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낡고 불결한 학교시설부터 바꿔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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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단 한 번이라도 자녀가 다니는 초·중·고교에 가 본 학부모라면 우리의 학교 시설 수준이 1990년대에 멈춰 있음에 놀라게 된다. 공중화장실 수준에도 못 미치는 더럽고 불편한 학교 화장실 때문에 변비에 걸릴 지경이라는 자녀의 불평이 괜한 얘기가 아니다. 교실 복도에서 뜨거운 국물을 식판에 배식받고 아슬아슬 교실로 들고 가 식사하고, 체육복 갈아 입을 곳이 없어 냄새나는 화장실에 가야 하는 게 지금 우리 학교의 현실이다.

 본지가 지난 20일부터 보도하고 있는 ‘학교 업그레이드’는 21세기 대한민국의 국격(國格)에 비해 우리의 학교 시설의 수준이 얼마나 뒤떨어져 있는지 그 실상을 보여주고 있다. 교육당국과 학교는 이제 더 이상 더러운 화장실, 불결한 교실 급식, 뛰어다닐 수 없을 만큼 비좁은 운동장을 아이들에게 제공하면서 이것 역시 참아내야 하는 교육의 과정이라고 가르쳐선 안 된다. 열악한 학교환경 개선은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시급한 과제다.

 물론 지금의 학교환경이 시대 변화에 뒤떨어진 수준에 이르게 된 원인을 두고 교육당국이나 학교 역시 할 말은 있을 것이다. 각 시·도교육청 세출예산의 70~80%가 인건비·경상비 같은 고정비로 쓰이다 보니 그동안 교육당국은 학교 시설 개선에 돈을 쓰는 데 인색할 수밖에 없었던 것도 사실이다. 한 학교의 화장실을 지하철 공중화장실 수준으로 바꾸는 데 5억원이 든다고 하니 교장들의 고민도 있었을 것이다.

 시설 환경 개선 문제는 개별 학교에만 맡겨 놓을 수 있는 사안이 아니다. 정부의 교육재정 투자 규모가 당장에 큰 폭으로 늘어나기 힘든 것도 현실이다. 그렇더라도 교육과학기술부, 전국 16개 시·도교육청이 매년 재정투자계획을 세우는 데 있어서 학교의 시설 환경 개선에 대해 투자 우선순위를 상향 조정할 필요가 있다. 그 가운데서 건축물 안전 진단 결과 위험등급을 받은 학교를 리모델링하는 일과 아이들이 기피하는 학교 화장실의 개선은 가장 먼저 서둘러야 한다.

 현재 지방자치단체들이 시·도교육청에 제공하는 비법정 전출금이나 교육경비보조금의 비중은 현재 각 시·도 일반예산의 1% 안팎에 불과하다. 좀 더 늘릴 필요가 있다. 지역 주민에 대한 교육서비스 향상은 시·도 광역단체장들도 같이 챙겨야 할 사안이기 때문이다. 교육청과 학교의 예산 절감 노력도 요구된다. 예컨대 일반 시민과 전문가들로 구성된 현장점검반을 학교 현장에 보내 부실 시공의 문제점이나 시설 공사의 낭비 요인을 찾아내려는 서울시의 노력과 같은 시도가 필요하다.

 공교육의 질을 높이려면 무엇보다 아이들이 만족하는 학교 시설을 만들어야 한다. 진보와 보수도 여기엔 생각이 다르지 않을 것이다. 교육계가 학교 업그레이드를 위해 힘과 뜻을 함께 모으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