표는 창의적이고 누구보다 개성이 강해요. 모임에서 가장 어리기 때문에 형들이 많이 챙겨주려 하는 편이지요.”

이렇게 서로 개성이 다른 이들이지만 모두 ‘20대, 벤처인’이라는 공통점 때문에 모이면 나눌 이야기가 많다. 이성교제에 대한 이야기부터 사장으로서 겪는 회사생활의 애환, 그리고 무엇보다 병역 문제가 주된 관심사다. 병역특례에 대한 정보를 나누고 이런저런 고민을 털어놓으며 서로 상담을 해주기도 한다.

CCR의 윤석호 고문은 “젊은 나이에 만나 힘들게 고생하는 시기를 함께 보내고 있기 때문에 인간적인, 그리고 지속적인 관계를 쌓아갈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한다. 모이면 왁자지껄하게 웃을 일이 많지만, 막상 빚쟁이에게 쫓긴 얘기나 사원과 싸운 얘기, 누군가에게 배신당한 얘기 등 젊은 나이에 사업을 하며 겪게 된 일들을 터놓을 때면 한 차례씩 눈물을 삼키기도 한다는 것이다.

이처럼 이들은 20사모만의 독특함을 ‘격의 없는 친근함’에서 찾는다. 김병진 대표는 “친한 형들 만나러 간다는 마음으로 나와요. 비즈니스 모임 같으면 이렇게 못 모였죠”라며 모임의 성격을 설명한다. 어른들을 만날 때는 옷 입는 것부터가 편안하지 못한 것이 사실이고, 비슷한 또래 친구들의 경우 대부분 직장을 다니는 샐러리맨이기 때문에 충분히 통하지 못하는 구석이 있지만, 20사모에서는 이런 것들이 모두 해소된다.

그러나 20사모가 단순한 친목 모임에 그치는 것은 아니다. 작지만 모르고 지나치기 쉬운 비즈니스상의 정보나 아이디어도 알려주고, 서로의 경영 스타일이나 기업문화를 공유한다. 각 사의 사업추이를 지켜보며 분발을 다짐하게 되는 자극이 되기도 한다.

또 자주 모여 터놓고 이야기하다 보니 서로 회사 사정을 나누고 사업상 자문을 구하는 일이 잦아졌고, 자연스럽게 비즈니스에 관한 논의도 이루어지고 있다. 서로 분야가 조금씩 달라 협력하거나 도움을 주고받기도 좋다.

실제로 ICG와 드림인테크가 함께 컨설팅-솔루션을 제공하는 프로젝트를 진행하기도 하고, CCR의 온라인 네트워크 게임인 포트리스의 일본 진출을 위한 일어 입력 및 번역 시스템 개발을 두레소프트에서 진행 중이며, 드림인테크와 엔토크, 노머니와 드림인테크, 엔토크와 두레소프트, 이런 식으로 사업상 관계가 이루어지고 있다.

모임이 활발해지다 보니 자연스럽게 외부 활동도 계획하게 되었다. 중국 북경에 위치한 민족대학교의 학생들과 벤처 창업 및 경영과 관련한 교류를 계획하고 있는 것. 조선족 2세, 3세가 대부분인 이곳 학생들은 중국에서도 불고있는 벤처 열풍으로 벤처기업에 대한 꿈을 키우고 있는 이들이 많은데다, 우리나라 돈으로 10만원 정도면 벤처 관련 동아리를 도와줄 수도 있다.

활동비 지원뿐 아니라 중국 출장시 이들과 만남을 갖거나 온라인 세미나 등을 가지게 되면, 20사모 회원들에게는 큰 부담이 되지 않으면서 조선족 대학생들에게는 격려와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한중 벤처포럼 등을 통해 여러 차례 국내를 방문한 이 대학 임진철 교수를 통해 교류를 추진하고 있는 중이다.

20사모 회원들은 이 모임을 기반으로 사업 내외적인 고민과 정보를 나눌 뿐 아니라 결속력을 다져 좋은 휴먼 네트워크를 형성하고, 나아가 20대에 사업을 준비하고 있는 후배들에게 하나의 본이 될 수 있기를 바라고 있다.

“무엇보다 각 회사가 잘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회원사의 상황이 어려워지면 이렇게 모이기도 어렵거든요. 서로 어깨 두드려주고 도와가며 이 관계를 잘 유지해서 더욱 탄탄한 CEO 모임으로 발전시키고 싶습니다.”

정경석 대표의 바람처럼 이들 20대가 ‘차세대 한국 벤처’의 허리 역할을 제대로 감당해내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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