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쁨조 비서하다 '김일성 애첩' 누명쓴 女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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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정호 씨의 아들 윤철수씨가 탈북하면서 가져온 ‘통일교향곡’ 악보 의 일부. 2악장의 합창 부분이 시작되는 곳에 ‘마침내 하늘이 칠천만의 염원을 들어주셨다’는 가사는 작곡가 윤정호씨가 통일을 소망하며 직접 붙여넣었다. 미국에서 발간된 『The Liberation Symphony』 책 표지와 합성했다. 필립 류는 저자 윤건호씨의 미국 이름이다.

한국전쟁 때 납북된 천재 작곡가 부부가 목숨과 바꾸면서 남긴 ‘통일교향곡’이 현재 미국에서 유족들의 손으로 복원되고 있다. 미공개의 이 작품은 총 4악장으로 이뤄졌으며, 전체의 절반인 180장(1~2악장)의 악보가 필름으로 남아 있다. 3~4악장은 탈북한 아들과 딸이 외워서 작성했다.

『통일교향곡』 저자 윤건호( 주인공 윤정호씨의 친동생)씨.

1950년 6월 납북된 1932년생 윤정호·최영애 부부는 ‘한국 근대사의 조난자’다. 윤씨는 학교 음악교사의 축전기를 고쳐준 인연으로 피아노를 배운 지 몇 달 만에 쇼팽·모차르트를 줄줄 외우고, 즉흥곡을 만들 정도의 재능을 보였다. 성악가 최씨와는 17살이었던 1949년 5월 대한민국 정부수립 경축 전국 음악콩쿠르에서 처음 만났다. 당시 두 사람은 벨리니의 아리아를 협연하다 사랑에 빠진다.

 그러나 결혼을 앞두고 발발한 한국전쟁으로 고난의 운명이 시작된다. 부부는 남부군(빨치산)에 체포돼 납북된다. 이후 김일성 우상화에 앞장서는 예술인으로 ‘인민작곡가, 인민가수’로 불리며 김일성의 총애를 받았다. 뒤이은 김정일은 1995년 윤씨에게 ‘해방교향곡’ 헌납을 지시한다. 김일성 사후 부자의 우상화를 위해서였다. 가사와 총 12부로 이뤄진 4악장의 각 부의 주제까지도 치밀하게 짜여진 상태였다.

 하지만 윤씨는 이 기회를 통해 그간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 살아온 ‘선동 예술가’의 인생을 정리키로 결심한다. 그는 북한 당국(김정일 직속 216호 비서실)에 공개한 작품과는 별도로 완전히 다른 교향곡을 작곡해 국외 반출을 시도한다.

45년간 겪은 북한의 실상과 독재의 참상을 알리는 작품이었다. 그는 “해방교향곡은 나 자신을 해방시키자는 의미는 물론 한반도 비극의 근대사를 웅장하게 대변하고 우리 민족의 애환을 담아내야 한다”며 “남한으로 보내는 데 성공하면 꼭 ‘통일교향곡’으로 바꿔 불러 달라”고 유언했다고 한다.

 이 곡의 존재는 98년 탈북한 아들 윤철수(59)씨의 증언과 형이 납북됐다는 이유로 연좌제로 고생하다 미국으로 이민 간 친동생 윤건호(74)씨의 기록으로 밝혀졌다. 건호씨는 지난달 이 같은 내용을 담은 『The Liberation Symphony』를 미국에서 출간했다. 한국에선 비봉출판사가 이달 말 『통일교향곡』이란 제목으로 번역해 내놓는다.

 건호씨는 중국에서 활동하는 선교사들을 통해 조카들의 탈북을 기획했고 콜린 파월 전 미 국무부 장관, 샘 브라운백 상원의원, 천기원 목사 등이 이를 도왔다고 한다.

 이 책에 의하면 최씨는 남편의 꿈을 이루기 위해 ‘기쁨조’ 담당 비서로 일하다가 김일성의 애첩이란 오명을 쓰고 독살당했다. 독살 전 최씨의 유언으로 윤씨는 북한 바이올리니스트 손숙이와 재혼하고, 딸 미화를 낳는다. 철수씨는 바이올리니스트로, 미화씨는 아코디언 연주자로 성장했다.

 윤씨는 ‘고난의 행군’ 시절 해방교향곡을 작곡하다 영양실조에 걸린 상태에서 메틸 알코올을 마시고 사망했다. 그 뒤 철수씨와 그의 부인 재연씨는 요덕수용소에 감금됐다가 탈출에 성공했다. 그는 현재 사업가로 성공한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에서 ‘자유한국’이란 언론사를 운영해 온 윤건호씨는 5월 비봉출판사 박기봉 사장에게 “조카 철수와 미화의 복구 작업이 완성되는 대로 세종문화회관에서 통일교향곡을 연주하는 게 형의 마지막 꿈을 이루는 길”이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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