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로마·나치 … 제국은 ‘뒤웅박 신세’였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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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제국의 지배
티머시 H 파슨스 지음
장문석 옮김, 까치
584쪽, 2만5000원

지금도 서구에는 ‘제국의 향수’가 존재한다. 미 워싱턴대 교수인 저자에 따르면, 교실에서 서양문명은 제국 로마의 상속자라며 동경심을 퍼트린다. 제국 옹호론자인 니얼 퍼거슨(하버드대 교수) 같은 학자도 『제국』 『콜로서스』 등을 써서 엄청난 인세(印稅) 수입을 자랑한다. 퍼거슨은 당당하다. “역사 이래로 대부분의 역사란 사실상 제국의 역사이다.”

 보라. 지금 우리가 즐기는 많은 게 대영제국의 유산인데, ‘유로 2012’ 빅 매치가 열리는 스포츠인 축구부터 그렇다. 기독교·민주주의·영어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제국의 지배』는 이게 모두 제국주의 실체를 외면한 헛소리라고 주장한다. 한마디로 “21세기에 제국은 불가능한 사업”(552쪽)이다.

 민족주의라고 하는 강력한 방파제, 세계화 물결에서 제국은 이제 꿈도 못 꾼다. 또 고대 이래로 일어났던 모든 제국은 항상 몰락하지 않았던가. 그게 엄연한 진실이다. 즉 위에서 아래를 쳐다보면 거창하지만, 속은 위선적이고 억압적인 게 제국이다. 즉 지속 불가능한 체제다. 그걸 역사에 등장한 로마·나치 등 7개 제국의 사례연구로 생생히 보여주는 게 이 책이다.

 중국 제국 분석이 빠진 게 서운하지만, 제국은 의외로 ‘뒤웅박 신세’다. 해가 지지 않는다던 대영제국? 그들은 기원전 로마의 지배를 받았다. 잉카제국을 삼킨 무자비한 제국 에스파냐는 이슬람 우마이야의 압제에 신음했다. 아차 하는 순간에 식민지로 굴러 떨어진 실례가 2차 세계대전 당시 프랑스이다.

 떵떵거리는 제국이던 그들은 독일에 필적하는 병력도 갖고 있었다. 하지만 나치의 1940년 6월 파리 진격 아래 삽시간에 무너졌다. 나치 지배하 프랑스인의 ‘자발적 굴종’ 이야말로 실로 비참했다. “우리 자신도 모두 잠재적 신민(臣民·식민지 백성)이다.” 그게 이 책 마지막 문장이자, 전체를 관통하는 주제다.

 그래서 부제도 “제국은 왜 항상 몰락하는가”로 달려있다. 그러나 의문을 피할 수 없다. “그럼에도 왜 제국은 항상 다시 일어나는 것이지?” 그에 대한 설명은 좀 부족하다. 그걸 설명해주는 잘 된 국내 저술이 궁금하다면 서울대 교수 박지향의 『제국주의-신화와 현실』(서울대출판부)을 권한다. 실은 퍼거슨의 책도 무시하면 안 된다. 민족주의의 비분강개 대신 저들의 논리부터 알아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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