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권력 PK 싹쓸이 … 정권말에 누가 주도했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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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원회관에서 열린 한국경제 긴급 진단과 정책 과제 토론회에 참석한 김석동 금융위원장(오른쪽에서 둘째)이 준비해 온 원고를 살펴보고 있다. 오른쪽부터 정우택 새누리당 최고위원, 김 위원장, 이한구 새누리당 원내대표, 진영 새누리당 정책위의장. [연합뉴스]

PK(부산·경남)의 금융권력 독식 현상이 대선을 앞둔 정치권의 강한 반발을 사고 있다. 지난 20일 농협금융지주 회장에 경남 거제 출신의 신동규 전 은행연합회장이 선임된 게 발단이다. 이로써 6대 금융지주사 회장이 모두 PK 출신으로 채워졌다. 우리 금융사상 초유의 일이다. 익명을 원한 한 전직 경제부처 장관은 “능력이 떨어진다는 게 아니라 독식이라는 비난을 산다는 게 문제”라며 “시키는 사람도, 하려는 사람도 자중했어야 했다”고 말했다. <중앙일보>6월 21일자 E1면>

 정치권은 이들 회장이 형식적으론 주주총회를 통해 임명되긴 했지만 인사의 배후엔 청와대와 금융감독위원회의 입김이 강하게 작용했다고 보고 있다. 여당인 새누리당도 못마땅하다는 입장이다. 비영남권 선거에 악영향을 미칠 뿐 아니라 차기 정부의 국정 운영에도 부담을 줄 수 있다는 불만이 나오고 있다.

 이혜훈 최고위원은 22일 “예전부터 금융권에선 ‘PK가 다 해먹는다’는 말이 많았기 때문에 농협금융지주 회장 인선은 일부러라도 PK를 피해가는 게 상식인데 결국 또다시 PK 인사가 들어선 것을 보니 해도 너무 한다”고 말했다. 박근혜계 핵심인 최경환 의원도 “금융계 고위직은 당연히 지역적으로 탕평인사를 했어야 하는데 정부가 왜 이런 식으로 몰고 가는지 알 수 없다”며 “차기 정부에서도 상당한 부담이 될 수 있다”고 했다. 익명을 원한 수도권의 재선 의원은 “국민들에게 최근 금융권 인사는 권력이 있을 때 자리나 챙겨두자는 식으로밖에 안 보인다”며 “해도 양심적으로 해야 할 것 아니냐. 금융권뿐 아니라 현 정부가 임기 종료 때까지 임명할 자리가 많은데 이런 식으로 나눠먹기 하는 것은 차기 정부 입장에선 일종의 ‘대못 박기’에 해당한다”고 지적했다.

 충청권의 한 박근혜계 인사는 “역대 정부가 항상 인사 편중 시비에 휘말리긴 했어도 금융권 인사를 이런 식으로 특정 지역이 독식하는 것은 본 적이 없다”며 “연말 대선의 승부처인 충청권에 자칫 반새누리당 정서를 유발할 수도 있는 악재”라고 말했다.

 더 노골적인 지적도 있다. 이명박 정부 중기까진 금융권 인사 때 이 대통령의 측근 그룹인 강만수(경남 합천) KDB산은지주 회장, 이팔성(경남 하동) 우리금융지주 회장 등의 영향력이 막강했는데, 후반기로 오면서 김석동 금융위원장의 존재감이 두드러진다는 얘기가 나온다. 한 고위 당직자는 “부산 출신인 김석동 금융위원장이 유아독존 스타일이라 지난해부터 금융권 인사를 좌지우지한다는 얘기가 파다했다”며 “조만간 결정될 신용보증기금 이사장도 부산 출신 인사가 제일 유력한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또 다른 당직자는 “정권 초반부에는 이 대통령의 ‘동지그룹’이 금융계 인사를 좌지우지하더니, 후반기엔 실무형 측근들까지 나서는 양상”이라고 말했다.

 당내에선 하금열 대통령실장이 거제 출신인 점에도 주목하고 있다. 신동규 신임 농협금융지주 회장과 동향이기 때문이다.

 민주통합당도 강하게 비판하고 있다. 광주 출신 이용섭 정책위의장은 “임기 초반부터 ‘고소영’ 인사(고대·소망교회·영남 출신을 우대하는 인사)의 난맥을 지적해 왔지만 이 정부는 마이동풍이더니 정권 말기까지 계속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홍영표 정책위 부의장은 “청와대나 금융위원회 등이 정권 차원에서 영향을 미쳐서 특정 지역 출신의 사주들을 무더기로 만든, 이런 관치인사는 대한민국 역사상 없을 것”이라며 “이명박 정부는 야당이 아무리 비판해도 ‘너희는 떠들어라. 우리는 챙겨먹겠다’는 식으로 노골적으로 나오고 있다”고 했다. 그는 또 “국회가 개원하면 반드시 바로잡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당내 경제통으로 불리는 홍종학 의원은 “‘금융 4대 천왕’이니 하며 정권 차원에서 금융계 요직을 낙하산으로 채우는 병폐가 금융권을 병들게 하고 있다”며 “경제위기 상황에서 한두 사람이 아니라 (6대 금융지주회장을) 전면적으로 (낙하산 인사로) 한다는 게 상식적이냐”고 되물었다.

 청주 흥덕을의 노영민 의원은 “과거 전례에 비춰보면 역대 정부에서 정권 교체기에 했던 인사는 새 정권이 들어섰을 때 언제나 문제를 일으켰다”며 “임기 말의 무리한 인사가 결코 해당 회사의 안정에 도움이 안 된다는 교훈을 외면하고 무리한 보은인사를 하는 것은 결코 용납할 수 없다”고 말했다.

류정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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