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성한 기운의 호랑가시나무 이야기 2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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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 문화 속의 호랑가시나무

서양에서는 호랑가시나무가 액운을 쫓아내는 신성한 기운을 가진 나무로 여겨지고 있습니다. 이를테면 로마인들은 호랑가시나무를 존경과 희망의 상징으로 여겼으며, 호랑가시나무의 가시가 사람의 나쁜 마음을 없애는 데 도움을 준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로마인들은 마구간이나 집 주변에 이 나무를 걸어두면 가축이 병에 걸리지 않고 잘 자란다고 믿어오고 있습니다.

그밖에도 귀신을 물리치는 데 이 나무가 좋다고 해서 서양사람들이 아끼는 나무이지요. 로마에 가까운 나라 영국에서도 호랑가시나무는 신성하게 쓰였지요. 어린 아이를 공부시킬 때 매로 다스려야 할 일이 있을 때에는 호랑가시나무의 가지를 이용했다는 것입니다.

한국 문화 속의 호랑가시나무

우리나라에서도 신성하게 쓰이기는 마찬가지입니다. 동양과 서양의 문화적 차이는 적지 않지만, 나무를 보고 느끼는 사람들의 감성에는 큰 차이가 없었던 모양입니다.

우리나라의 남쪽 지방에서는 예전에 호랑가시나무의 가지를 꺾어 정어리의 머리에 꿰어 처마 끝에 매달아 두었답니다. 액운을 쫓기 위한 우리 조상들의 습속이었는데, 이는 귀신이 잘못 들어오다가는 정어리처럼 눈을 꿰게 된다는 경고를 상징하는 의미였답니다.

서양에서 전해오는 이야기 하나

서양의 가장 큰 축제인 크리스마스를 장식하는 나무로 받아들여질 만큼 호랑가시나무는 서양인들이 좋아하는 나무입니다. 미국이 고향인 천리포수목원 민병갈 원장님도 호랑가시나무를 무척 좋아하신다고 합니다.

서양인들 사이에는 호랑가시나무와 로빈이라는 작은 새를 둘러싼 이야기가 전해져 옵니다.

예수가 가시 면류관을 쓰고 이마에 파고드는 날카로운 가시에 찔려 피를 흘리며 고통스러워 하며 골고다 언덕을 오르고 있을 때, 많은 사람들이 그를 뒤따르며 그의 고통을 함께 하려고 애썼습니다. 그의 얼굴에 흐르는 땀을 닦아주었던 수건 이야기도 남아있는 것처럼 말입니다. 예수의 고통은 미욱한 짐승들도 함께 괴로워할 만큼 진한 것이었습니다. 예수의 그 고통을 덜어주기 위해 자신의 몸을 던진 갸륵한 새가 있었습니다.

바로 지빠귀과의 티티새인 '로빈'이 바로 그 새인데, 이 작은 새는 예수의 머리에 박힌 면류관의 가시를 뽑아내려고 온 힘을 다했다는 겁니다. 로빈은 면류관의 가시를 뽑아내기 위해 가시관 가까이에 다가갔고, 그럴 때마다 번번이 가시를 뽑아내기는커녕 날카로운 가시에 찔려 연약한 가슴이 온통 붉은 피로 물들게 됐답니다. 로빈의 안간힘은 멈추지 않았고, 마침내 온통 피투성이가 된 로빈은 예수의 머리 위 가시관 위에서 처참한 죽음을 맞이하게 됩니다.

서양인들은 이로부터 예수의 고통을 덜여주려 애썼던 작은 새 로빈이 좋아하는 나무를 귀하게 여기게 된 겁니다. 그 뒤로 로빈은 호랑가시나무에 핏빛으로 열리는 빨간 열매를 아주 잘 먹는다고 합니다. 서양인들은 이때부터 이 갸륵한 새 로빈이 좋아하는 나무를 귀하게 여긴 것입니다. 또한 로빈이 먹어야 할 호랑가시나무의 열매는 함부로 따지 못하게 했어요. 열매를 함부로 따게 되면 그 집안에 재앙이 찾아온다는 믿음까지 생겼지요. 심지어 프랑스의 어느 지방에서는 땅에 떨어진 이 나무의 열매를 밟기만 해도 재앙을 부른다고까지 합니다.

호랑가시나무는 그러니까 서양문화의 전통인 예수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를 가지고 있는 겁니다. 이때부터 호랑가시나무의 날카로운 가시는 예수의 가시관을 상징하게 됐고, 이 나무의 빨간 열매는 예수의 핏방울을 상징했답니다. 그런 까닭으로 예수가 탄생한 날을 기념하는 크리스마스에는 호랑가시나무로 장식하게 됐다고 전해집니다.

호랑가시나무의 꽃말은 '당신을 지켜줄께요'와 '앞날을 준비하세요'가 있어요. 두 가지 모두 앞으로의 삶에 액운을 물리치고, 행복과 희망을 가져오게 하라는 뜻이 담긴 신성하고 축복받은 나무라는 뜻입니다.

고규홍(gohkh@join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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