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육 빵빵 쫄티·쫄바지팬티 덧입고 부츠 신고 아, 망토도 휘날려야지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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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5호 16면

1슈퍼맨의 만화 표지. DC코믹스가 발행한 슈퍼 히어로의 원조들로 슈퍼 히어로의 전형을 탄생시켰다.

영화 ‘어벤져스’의 흥행 돌풍이 거세다. ‘아바타’의 흥행을 넘어 최단 기간 5억 달러 수입을 올렸다. 메시지나 드라마틱한 줄거리도 없다. 그저 화려한 컴퓨터 그래픽을 활용한 볼거리 위주의 영화가 이토록 흥행 가도를 달리는 이유는 수퍼 히어로의 활약에 대한 기대감 때문 아닐까.수퍼 히어로 영화는 1951년 개봉된 ‘수퍼맨과 두더지 사나이’ 이후 하나의 장르처럼 꾸준히 제작되고 있다. 수퍼 히어로 영화에 대한 수요는 정의의 심판에 대한 갈구다. 개인은 힘이 없다. 언제든지 불의한 힘으로부터 위협받을 수 있다는 불안에 떨고 있다. 불의한 힘이란 거리에서 만나는 강도나 강력한 악당 또는 적국이나 이념이 다른 적이다. 때로 천재지변이나 뜻하지 않은 사고일 수도 있다. 그것은 시대마다 조금씩 변화하지만, 변하지 않는 것은 우리를 두렵게 만드는 적이 반드시 존재한다는 사실이다. 특히 이 장르의 영화는 불의한 힘을 법이나 경찰도 어쩌지 못하는 강력한 것으로 연출함으로써 관객을 더욱 불안하게 하고 수퍼 히어로의 존재감을 부각한다.

김신의 맥락으로 읽는 디자인 <7> 수퍼 히어로의 복장

그렇다면 그런 불의로부터 선량한 시민을 보호해줄 영웅은 어떤 모습이어야 할까. 그 첫 번째 해답을 제시한 것이 1938년 발행된 만화 ‘수퍼맨’이다. 공상과학 소설과 만화에 탐닉하고 있던 10대의 제리 시겔과 조 슈스터는 삼손과 헤라클레스, 그리고 그들이 아는 모든 장사를 하나로 합친 캐릭터를 구상하게 된다. 바로 수퍼맨이다.

2. 배트맨의 만화 표지. DC코믹스가 발행한 슈퍼 히어로의 원조들로 슈퍼 히어로의 전형을 탄생시켰다.

수퍼맨은 머나먼 행성 크립톤으로부터 캡슐에 담겨 지구로 날아온다. 그는 아버지로부터 인류를 구하라는 임무를 부여 받는데, 이는 마치 예수의 탄생처럼 보인다. 다른 점이 있다면 수퍼맨은 인류를 구원할 때 악을 그 자리에서 응징한다는 점이다. 이것이 수퍼맨 만화가 성경과 다른 흥행 포인트다. 엄청난 선의 에너지로 악당의 파멸을 바로 볼 수 있다는 점이야말로 만화 독자들의 가슴을 뻥 뚫리게 해주었던 것이다.

따라서 이런 수퍼 히어로는 외모도 남달라야 했다. 무엇보다 초월의 힘을 가졌다는 것을 시각적으로 표현해야 한다. 적절한 시각적 표현이 없다면, ‘초월의 힘’이라는 개념을 독자들은 믿지 못할 것이다. 제리 시겔과 조 슈스터는 서커스에 등장하는 힘센 남자로부터 그 단서를 찾았다. 피에로, 저글러, 동물 조련사, 마술사와 함께 서커스에는 반드시 괴력의 소유자가 등장한다. 그는 대개 몸에 붙는 옷과 팬티에 부츠를 착용하고 나온다. 그런 외모가 서커스 관객들에게 흥분을 자아내고 괴력에 대한 믿음을 심어주기 때문이다. 시겔과 슈스터는 여기에 망토를 첨가했다. 끝으로 강한 남자라는 것을 부각하고자 각진 턱을 가진 얼굴로 수퍼맨을 묘사했다. 몸에 딱 붙는 옷, 팬티, 부츠, 그리고 망토는 수퍼맨 이후 탄생한 모든 수퍼 히어로에 강력한 영향을 준 전형이 되었다.

3 자크 루이 다비드가 그린 나폴레옹. 실제와 관계 없이 영웅이 어떤 자세와 모습을 취해야 하는지를 잘 보여준다.

만약 정말 초능력이 존재한다면, 그것은 물리적인 근육의 양에 비례하지 않을 것이다. 평범한 몸을 가진 사람도 초능력자일 수 있다. 실제로 근육이 잘 발달한 보디빌더보다 그저 뚱뚱해 보이는 씨름 선수가 적을 쓰러뜨릴 수 있는 힘과 기술이 더 있을 수도 있다.

그러나 시각적 이미지로 어떤 개념을 전달해야 하는 만화나 영화 같은 매체에서는 초능력에 가장 부합하는 ‘이미지’가 더 중요하다. 우람한 근육으로 부풀려진 몸, 아주 미세한 근육까지 표현된 몸이 더 설득력 있고 효과적인 것이다. 무엇보다 그것이 독자와 관객에게 더 아름답고 멋져 보인다는 차원에서도 그렇다. 몸에 붙는 옷이 수퍼맨 이후로도 수퍼 히어로의 표현으로 즐겨 사용된 이유다.

미세한 근육은 실제 배우가 연기하는 영화보다 만화에서 더욱 잘 표현되었는데, 마치 벗은 몸에 보디 페인팅을 한 것처럼 근육 하나 하나가 디테일하게 묘사된다. 그 점에서 만화는 영화보다 수퍼 히어로를 더 잘 구현했다고 볼 수 있다.

망토는 초월의 힘보다는 ‘영웅’이라는 개념을 시각화하고자 채택됐다. 민첩함과 스피드가 생명인 수퍼 히어로에게 망토는 거추장스러운 장애물일 뿐이다. 그러나 실제가 아닌 만화이기 때문에 그런 논리적인 과학보다 이미지가 더 중요하다. 대중에게 영웅의 이미지란 고대 로마의 말을 탄 장군 조각이나 프랑스의 신고전주의 화가 자크 루이 다비드가 그린 알프스를 넘는 나폴레옹 그림으로 각인돼 있다. 이런 조각과 그림에서 영웅은 커다란 망토를 바람에 휘날리며 손가락으로 어딘가를 가리키고 있다. 물론 실제 영웅의 모습은 평범할 수 있다. 그러나 ‘영웅’이라는 이 특별한 개념을 대중에게 전달하려면 통속적인 이미지에 기대야 한다. 마치 똑같은 상품을 어떻게 포장하느냐에 따라 가치가 달라지는 것처럼 말이다.

망토는 또 다른 역할을 하는데, 그것은 만화에서 수퍼 히어로의 극적이고 에너지가 넘치는 활동력을 표현하는 데 적합하다. 수퍼맨이 하늘을 날 때 바람에 휘날리는 망토가 없다면, 좀 김이 빠지는 것 같지 않나. 또 배트맨이 적을 위협하며 다가갈 때 검은 망토가 없다면, 이 또한 맥 빠지는 일이다. 적을 주먹으로 치거나 하늘을 날 때 망토는 수퍼 히어로를 더욱 우월한 존재처럼 보이게 한다. 이를 더 강조하고자 그들의 망토는 눈에 잘 띄는 원색이 흔히 쓰인다. 마치 나폴레옹의 망토처럼.

어떤 직업에는 전형적인 이미지가 있다. 예를 들어 검사는 흐트러짐 없이 꼭 맞는 정장을 할 것 같다. 의사는 흰색 가운을 입고 약간 피곤한 얼굴을 하고 있을 것 같다. 대학의 노교수는 약간 빛바랜 정장을 하고 터벅터벅 걸음을 옮길 것 같다. 만약 주말에 이런 직업적 유니폼을 벗은 평범한 그들을 만난다면, 그들의 능력이 사라진 것처럼 느껴지지 않을까. 따라서 수퍼 히어로들도 평범한 인간으로 살아갈 때와 초능력을 발휘할 때의 모습을 극적으로 바꿔 놓은 것이다. 수퍼 히어로 복장이란 그들이 중요한 일을 하고 있다는 것을 시각적으로 확인시켜 주는 증거물이다.

수퍼 히어로 만화의 가장 열렬한 지지자는 10대 남자들이다. 남자가 힘으로 상대를 누르고자 하는 욕망이 가장 강한 시기가 바로 10대 때다. 그들은 힘에 대한 판타지가 있다. 이름과 능력은 제각기 다르지만 비슷한 복장과 장식을 가진 수퍼 히어로의 모습은 10대 소년들의 판타지에 부응한 것이다.
시대의 변화에 따라 수퍼 히어로의 성격이 조금씩 달라지고 있다. 요즘에는 마음 약하고 우유부단한 모습, 때로는 그들도 이기적이고 나약한 인간이라는 걸 부각하기도 한다. 이에 따라 그들의 외형은 수퍼 히어로의 전형으로부터 조금씩 벗어나고 있지만, 초능력자의 특별한 힘을 시각화해야 한다는 원칙에는 변함이 없다. 그것은 남자들이 꿈꾸는 궁극의 힘에 관한 판타지이고 허세다.



김신씨는 홍익대 예술학과를 졸업하고 17년 동안 디자인 전문지 월간 '디자인'의 기자와 편집장으로 일했다. 대림미술관 부관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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