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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움을 찾는 화가들의 속 이야기

중앙일보

입력

아이야, 어제 텔레비전에서 함께 본 전설적인 록 밴드 롤링스톤스의 공연이 네게는 예전과 다름 없이 강한 비트와 에너지 넘치는 사운드가 사춘기 때의 감동을 그대로 느끼게 하더구나. 하지만 곁에서 함께 보던 네게는 하릴없이 '싱겁다'는 평을 받아야 하는 걸 보면, 예술 작품을 받아들이는 느낌에 있어서도 세대간의 차이는 어쩔 수 없는 모양이다.

아이야. 하지만, 세상이 아무리 변해도 변하지 않는 것이 있어. 이를테면 사람이 사람을 그리워하고, 그리운 사람을 사랑하고, 그와 함께 이 세상에 머물고 싶어하는 마음도 그런 변하지 않는 사람의 마음 가운데 하나일 거야. 거기까지 네게 인정한다면, 그런 마음을 아름답게 표현한 예술 작품들 또한 영원히 사람들의 마음에 남아 있을 거야.

지금 이야기하고 싶은 것이 바로 그런 예술작품들이야. 그림을 한번 보자. 일본 사람들이 우리 나라에 들어와 있는 동안 우리 아버지 어머니들은 몹시 힘든 세상을 살았지. 그런 와중에 한 남자가 여자를 좋아하게 돼. 그 남자는 그림을 그리는 화가였어. 그래서 그 여자에게 자신의 마음을 표현하기 위해서 작은 엽서 한 장에 그림을 그렸단다. 그 그림 안에 담긴 뜻은 아마 세상이 아무리 변해도 변함 없을 거야.

아이야, 일제 식민지 시대에 활동했던 이중섭이라는 화가를 알고 있니? 그의 그림을 본 적이 있는 지 모르겠다. 치고 박는 컴퓨터 게임의 그로테스크한 그래픽 화면에만 익숙해 있는 너희들에게 그의 그림은 어쩌면 롤링스톤스의 음악처럼 맥 없는 작품일 수 있겠지. 그의 그림 가운데 유명한 '엽서화'라는 것이 있어. 그건 엽서에 글 대신 그려 넣은 그림이야. 내용은 대부분 사랑하는 여인에 대한 감정을 표현한 것들이야.

사랑하는 여인과 헤어져 있는 동안 자기 안에 주체하기 힘든 그리움을 엽서 안에 그림으로 담아낸 것들인데, 이 그림들은 세월이 지나가도 많은 사람들에게 적지 않은 감동을 던져준단다. 이중섭이라는 화가를 생각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게 '황소'라고 이야기하는 사람들도 많지만, 나는 그가 사랑하는 여인과 헤어져 살아야 했던 사회적 상황과 그 상황에서 애틋한 마음을 담아냈던 그의 엽서화가 먼저 떠오른단다.

그림을 보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겠지. 그 가운데 그림을 그림 그 자체로만 봐야 한다는 게 있지만, 그건 우리처럼 평범한 사람들에게는 그리 잘 어울리지 않는 방식이라고 나는 생각해. 그 그림을 만들어내기까지 한 화가가 겪어야 했던 마음 속의 고민에서부터 그를 둘러싼 사회적 상황을 함께 알아야 훨씬 더 큰 감동을 느낄 수 있다는 게 내 생각이야.

그래서 지금 참 재미있고 보기 좋게 만들어진 책 4권을 이야기하는 거야. '그림으로 만난 세계의 미술가들'이라는 시리즈인데, 이 시리즈는 '한국편'과 '외국편'으로 나뉘어 있구나. '아이세움' 출판사에서 새로 내기 시작한 이 시리즈에서 처음 다룬 화가가 한국편에서는 '조선의 풍속을 그린 천재화가 김홍도'(최석태 지음)와 앞에서 이야기한 '황소의 혼을 사로잡은 이중섭'(최석태 지음)이다. 외국편에서는 '태양을 훔친 화가 빈센트 반 고흐'(염명순 지음)과 '돌에서 영혼을 캐낸 미켈란젤로'(노성두 지음)를 다루었는데, 모두가 미술의 역사에서 꼭 알아두어야 할 중요한 화가들이지. 아마 너도 그 화가들의 이름 정도는 이미 알고 있을 거다.

이 책들은 전문가를 위한 책이 아니라, 초등학생에서부터 일반인들까지 그림에 관심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볼 수 있게 만들어졌어. 여기서 가장 초점을 맞춘 것은 하나의 미술 작품이 나오기까지 화가는 어떤 방식의 수련을 닦았으며, 작품을 만들어내는 데에 가장 결정적인 계기는 무엇이었는가를 살펴보는 방식이야. 앞에서 이야기한 대로 그림에 얽힌 다양한 정보들을 이해하게 하는 거지.

미켈란젤로의 이야기를 한번 들어보자. 미켈란젤로는 그림보다는 조각가로 유명한 화가지. 그가 만들어낸 인체 조각은 살아있는 사람의 조각인 것만큼 생동감 넘치고 균형잡힌 것으로 유명하단다. 그렇게 훌륭한 인체 조각품을 만들어내기 위해 미켈란젤로는 어떤 과정을 거쳤을까?

그는 우선 영원히 변하지 않는 아름다움을 찾는 과정에서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것은 사람의 몸이라는 것을 알게 되고, 그 아름다움의 비밀을 캐내고 싶어한단다. 스물도 안 된 젊은 나이에 그는 사람의 몸에 깃든 아름다움의 열쇠를 찾아내기 위해 급기야 산토 스피리토 교회의 납골당을 찾아가게 돼. 어렵사리 수도원장님의 묵인을 얻어낸 그는 매일 밤 교회 납골당에서 시신을 열고 사람의 내장과 뼈를 만지고 바라보고 느껴본단다.

한달이 지나도록 그는 납골당의 시체 속에서 사람의 몸의 구조를 살펴 보지. 자신의 손과 눈길이 닿은 것은 터럭 하나도 놓치지 않겠다는 생각으로 집요하게 살펴 본단다. 인체를 조각하는 사람들에게 인체 해부는 무척 중요한 과제 가운데 하나이겠지. 그러나 남몰래 밤마다 납골당에 들어가 시체를 썩어가는 피부를 갈라내 뼈와 내장을 관찰하는 일을 해내는 미켈란젤로를 생각하면 좀 으스스하지 않니?

하지만 그같은 미켈란젤로의 수련 과정을 생각하니, 그가 만들어낸 조각들이 왜 그토록 훌륭한 모습을 할 수 있었는지 보다 더 절실히 느낄 수가 있겠더구나.

다른 그림들도 마찬가지일 거야. 모든 예술 작품은 그걸 만들어낸 작가의 고뇌를 바르게 이해함으로써 더 깊이, 그리고 더 오래 그 감동을 받아들일 수 있는 거야. 그래서 이 시리즈의 책들에 관심을 갖고 화가의 고뇌를 이해하는 기회를 가졌으면 좋겠구나. 이 시리즈에는 각 화가들의 대표적인 작품들을 책으로나마 감상할 수 있도록 사진들을 넉넉하게 갖추었어. 본문에 소개된 그림 이야기를 꼼꼼히 읽은 뒤, 그림을 가만히 들여다 볼 수 있는 편안한 시간 가져볼 수 있었으면 좋겠구나.

아, 한 가지 덧붙이고 싶은 이야기. 아름다운 작품을 만들어낸 화가들의 삶은 어쩌면 삶 그 자체만으로도 예술적일 만큼 처절하고 진지한 것인지. 그냥 흥미로운 소설이라고 생각하고 읽어도 결코 손색이 없는 스토리를 가진 게 이 화가들의 삶이야. 아이야, 그림과 무관하게 그냥 흥미로운 옛 사람들의 이야기를 읽겠다고 해도 이 시리즈는 좋을 것이다.

고규홍 Books 편집장 (gohkh@join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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