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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연아와 나경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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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윤창희
사회1부 기자

황상민 교수에 대한 김연아의 고소(告訴)는 결국 해프닝으로 끝났다. “교생실습은 쇼”라는 황 교수 발언은 김연아를 불쾌하게 했을 것이다. 억울하기도 했을 거다. 하지만 이 문제를 형사 문제로 가져간 것에 대해선 동의하기 어렵다. 대학생이 교수를 어떻게 고소할 수 있느냐는 차원의 얘기는 아니다. 언제부턴가 우리 사회에서는 형사 고소를 너무 쉽게 생각하는 고소 만능주의가 만연해 있다.

 고소는 상대방을 전과자로 만들겠다는 강력한 경고 효과가 있다. 그 때문에 비난과 악플에 시달리는 공인(公人)들에겐 유력한 방어수단이다. 헌법상 권리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처럼 강력한 효과는 고소가 자제돼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인격이 심하게 손상돼 다른 방법으로는 도저히 회복될 수 없을 때, 그래서 진정으로 가해자에 대한 형사 처벌을 원할 때 쓰는 예외적 수단이다. 근데 김연아 측은 변호사를 통해 “이게 솔직히 법정까지 갈 사안은 아니다. 진정성 있는 사과가 있다면 언제든지 고소를 취하하겠다”고 말했다. 김연아 측 스스로 처벌보다는 형사 사법(司法)제도를 이용해 사과를 받아내겠다는 속내를 드러낸 셈인데, 적절치 않았다. 결국 지난 15일 고소를 취하했다.

 고소는 사회 전체적으로도 공짜가 아니다. 수사를 담당하는 검사와 경찰, 그리고 최종 결론을 내려줄 법관은 국민 세금으로 운영된다. 법무부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고소사건은 52만 건. 전체 형사 사건의 22%에 달한다. 일본 고소사건 점유율의 57배에 달한다. 개인 간 갈등과 다툼이 여과 없이 몰릴 경우 수사기관은 진짜 필요한 강력·민생 범죄 수사를 소홀히 할 수밖에 없다.

 이런 비능률을 줄이기 위해서는 고소에 책임이 따른다는 원칙을 명확히 확립할 필요가 있다. 고소와 맞고소로 다투는 사건을 수사기관이 적당히 얼버무려 마무리하는 관행이 문제다. 나경원 전 의원 사건을 보자. 아내를 비방한 네티즌을 기소해 달라며 현직 판사인 나 전 의원의 남편이 검사에게 청탁 전화를 걸었다는 의혹이 한 언론에 의해 제기됐다. 고소와 맞고소로 맞붙은 이 사건에서 검찰은 모두를 불기소했다. “양쪽의 주장은 사실관계에 대한 평가의 차이일 뿐”이라는 애매한 결론이 내려졌다. 그러나 양측의 다툼이 언론과 인터넷을 넘어 형사 사법 절차로 들어온 이상 어느 한쪽이 고소에 대한 책임을 지는 게 맞다. 근거 없는 명예훼손인지, 정당한 의혹제기를 무고(誣告)했는지 검찰은 판단을 내렸어야 했다.

 강용석 전 의원이 추락한 결정적 계기도 성희롱 발언 자체도 문제였지만, 이를 보도한 기자를 무고했기 때문이다. 그는 이후에도 각종 고소·고발을 남발하며 ‘고소남’이란 별명까지 얻었다. 유명인들이 앞장서는 한국의 고소 남발 풍조는 분명 적지 않은 사회적 비용을 치를 수밖에 없다. “소송이 적어야 좋은 세상”이라는 초대 대법원장 가인(街人) 김병로 선생의 말이 생각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