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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동의 중국 현대사에 비하면 삼국지는 싱거울 정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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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중국인 이야기1』을 펴낸 김명호 성공회대 교수. 김 교수 뒤로 1980년대 중국의 농민화가 주융칭(朱永請)이 그린 ‘설서납량(說書納凉)’ 그림이 보인다. 흥미로운 이야기를 전해주는 직업을 중국에서 ‘설서인’이라고 하는데 그림 속 가운데 서 있는 인물이 설서인이라고 한다. 김 교수가 중국에서 구입한 그림으로 『중국인 이야기 1』 표지로 실었다. [김도훈 기자]

“중국현대사는 삼국지보다 흥미진진하다.”

 김명호(62) 성공회대 교수가 중국 현대사의 인물 군상에 초점을 맞춘 『중국인 이야기1』(한길사·사진)을 냈다. 중앙일보 일요판 신문인 중앙SUNDAY에 6년째 연재 중인 ‘사진과 함께하는 중국 근현대’를 보강해 출간했다. 사건을 시간 순서로 나열하지 않고 인물 특징을 부각시키는 그의 글쓰기는 1970년대부터 홍콩·대만 등을 돌며 직접 수집한 각종 희귀 사진과 어울려 강한 흡입력을 발휘한다. 향후 8~10권을 펴낼 계획이다.

 12일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기자간담회. 한길사 김언호 대표는 “90년대 초반 시오노 나나미의 『로마인 이야기』를 번역해 낼 때부터 ‘중국인 이야기’를 펴낼 생각을 했었는데 김명호 교수를 만나 그 꿈을 이루게 됐다”고 했다. 중국어·일본어 번역 출판도 추진해 『로마인 이야기』를 뛰어넘는 역사 서술의 새 바람을 일으키겠다는 구상이다.

 김 교수는 “한국과 중국의 교류가 단절된 것이 1949년 중국 공산화 이후가 아니라 1895년 청·일 전쟁 이후로 봐야 할 것”이라며 “옆에 있었지만 사각지대였던 중국을 좀 더 깊이 이해하는 계기가 되면 좋겠다”고 밝혔다. 다음은 김 교수와 일문일답.

 -중국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는.

 “1972년 군대 가기 직전이다. 서울 명동에 나갔다가 미 국무장관 키신저의 방중 소식을 전하는 호외를 받아보고 나서다. ‘중국 오랑캐’라고 비하하는 소리를 듣고 자랐는데 놀라웠다. 이후 중국을 알아야겠다고 생각했고 시간 날 때마다 홍콩·대만으로 날아가 도서관이나 고서점 등에서 자료를 수집했다. 80년대 중반 지방국립대 교수직을 그만두고부터는 퇴직금 가지고 여기저기 돌아다녔다. 그걸 계기로 90년대엔 중국의 유명한 싼롄(三聯)서점의 서울지점 대표를 맡기도 했다.”

 -글을 쓸 때 역점 둔 것은.

 “서양인은 사건을 중시한다면 동양인은 인물을 중심에 놓는 경향이 있다. 객관적 시간 순서의 사건 배열 같은 원칙을 나는 따르지 않았다. 소재가 떠오르면 사진을 찾고, 사진을 보다가 소재를 구상하고 하는 식이었다. 중국인이 역사를 보는 시각도 주목할만하다. 예컨대 『수당연의(隋唐演義)』 같은 책을 우리는 소설로 보는데 중국인은 정사(正史)에 넣는다. 그들에게 어떻게 소설을 정사에 넣느냐고 물으면 그들은 ‘자고로 믿을만한 역사는 없다’고 대답하곤 한다. ‘부패하지 않은 권력은 없다’는 생각도 중국인에겐 예로부터 일반적이다.”

 -중국현대사를 소재로 한 이유는.

문화대혁명 때 홍위병 완장을 차고 마오쩌둥 만세를 부르는 저우언라이. [사진 김명호]

 “사마천의 『사기』를 보며 감동받기도 했다. 그러나 가장 감동적인 중국사는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중반에 이르는 시기다. 삼국지가 싱겁다는 생각이 들 정도다. 또 오랫동안 수집해온 현대사 사진을 활용하려는 목적도 있었다.”

 -중국현대사에서 가장 중시하는 인물은.

 “그런 건 없다. 중국 대륙의 마오쩌둥(毛澤東·1893~1976)은 마오쩌둥대로 대만의 장제스(蔣介石·1887∼1975)는 장제스대로 자기의 역사적 삶을 살다 간 것뿐이다. 그런데 글을 쓰고 자료를 조사하면 할수록 대단하다고 느끼는 건 장제스다. 중국인들이 기록 문화가 대단하다는 걸 알게 됐는데 장제스는 그 중에서도 압권이다. 10대 때부터 죽기 직전까지 하루도 빼놓지 않고 일기를 썼다. 매 주말엔 그 주일의 반성 일기를 썼고, 월말엔 그 달의 반성 일기를 썼다. 일생 동안 매일 반성문을 쓴 것이다. 중국인 가운데 천안문 광장에 마오쩌둥과 함께 장제스 초상화도 걸자는 얘기가 나오는 배경이 그의 일기를 보면 좀 이해가 된다.”

 -장제스를 중국 현대사 최고 영웅으로 보는 건가.

 “나는 세상의 영웅을 별로 믿지 않는다. 깊이 들어가면 허점투성이다.”

 -저우언라이(周恩來·1898~1976)가 한국인에겐 비교적 인기 있는 중국 정치인인데 김 교수 책을 보면 그렇지 않은 것 같다.

 “아마 세월이 더 흐르면 중국 역사상 가장 교활한 정치가라는 점이 드러날 것 같다. 홍위병 완장을 차고 마오쩌둥 만세를 부르는 저우언라이의 사진이 책에 실려 있다. 문화대혁명이 오래갔던 이유는 저우언라이 때문이라고 이야기하는 사람이 적지 않다. 이런 건 한국 독자들에게 잘 알려져 있지 않은데, 무조건 나쁘다고 하는 것은 아니다. 그런 점 때문에 저우언라이가 지난 세기 중국 최고의 외교관이 되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김명호= 성공회대 중국학과 교수로 있다. 경상대·건국대 중문과에서도 가르쳤다. 1990년대 10년 동안 중국 전문서점인 싼롄(三聯)서점의 서울점인 ‘서울삼련’의 대표를 지냈다. 70년대부터 홍콩과 대만을 다니며 자료를 수집한 데다 ‘서울삼련’ 대표를 맡으며 중국인을 좀 더 깊이 알게 됐고 희귀 자료도 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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