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 당권파 “국민 눈높이보다 당 변질 막는 게 우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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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국민의 눈높이라는 미명 아래 정치적 희생을 정당화하는 무시무시한 논리가 횡행하고 있다. 그것은 나치의 논리다. 국민의 눈높이를 활동의 기준으로 삼으면 당 강령을 모두 개정해야 한다. 진보 정당의 정체성을 사수하고 당의 변질을 막는 게 급선무다.”

 통합진보당 옛 당권파의 핵심 이의엽 전 정책위의장이 20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당 정체성 공청회에서 한 주장이다. 4·11 총선 비례대표 경선 부정과 종북(從北) 논란 속에서 옛 당권파와 맞선 혁신비대위(위원장 강기갑) 소속 새로나기특위가 마련한 당 노선 혁신안을 비판하면서다. 특위는 중도 성향의 국민들을 의식해 혁신안에 주한미군 철수 및 한·미동맹 해체에 대한 재검토, 재벌해체에 대한 타당성 재검토 등을 담았다.

 그러나 옛 당권파는 이게 잘못됐다고 공격했다. 사회를 맡은 이상규(서울 관악을) 의원은 “혁신이라는 이름으로 제기되는 해결책들이 진보 정당이 지향해야 할 정체성에 대한 또 다른 혼란을 불러일으키고 있다”고 말했다.

 옛 당권파는 이날 정체성을 그대로 드러냈다. 민혁당 사건으로 구속됐던 이 전 의장은 주제발표에서 “경선 부정은 사실에 근거하지 않은 여론재판을 통한 마녀사냥이며 비이성적인 광기였다”며 “이석기·김재연 의원을 정치적 희생양으로 사퇴시킨다 해도 수구세력의 공세는 수그러들지 않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새누리당 집권을 위한 일련의 계획으로 진행되는 것”이라고도 했다. 새로나기특위의 혁신안에 대해선 “놀랍게도 ‘투쟁’이라는 단어가 하나도 없다”고 비판했다.

 주한미군 철수와 관련해선 ‘주미철’이란 표현을 쓰며 “2만 달러 시대에 사는데 자주국방 못한다는 건 말이 안 된다”며 종전의 철수 주장을 되풀이했다. 종북 논란에 대해선 “북에 대해 어떤 주장이든 할 수 있는 자유가 먼저 논의돼야 한다”고 했다.

폭력에 대한 통진당의 인식도 드러냈다. 이 전 의장은 5월 12일 중앙위 회의 때 옛 당권파의 폭력행사를 “일부 당원들이 단상을 점거하고 몸싸움을 벌이다 발생한 일”이라고 규정했다. 국회 본회의장에서 최루탄을 터트린 옛 당권파 김선동 의원의 행동에 대해서도 “권장하는 것은 아니지만, 오죽하면 최루탄을 터뜨렸을까요”라고 했다.

 통진당은 대선 승리를 위해 민주통합당과의 연대를 반드시 복원해야 한다고 못 박았다. 조영건 통진당 고문은 “야권연합을 주도적으로 다시 일으켜 12월에 정권교체를 이룩해 낼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고 말했다.

 이날 이상규 의원은 김재연 의원을 언급하며 “주민들이 ‘저렇게 옷을 멋지게 입는 사람이 어떻게 주사파냐’고 하더라. 여러분 주사파 안 되려면 화려한 옷 입어야 한다”고 했다.

 1980년대 자생적 주사파를 이끌었던 구해우 미래전략원구원 이사장은 “옛 당권파가 추구하는 가치는 대한민국의 역사와 국가 전략에 비춰 커다란 문제점을 안고 있다”며 “북한은 통일전선전술을 계속 유지해 왔으며, 옛 당권파가 이로부터 직·간접으로 영향을 받는 것은 분명하다”고 말했다.

류정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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