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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비자와 ‘통화’ 절실한 통신사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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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2면

설정선
한국통신사업자연합회(KTOA) 상근부회장

얼마 전 총선을 끝내고 연말 대선을 준비하는 정치권은 요즘 국민의 신뢰를 얻기 위해 분주하다. 비단 정치권뿐 아니라 국제관계, 기업과 고객, 조직 내의 구성원 그리고 개개인의 사적인 관계에 이르기까지 신뢰는 매우 중요하다.

 안타깝게도 우리나라 통신사업자들은 소비자로부터 신뢰를 얻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지난 4월 말에 미국·영국·일본 등 주요 10개국과 우리나라의 통신요금 수준을 비교한 코리아인덱스 결과가 발표됐다. 여기서 우리나라의 이동통신 요금은 단순 환율 기준으로는 가장 낮은 수준이고, 구매력이 반영된 환율(PPP)을 기준으로 해도 서너 번째로 저렴한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이에 대해 소비자는 믿을 수 없다는 반응이다. 가계통신비에 대한 부담이 크다는 인식 때문이다. 통신 이용량이 다른 국가에 비해 많은 편이고, 고가의 단말기 할부금 등이 요금 고지서에 포함되어 있다는 설명도 선뜻 동의하기 어렵다는 분위기다.

 사실 우리나라 통신요금은 비싸지 않고, 요금 인하 여력 또한 충분하지 않음을 보여주는 자료가 많이 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서 격년으로 발표하는 커뮤니케이션 아웃룩 보고서나 일본 총무성에서 발표한 통신요금 비교 등이 이를 뒷받침한다. 상반기 물가 상승을 최소한으로 억제하는 데도 지난해 요금 인하 조치가 기여한 바가 크다는 보도도 있었다. 반면 통신사업자의 경영 상황은 빨간불이 켜졌다. 가입자 1인당 평균매출 은 하락세를 보이고 있으며, 올 1분기에는 어닝쇼크라 불릴 만큼 좋지 않은 성적을 냈다. 실제로 영업이익과 당기순이익이 지난해보다 20% 가깝게 감소했다.

 이런 여러 근거에도 불구하고 통신요금 인하에 대한 요구는 끊이지 않고 있다. 소비자의 불신 때문이다. 물론 이러한 불신을 초래한 데는 통신사업자의 잘못이 크다. 이는 통신사업자들이 서로 경쟁사를 폄하하거나 과다하게 보조금 경쟁을 펼친 것이 원인이라는 지적도 있다. 소비자를 위한 정보 제공이나 소통이 부족한 것도 이유의 하나일 것이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우리나라 통신서비스 품질에 대한 신뢰는 높다는 점이다. 특히 해외에 나가본 경험이 있는 이용자라면 우리나라 통신 품질에 대해 자부심을 가질 정도다. 한국정보화진흥원의 ‘방송통신 품질 평가 결과’에서도 우리나라 이동통신 3사의 음성통화 성공률이 98.5%로, 세계 최고수준이라고 밝힌 바 있다. 그러나 기업이 신뢰를 얻기 위해서는 제품이나 서비스의 품질이 전부는 아닐 것이다. 서비스 품질에 대한 신뢰를 기반으로 진심으로 소비자의 마음을 얻기 위한 노력이 더욱 중요하다고 하겠다.

 통신산업은 매년 7조원 규모에 이르는 막대한 투자를 계속해오고 있다. 그만큼 정보통신기술(ICT) 생태계나 고용 창출에 기여하는 바가 큰 산업이다. 특히 스마트 시대와 같은 융합 시대에는 통신서비스의 중요성이 더욱 커지고 있다. 이 때문에 소비자로부터 신뢰를 얻지 못해 스마트 시대의 중요한 기반을 잃게 된다면 해당 기업은 물론이고 국가적으로도 큰 손실이 될 수 있다. 이런 관점에서 소비자 또한 통신사업자들에 대한 불신과 불편함을 거두고 현실을 이해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본다. 신뢰를 회복하는 것은 통신사업자의 몫이지만 그런 역할을 소홀히 했다고 통신산업 전체의 정체를 가져온다면 사업자의 손실은 물론이고 소비자를 포함한 ICT 산업 전체에도 큰 손실로 돌아올 것이기 때문이다.

설정선 한국통신사업자연합회(KTOA) 상근부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